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목자 그에게 나를 맡긴다./ 요 10; 7-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2. 17. 08:46

목자 그에게 나를 맡긴다./ 요 10; 7-16.

                                                                                                    

성경에는 양 이야기가 참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양의 책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양 이야기가 많습니다. 모세도 양을 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구약 제사에서 가장 많이 쓰여지는 것이 양입니다.

예수님도 양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양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막 지대가 많고 풀이 적어 양을 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고기가 비쌉니다. 한 근에 6만원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오랫동안 머믈 때 방을 얻어 놓고 살았습니다. 아내가 밥을 해주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 쌍둥이 빌딩을 납치한 비행기로 폭파할 때 우리는 이스라엘에 장기 체류할 때였습니다. 관광객이 오지 않았습니다. 시장이 썰렁하였습니다. 모든 경제가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내가 시장을 보러 갔습니다. 정육점에 들러서 양고기 한 근을 달라고 하니까 너무나 주인이 좋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지금 양고기가 들어 왔는 데 신선하니까 한 근 더 사시지요.”

나는 그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막상 두 근 값을 내려고 하니까 세 근을 잘랐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 비싸서 두 근만 가지고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잘라 놓아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잘랐지 내가 잘랐느냐며 두 근만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싸움이 되었습니다. 시장이 떠들썩하였습니다. 한국 사람과 예루살렘 정육점 주인이 큰 소리가 오고 가니 구경꾼들도 모여들었습니다. 영어로 싸우다가 그 사람이 답답라니까 히브라말로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한국말로 싸웠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양을 생각하면 예루살렘 시장에서 양고기 때문에 싸우던 생각납니다.

 

그 후 뉴질란드에 갔습니다.

뉴질란드는 양의 천국입니다. 인구는 400만명인 데 양은 4천만 마리라고 합니다. 한 마리에 6만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을 만들어 가지고 가시다가 무거워서 귀퉁이가 떨어진 것이 뉴질란드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 곳에서 양에 대하여 자세히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자요 우리는 양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양과 목자되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잘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 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 10;1-5)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 7-16)

예수님은 목자요 우리는 양이라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양된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가요?

 

1. 우리의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양된 우리는 구원자 목자되신 예수님께 우리를 맡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양은 사랑스럽고 온순하고 겸손합니다. 그리고 똑똑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과 달리 방향 감각이나 귀소본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 놓아 두어도 집을 찾아 오지 못 합니다. 쉽게 길을 잃어 버립니다. 일단 길을 잃어버리고 나면 도저히 집을 찾아 오지 못 합니다. 그리고 한 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데리고 오지 않으면 그 곳에 머믈러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길을 잃고 방향을 모르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길잃은 양에 비유하셨습니다. 목자없는 양은 반드시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6-7)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목자되신 예수님이 방향을 잡아 주셔야 바르게 갈 수 있는 양입니다. 우리는 목자되신 예수님에게 우리 모두를 맡기면 우리를 구원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 목자이십니다.

 

어느 환자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암이 깊었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대화를 들어 보십시요.

“당신은 너무나 담배를 많이 피우는 군요.”

“많이 피우긴요. 나보다 더 많이 피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데요.” “당신은 술도 너무 많이 마시는 군요.”

“나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르시는 군요.”

“당신은 화도 잘 내는 군요. 화를 내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주 해롭습니다.”

“나 정도 화를 내는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저는 아주 조금 내는 편입니다.”

의사가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나는 의사입니다. 당신 병을 고치려고 그러는 데 당신은 내 지시를 따르지 않고 당신 고집만 피우는 군요.”

환자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당신 나에 대하여 뭘 안다고 그래요? 나를 제일 잘 아는 것은 나요. 내 아픔을 가라앉히게 진통제 주사나 주세요.”

우리는 예수님에게 나를 맡기지 못 하고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가요?

“예수님이 뭘 안다고 그래요. 나를 제일 잘 아는 것은 나예요. 나는 내 멋대로 할 거예요.”

아닙니다.

우리는 믿을 만한 목자 예수님에게 나를 맡겨야 합니다. 그 분은 맡기면 맡아 주시는 참 목자이십니다.

 

2. 우리의 지도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지도자되신 목자이기에 우리를 그에게 맡기면 틀림없다는 의미입니다.

양은 추종 능력이 강합니다. 나는 뉴질란드에서 직접 본 것이 있습니다. 한 마리 사나운 개가 수 백마리 양을 불과 5분내에 우리로 몰아 넣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마리만 쫓으면 다른 양들은 모조리 뒤 따라 들어 갑니다.

도축장으로 갈 때에도 그렇습니다.

뉴질란드에서는 해마다 4천만 마리 양이 도축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 양>이라는 거세된 숫양이 있습니다. 이 양을 앞세웁니다. 그러면 다른 양들은 추종능력이 강하여 어디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뒤따라 갑니다. 따라가 보니 도축장입니다.

우리는 양같아서 잘못될 길을 판단하지도 못 하고 따라갑니다. 죽음의 장소입니다. 끌려가 보니 이단입니다. 잘못된 곳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말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 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 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내 양 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 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렘 23;1-4)

 

그래서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릇된 곳으로 가지 않게 하는 지도자가 우리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참 목자되신 예수님께 우리를 맡기면 그 분은 우리를 바른 곳, 축복의 곳, 푸른 초장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잘못 가기 쉬운 우리의 지도자가 되십니다.

 

3. 우리의 관리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참 목자되신 예수님에게 우리를 맡기면 그 분이 우리의 모두를 관리하여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양들은 평생을 먹고 마시고 소화시키는 일도 보냅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하여 먹지만 양은 먹기 위하여 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의 먹이를 잘 관리하여 주어야 합니다. 양들은 독이 있는 식물과 독이 없는 식물을 구별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독이 없는 싱싱한 풀을 먹도록 관리하여 주어야 합니다. 먹이 관리가 중요한 임무입니다.

그래서 푸른 초장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양들은 이 풀밭에서 풀을 먹고 다 먹으면 다른 풀밭으로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가지 못 합니다. 양들은 한 곳에서 풀을 뜯어 먹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지 못 합니다. 처음에는 잎을 먹다가 뿌리까지 먹습니다. 그리고 더 먹을 것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굶어 죽습니다.

양들에게는 물을 마시는 일도 중요합니다.

양들은 고여있어서 썩은 물도 마시기 쉽습니다. 오염된 물도 구별을 못 합니다. 너무 차가운 물이나 너무 뜨거운 물도 금물입니다. 이런 물을 마시면 탈이 납니다. 급물살이 흐르는 곳도 양에게는 위험합니다.

그래서 목자 출신 다윗은 시편을 기록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1-6)

동물들은 멀리에 있는 물 냄새를 잘 맡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풀 근처에 있는 물냄새로 맡지 못 하는 동물입니다. 물가로 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동물입니다.

 

그리고 목자는 양들이 깨끗하게 관리하는 관리자이기도 합니다.

어린양은 품에 안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깨끗하고 탐스럽습니다. 어린양을 품에 안고 젖병을 물려 빨리면 참으로 재미있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다 자란 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 자란 양은 털에 니놀린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기름기가 많고 지저분합니다. 날라다니는 물질들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저분합니다. 양은 스스로 몸을 정결하게 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누군가가 씻어주어야 하고, 누군가가 닦아 주어야 하고, 누군가가 떼어주어야 합니다.

목자가 관리하여 주지 않으면 더러운 그대로 살게 됩니다.

 

양들은 안 좋은 풀을 먹게 되면 설사병에 걸리기 쉬운 동물입니다. 양들의 배설물이 털에 묻으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저분하고 불결한 그 곳에서 파리가 알을 깝니다. 구더기가 생깁니다. 자칫 잘못 하면 병에 걸려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목자는 항상 청결하게 씻어 주어야 합니다.

젖은 땅도 양에게 좋지 좋지 않습니다. 비옥한 땅이 좋지만 건조한 땅도 양의 건강에는 좋지 않습니다. 젖은 땅에 오래 있으면 갈라진 굽사이에 종기가 생기기 쉽습니다.

양에게 생긴 병은 전염성이 큽니다. 기생충 병이나 해충으로 생긴 병은 양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의 건강 상태를 항상 잘 살펴야 합니다.

 

미드라쉬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7명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양들을 항상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병든 양, 늙은 양 그리고 건강한 양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란히 끌고 가면서 병든 양들이 풀을 먼저 뜯어 먹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풀을 늙은 양이 먹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양은 항상 나머지 풀을 먹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아! 네 아버지 양을 그렇게 지혜롭게 치는 것을 보니 내 양 이스라엘을 맡겨도 그렇게 지혜롭게 다스리겠구나! 너를 왕으로 삼겠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다윗은 철저한 양 관리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관리하여 주시는 목자입니다.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있던 선교사가 위독한 병에 걸렸습니다. 병원에 갈 돈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이었습니다. 본국 교회가 어려워서 선교비가 한 달 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한 달 동안 보리죽만 먹으면서 근근히 살았습니다. 너무나 힘들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

30일 정도 지났습니다. 몸의 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한국 본교회에서 선교비도 제대로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안식년으로 귀국한 그는 힘들었던 그 때를 간증하였습니다. 간증을 듣고난 의사가 끝나고 와서 찾아와 병에 대하여 이것 저것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에게 선교비가 제대로 왔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 할 것입니다. 그 병은 30일동안 보리죽을 먹는 처방을 내려야 하는 병입니다.”

선교사님은 의사의 이 말을 듣고 정확하게 자기를 관리하여 주시는 목자되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관리자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에게 우리 모두를 맡겨야 합니다. 맡기면 맡아 주시는 참 목자이십니다.

 

4. 우리의 보호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목자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틀림없이 보호하여 주시기에 그 분에게 모두를 맡기라는 의미입니다.

양은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는 동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동물들에게는 무기를 하나씩은 주셨습니다. 뿔이나 이빨이나 손톱이나 발톱등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하나씩은 있습니다. 토끼는 공격 무기는 없어서 도망갈 다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공격 무기도, 방어 무기도 없습니다. 맹수들이 달려 들면 양들은 도망가지 못 하고 도리어 한 곳에 모입니다. 먹이가 되기 쉽게 만들어 줍니다.

털이 크게 자란 양은 한번 넘어지면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기가 불가능합니다. 누군가가 일으켜 주어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넘어져서 발버둥치다 보면 균형 감각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일으켜 세워도 금방 또 쓰러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넘어졌던 양은 일으켜 세우지 말고 한 두시간 가량 안고 있다가 세워야 합니다.

아주 나약한 동물이 양입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경기중에 이디타로드(Iditrod)라는 경기가 있습니다.

개가 끄는 눈썰매를 타고 1,760km를 달리는 경기입니다. 가도가도 끝없는 알라스카를 10일간 달리는 경기입니다. 일년에 한번 하는 경기입니다. 이 경기에 참가하여 일단 끝까지 달리기만 하여도 칭찬을 받는 대단한 경기입니다. 그런데 수잔 버치라는 여자가 4번 연속 우승을 하고 있습니다. 우승의 비결을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수잔 버치는 천성적으로 개를 사랑하였습니다. 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일등하려고 개를 혹독하게 몰아 댑니다. 마구 채찍으로 패면서 몰고 갑니다. 그러나 수잔 버치는 개를 식구처럼 사랑하였습니다. 일등이 목적이 아니라 개를 사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개를 쓰다듬어 주고 격려하고 맛있는 것을 먹입니다. 이것이 일등하는 비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양된 우리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보호하여 주시는 진정한 목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목자되신 예수님에게 안심하고 자기를 맡겨도 됩니다. 나를 맡길 수 있는 가장 좋으신 목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목자라고 하지 않고 목자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요한은 양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선한 목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중에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목자장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지도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관리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전폭을 목자되신 예수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맡기면 맡아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와 우리와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장이요 우리는 군사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를 가지라고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는 그의 신부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예수님은 목자요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야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들리는 주님의 음성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 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 10;1-5)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우리는 목자되신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성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는 독실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한 성도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늘 듣나요?”

“그러믄요.”

“어떻게 듣습니까?”

“당신은 어머니의 소리가 들리면 확실히 구별하십니까?”

“그렇지요.”

“나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대답입니다.

 

이 말을 나는 깊이 음미하였습니다.

이제 나도 내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였습니다. 분명하였습니다.

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을 따라가는 주님의 양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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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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