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닮기(15) 해석하기(요 8;1-11. 2016.12.11)
인지 치료(congnitive theraphy) 전문가 앨버트 엘리스 박사 이론입니다.
“사건에 대한 해석이 감정을 통제한다.”
사건이 일어나면 해석하게 되고 그 해석이 그 사람의 감정을 지배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등산도중에 큰 뱀이 앞에 나타났습니다. 한 사람은 무서워서 뒤로 도망쳤습니다. 뱀이 나타난 것은 사건입니다. 그 사람의 해석은 뱀에 물리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해석은 그에게 무서움의 감정을 주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은 도망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뱀앞으로 달렸습니다. 뱀이 나타난 사건은 같았는 데 그는 뱀을 잡으려고 달려갔습니다. 그 사람의 해석은 저 뱀을 잡으면 큰 돈이 된다는 해석이었습니다. 그 해석은 그를 뱀앞으로 달려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건보다 해석이 중요한 것입니다.
정치가가 되겠다는 아들에게 엄마가 말합니다.
“정치가는 거짓말을 하여야 한다. 거짓말 하면 하나님이 싫어하고 거짓말을 안 하면 정치가들이 싫어한다. 하지 말아라.”
아들이 말했습니다.
“나는 정치가가 되겠습니다. 거짓말을 안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짓말을 하면 정치가들이 좋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침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 앞에 앉았습니다. 그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혔습니다. 모세 율법은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고 명하였습니다. 어떻게 할가요?"
예수님은 몸을 굽히셨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슨 글씨를 쓰셨습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주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무엇이라 땅에 쓰셨습니다.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른부터 돌을 버리고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몸을 일으키고 보니 여인외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여인에게 물으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사람들이 어기 있느냐?"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은 사건보다 해석을 중요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사건 해석을 다음과 같이 한다는 의미입니다.
1. 살리는 해석
예수님은 사건이 있으면 항상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해석하셨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이 있었습니다. 모세 율법으로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돌을 들고 왔습니다. 돌로 죽이라는 말이 예수님 입에서 떨어졌으면 그 여자는 당장 피투성이가 되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간음여인을 살리는 방향으로 해석하셨습니다.
“너희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자는 돌로 쳐라.”
예수님은 누구도 돌을 던지지 못 할 것을 아셨습니다. 간음 여인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두가 살아났습니다. 모두 자기 죄를 깨닫고 돌을 버리고 돌아 갔습니다.
“나도 죄인이다.”
이렇게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두를 살렸습니다. 예수님의 해석은 모두를 살리는 해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저녁에 퇴근하였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이미 다 들어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발이 엉망으로 놓여져 있었습니다. 신발이 어지럽게 놓인 것은 사건입니다. 그런데 데 해석은 다릅니다.
“정리할 줄 모른다. 우리 식구들은 정리할 줄 모른다.”
이렇게 해석하고 들어서면 얼굴이 굳어 있고 매사가 신경질적이 됩니다. 그래서 말 한 마디를 하여도 상처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해석을 달리합니다. “온 종일 공부하고 일하고 들어오며 식구들을 빨리 보고 싶어 하였구나!” 이렇게 해석하고 들어오면 얼굴 표정이 밝게 됩니다. 얼굴은 내 것이나 표정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집안 식구들이 사랑스러워 집니다.
무슨 해석이든지 좋게 해석하려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 살리는 해석을 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도 살리고 간음한 여인을 죽이려고 하던 군중들도 모두 살렸습니다. 다 살리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이사가려면 문 창호지를 모두 찢어 놓았습니다. 벽지도 모두 찢어 놓고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 집에서 살던 복이 이 집에 살기 싫어서 이사 오는 집으로 따라오라는 의미입니다. 누가 보아도 섬짓하게 만들어 놓고 이사하였습니다.
해석이 얼마나 행동을 좌우하는 지를 잘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설동에 살고 있는 사람이 봉천동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살던 집을 나올 때 그렇게 하여 놓았습니다. 이삿짐을 실고 봉천동 집으로 왔습니다. 이 집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습니다. 도배도 새로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집안에 들어 섰을 때 잘 보이는 곳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내가 살던 집으로 이사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살던 집입니다. 나는 이 집에서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무디 이 집에서 행복하고 축복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방마다 따뜻하게 연탄불을 피워 놓았습니다. 방 하나에 연탄 두 장이면 온 종일 따뜻합니다. 저는 아래 주소로 이사합니다. 더 필요한 것이 있거나 이 집에 대하여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전화 주세요.”
그리고 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해석이 얼마나 행동을 다르게 하는 가 알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크리스찬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2. 사랑의 해석
사건에 대한 해석이 감정을 통제합니다. 그래서 해석이 행동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군중들은 손에 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팔에는 팔로, 죄에는 보응으로 대하려고 해석하고 달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죄는 미워하셔도 죄인은 사랑하셨습니다. 간음은 공격하셨어도 간음한 여인은 사랑하셨습니다. 군중들도 사랑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죄없는 자는 돌을 던지라는 말씀 한 마디에 모두가 회개하고 돌아 갔습니다. 다 살리셨고 다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내 방은 새벽기도실과 붙어 있습니다. 보통 나는 새벽기도 성도들이 거의 다 갈 때까지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 방에 들어 가 성경연구를 합니다. 새벽기도하고 잔 적이 없습니다. 새벽기도하고 잔 사람은 새벽기도 다시 하여야 한다는 말이 가슴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는 두 세 시간 기도하는 이가 있습니다. 최 원님 권사님이 이에 속합니다. 모두가 돌아가면 새벽기도 실에 들어가 100여개 의자 책상을 반듯하게 맞추어 놓는 일을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자기가 앉았던 의자 가즈런히 놓고 뒷 정리하고 가는 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뒷정리를 하고 가지”라는 해석을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런 해석을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새벽기도 나온 것만도 훌륭하지. 깔고 앉았던 의자야 엉망으로 놓고 가도 최고로 예쁘다.”
이렇게 사랑의 해석을 하며 의자를 새벽마다 정리할 때가 내게는 가장 기쁜 때입니다.
어떤 여자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재혼을 하였습니다. 재혼을 한 남자고 똑같은 나이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 남자의 아들을 더 잘 해주었습니다. 옷도 좋은 것을 입히고 먹을 것도 맛있는 것을 더 먹였습니다. 목욕도 한번 더 시켰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잘 때에도 자기 아들은 윗목에 눕히고, 남편 아들을 품에 끼고 잤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이 더 살찌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심리학자가 조사하였습니다. 밤에 자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멀리 자고 있는 자기 아들을 향하여 사랑의 전자파가 왔다 갔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힙니다.
중국 제나라 선왕 시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형제가 같이 다른 사람과 싸웠습니다. 작은 실수로 그 사람을 죽였습니다. 관리가 형제를 현장에서 체포하였습니다.
“누가 죽였는가?”
형제는 서로 자기가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범인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왕이 재판하면서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한 명은 사형이다.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지 어머니가 판단하라.”
어머니가 즉각 대답하였습니다.
“동생을 죽이고 형을 살리세요.”
왕이 물었습니다.
“이유는 무엇인가?”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실은 동생은 제 자식이고, 형은 전처 자식입니다. 남편이 얼마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으면서 형을 사랑하여 달라고 마지막 부탁하고 죽었습니다.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제 자식도 자기가 죽였다고 하니 제 자식을 죽여 주십시오. 저는 제 자식 말을 믿습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크게 감동을 받아 형제 둘을 다 살려 주었습니다. 다 살리고 다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은 모두 사랑하는 방향으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는 해석입니다.
영국을 영국답게 만드는 데 가장 공을 세운 장군이 고든입니다. 중국과 아프리카를 점령하여 영국의 국위를 크게 높였습니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동상을 세우고 기념비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든 장군은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상금을 많이 지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것도 거절하였습니다. 정부는 어떻게 하든지 그를 높이고 싶어서 금메달을 만들어 목에 억지로 걸어 주었습니다. 장군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품을 정리하였습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금메달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그의 일기를 정리하던 중 답이 나왔습니다. 일기를 보니 영국이 기근이 들었을 때 금메달을 녹여 팔아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날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던 선물을 그리스도에게 바쳤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모두를 사랑하게 해석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모두 사랑> <모두 살림> 이것이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닮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어느 간호원이 쓴 후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60이 넘은 어머니와 딸이 병원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왼 손을 내놓으면서 자기 넷째 손가락을 잘라 딸에 붙여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끌려온 것같은 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이고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제 딸입니다. 초등학교 때 농기구에 다쳐서 손가락이 모두 잘려졌습니다. 잘려진 손가락을 가지고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접합 수술을 하였는 데 넷째 손가락만 수술에 실패하였습니다. 붙지 않았습니다. 딸이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에서 반지를 넷째 손가락에 끼워야 하는 데 손가락이 없습니다. 내 손가락을 잘라 접합 수술을 하여 주세요. 이 늙은이는 손가락이 없어도 됩니다.”
딸은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니! 안 되요.”
그러나 어머니가 애원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수술을 하였습니다. 모녀는 얼마후 손을 잡고 기쁘게 병원문을 나섰습니다. 간호원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손가락 사랑이 아름다웠다. 손가락 하나의 사랑도 이렇게 큰 데 온 몸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큰가?”
그렇습니다.
무엇이든지 사랑으로 해석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닮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3. 회개하게 하는 해석
사건에 대한 해석이 감정을 통제합니다. 그래서 해석이 행동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군중들은 손에 돌을 들었습니다. 당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은 그들이 모두 그들속에 자기도 보지 못 하였던 죄를 보고 회개하게 만드셨습니다. 물론 간음한 여인도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의 해석에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모두 살리기>
<모두 사랑하기>
<모두 회개시키기>
이것이 예수님의 해석이었습니다. 이것을 본받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미국에 젠킨스 박사님께 어느날 죠지아 주에 있는 큰 술집 주인이며 도박장 주인이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그는 돈이 억수로 많은 부자인 데 생활은 불행하였습니다. 박사님은 불행한 삶을 청산하기 위하여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하여 주었습니다. 성경도 읽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 몇 달이 지났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아침 박사님이 지시하신 대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빛이 제 영혼에 가득 비쳐왔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제 마음을 바치고 그분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집 앞을 지나면서 보니까 비싼 고급 가구를 모두 실어 내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고급 가구를 실어 내가십니까?”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술을 팔아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번 돈이 생각날 때마다 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을 팔아서 산 물건을 모두 처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물건을 사용하면 집안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이나 자녀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깨끗하게 번 돈만 사용하겠습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해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설교를 듣고 세례요한에게 와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부자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회개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가요?”
세례요한이 말했습니다.
“옷이 두 벌이면 가난한 이에게 한 벌을 나누어 주십시오.”
부자들은 세례요한이 하라고 하는 대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세리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세례요한이 말했습니다.
“너희에게 정하여 준 세금 이상은 받지 말고 이미 받았으면 도로 돌려 주어라.”
세리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회개하여야 합니까?”
세례요한이 말했습니다.
“칼이나 무기로 남의 땅을 빼앗지 마시오.”
그 후 군대는 공격하지 않고 방어만 하게 되었습니다. 창녀가 와서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말해주었습니다.
“음란한 마음을 버리고 시집을 가서 한 남자를 머리처럼 섬기시오.”
창녀들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수많은 고침의 역사, 회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또 범죄하였습니다.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세례요한에게 나와서 또 고백하기가 챙피하여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로 할 수 없으니까 가슴에 죄목을 써서 달고 나타났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그들앞에 서서 한 명 한 명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간음죄>라고 가슴에 붙이고 온 창녀에게 다가 가신 예수님은 그 종이를 떼어 자기 가슴에 붙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를 내가 대신 지마.”
<도적죄>라는 종이를 붙이고 온 사람에게도 다가셔서 떼어 자기 가슴에 붙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도 내가 대신 짊어졌다.”
<살인죄> <거짓말죄> <시기> <질투> 모든 죄목을 다 예수님은 자기 가슴에 붙이며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모두는 죄사함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쁨에 넘쳐서 돌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사건에 대한 해석이 감정을 통제합니다.
<모두 다 살리기>
<모두 다 사랑하기>
<모두 다 회개시키기>
이것이 예수님께서 사건에 대한 해석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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