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기로 시작하여 나누기로 끝낸다.
레 23;15-22.
다음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먼저 이런 이야기로 열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십자가가 약 600 종류가 됩니다. 그 중에 많은 제일 많은 것이 강화도 영은 교회에서 만든 십자가입니다. 지난 주간 정찬성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강단 아래에서 쓰는 편지>라는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유옥선 권사입니다.
이 분의 직함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된장 사업팀장입니다. 교인들의 콩을 모두 사들여서 된장 간장을 만들어 팔아서 교회 재정에 보태는 분입니다. 누이좋고 매부좋습니다.
두 번째 직함은 한나 여선교회장입니다. 70세 이상된 노인들이 모여 교회 살림살이를 맡아서 합니다. 김장, 청소 그리고 교회 궂을 다 합니다.
세 번째 직함은 마을 노인회장입니다.
수요일, 주일에는 절대로 동네일을 하지 않고 교회로 인도하는 전도입니다.
교회를 시원하게 하는 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고구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고구마를 캐는 날이면 강화에 살고 계시는 은퇴 목사님을 모두 초청하여 고구마를 한 상자가 선물하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드리기>
목사님들 <섬기기>
사람들과 <나누기>를 잘 하는 보배같으신 분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보리 농사를 짓고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맥추절을 안 지키는 교회가 점점 늘어 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1. 농경사회의 유물을 도시화된 지금에 지키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
2. 구약의 유산을 신약시대까지 지킬 것은 없다.
3. 지금은 보리 농사도 안 짓는 데 무슨 맥추절이냐?
4. 내가 보리 농사를 안 짓는 데 나와 상관없다.
그러나 맥추절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없어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셨기에 지켜야 합니다.
맥추절을 어떻게 지내야 하나요?
이스라엘은 일년중에 보리를 제일 먼저 추수합니다. 첫 곡식입니다. 첫 곡식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 때 10분의 1을 베어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 절기를 초실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50일이 지납니다. 50일 동안 모두 익은 곡식을 베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곡식의 첫 10분의 1을 나머지의 첫 열매로 하여 제사장에게 거두어 드립니다.
제사장은 농사를 짓지 않고 이 곡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 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20)
그리고 10의 8은 자기가 거둡니다. 그리고 10분의 1은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가난한 이들과 아무나 와서 베어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맥추절에 하나님은 세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드리기>
<섬기기>
<나누기>
드리기와 섬기기와 나누기는 맥추절 핵심입니다. 맥추절은 드리기로 시작하여 나누기로 끝납니다. 그 중간에 섬기기가 들어 있는 것이 맥추절입니다.
우리나라도 절기를 많이 지키고 있습니다. 제헌절에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한글날에는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집중적으로 알려 줍니다. 광복절에는 나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맥추절에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드리기>와 <섬기기>와 <나누기>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십자가입니다.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속에 <드리기>입니다.
수평적으로 사람들과 관계속에 <나누기>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섬기기>입니다.
드리기
하나님께서는 처음 것은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지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 지며>(출22;29)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 즉>(출18;12)
처음 것이란 모든 것의 대표입니다. 처음 것이란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그렇기에 처음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는 나머지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은 나머지 모든 열매들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첫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는 나머지 모든 자녀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3장을 보면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첫 아들 르우벤 대신에 레위를 첫 예물로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 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3;12)
그래서 레위의 세 아들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의 후손을 계수하였습니다. 22,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세어 보았더니 22,273명이었습니다(민3;46) 그래서 레위인을 다 받고도 273명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당 5 세겔씩 모두 1,365 세겔을 소속전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받으셨습니다(민3;50)
이같이 하나님은 사람의 첫 예물도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곡식의 첫 이삭도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첫 예물을 드리는 절기가 초실절입니다. 그리고 첫 예물을 드린 후 보리를 추수하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의 시작은 초실절입니다.
하나님을 첫 예물로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이같이 하나님 제일 주의를 강조하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청계천에서 옷 장사를 하는 권사님은 가게 문을 열고 첫 손님이 사가는 옷값은 몽땅 하나님께 첫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첫 손님이 와서 비싼 옷을 만지작거리면 가슴이 두근두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태도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알고 회개하였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첫 손님이 싼 옷을 사려고 하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더나 큰 축복을 받고 있다고 고백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느 택시 운전기사는 택시를 몰고 나가서 첫 손님이 내는 물질을 첫 예물로 정하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이발사는 문을 열고 첫 손님이 내는 이발료는 언제나 첫 예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어느 사람은 매년 1월에 받는 월급은 봉투째 하나님께 첫 예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
맥추절에는 첫 단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초실절과 맥추절은 이어지고 있는 절기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를 환기시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 하십니다.
영락 교회에 이북에서 피란나와서 큰 사업가가 되신 장로님이십니다. 그 동안 세로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그는 자기 집을 지을 만한 돈을 모았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하는 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보다 내 집을 지어라.” 그는 여주에 땅을 사서 예배당을 건축하였습니다. 더 훌륭한 것이 있습니다. 봉헌예배에 가지 않았습니다. 자기 혼자 지어서 바치는 성전 건축인 데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봉헌 예배에 참석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않고 내가 박수를 받아요.” 그 후 창립 기념일마다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런 예배에 참석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아간 장로님입니다.
맥추절을 맞으면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제일 주의 믿음을 다시 한번 새겨두는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나 하나님이 함께 하여야 합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십자가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십자가를 강화도 영은 교회에 가서 사왔습니다. 영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정 찬성 목사님이 지난 주간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읽었습니다. 가슴에 와 닿는 글이 있었습니다.
<콩은 사람이 심고 가꾸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메주는 사람이 쑤고 띄우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다는 하나님이 만드시고 소금은 사람이 만듭니다.
된장은 사람이 만들지만 익히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나 하나님이 함께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잘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맥추절에는 하나님 제일 주의를 가슴깊게 사귀어 두는 절기입니다.
섬기기
맥추절에 추수하면서 10분의 1 정도 첫 이삭을 제사장에게 드리며 섬깁니다. 제사장은 그것을 살게 됩니다.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 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
이같이 맥추절은 제사장을 사랑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보호하는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그렇습니다.
바울이 가시같은 병, 안질로 당시 휴양지 갈라디아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개척한 교회가 갈라디아 교회입니다. 목회하기 힘들었습니다. 시험거리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의 종 바울을 세 가지로 사랑하였습니다.
천사처럼
예수님처럼
눈을 빼줄 정도로.
바울이 어느 정도 병을 고치고 갈라디아를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라디아 교회를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축복하신 이유를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종 바울을 그렇게 사랑하였기에 하나님이 갈라디아 교회를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없신 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갈 4;13-15)
이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쓸 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므로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을 알아 주라>(고전 16;17-18)
우리 성도들님이 맥추절을 맞아 목회자들에게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마음을 시원하게>
바로 이것입니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마음을 시원하게 하여 주었습니다. 제사장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여 주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원하나요?
방법이 하나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부족을 채웠음이라.>
부족을 채워주는 사람이 마음을 시원하게 하여 주는 사람입니다. 목회자의 부족을 채워 주어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의 바울의 부족을 채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시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청량리 중앙 교회는 약 5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입니다.
교회 재정의 3분의 1 정도를 혼자 감당하는 정로님입니다. 그는 <드리기>와 <나누기>에 최선을 다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교회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지 입을 다물고 계시다고 합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장로님이 대답하였습니다.
“교회에서는 헌금을 많이 하든지 말을 많이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여야 합니다. 헌금도 많이 하고 말도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존경스러운 장로님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까운 교회입니다.
성도 한분이 오더니 봉투를 한 장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 부흥을 위하여 마음대로 써주십시요.”
그가 돌아 간 후 보니까 100억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위하여 한 일이 교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여 주는 일을 하십시요. 맥추절이 그런 절기입니다.
제사장들을 섬기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나누기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이 보리를 추수하는 법칙을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 땅에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23;22)
추수 때 모퉁이를 베지 않고 일부러 두고 이삭을 줍지 않아 가난한 사람과 객이 같이 먹고 살게 하는 아름다운 이웃 사랑의 절기였습니다. 나누기를 실천하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드리기>
<섬기기>
<나누기>
페스탈로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모든 일을 남을 위하여 하고, 자신을 위하여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
우리나라에도 이같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가난하였습니다. 대동법(大同法)이라는 토지 개혁법을 강행하였던 인조때 정승 김 육(金堉)이 빈부가 섞인 이상적인 마을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상적인 촌락 구조로 빈반부반(貧半富半)설을 주장하였습니다. 머슴을 둘 정도의 부농층이 10%, 자급자족하는 중농층이 40%, 땅 한 때기 없는 품을 그날 그 날 팔아야 먹고 사는 영세층이 40%, 늙거나 병들거나 고아, 과부 그리고 노동력이 없어서 남이 돌보지 않으면 당장 죽는 피보호층이 10%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 사이에는 굶어 죽었다는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극심한 흉년이 와도 다같이 먹고 살았습니다.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누기 풍습때문입니다. 나누기를 잘 하는 민족이었음이 역사를 통하여 밝혀졌습니다.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형제 나라임이 이런 면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5가지 아름다운 풍습이 이스라엘처럼 우리 조상들에게도 있었습니다.
(1) 복곡(福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 몫으로 일정량의 곡식을 내어 이곡(利穀)을 놓습니다. 그리고 그 곡식으로 마을의 가난한 사람, 행려병자, 노약자, 병약자들에게 베플면 그 베픈 것만큼 그 아이가 복을 받는다는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기쁜 마음으로 마을에 복곡을 바쳤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우리 조상들이었습니다.
(2) 마당쓸이
당장 먹을 양식이 떨어지면 마당 빗자루를 들고 새벽에 부잣집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그리고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고 집으로 가만히 돌아 옵니다. 주인이 일어나 누가 쓸었는 지를 조사하여 머슴으로 하여금 그 집에 며칠 먹을 양식을 보내주는 아름다운 관습이 마당쓸이입니다. 그 양식은 갚지 않아도 되는 양식이었습니다.
(3) 서덤
넉넉한 집은 매일 밥을 지을 때 집안 식구수보다 3명 쯤의 밥을 더 해 두는 습관입니다.그래서 언제나 가난한 사람이 찾아 올 것을 대비하고 사는 아름다운 습관이 서덤입니다.
(4) 산나물서리
옛날의 보리고개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픔을 참아야 했습니다. 이 때 산촌의 여인들은 산나물을 따서 광주리에 담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이고 잘 사는 집으로 들어 갑니다. 그리고 장독대로 가서 그 산나물을 내려놓고 필요한 간장 된장 고추장등의 부식을 말도 없이 퍼갔던 습관입니다. 그래도 그를 도둑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5) 내장 나누기
명절때면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돼지나 소를 공동으로 잡아 나누었습니다. 이 때 살고기는 나누어 가지지만 내장은 마을의 가난한 노인, 고아들에게 나누어 주어 온 마을이 명절을 지냈습니다.
이같은 아름다운 풍습이 우리 민족에게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밭모퉁이나 이삭을 일부러 남겨놓은 아름다운 사랑의 계절이었습니다.
이같이 맥추절은 <드리기> <나누기>를 하는 절기입니다.
<드리기> <나누기>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잘 하여야 하고, 이웃과 나누는 일을 잘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십자가입니다. 수직과 수직이 만나는 곳이 십자가입니다.
사람들이 존경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의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드리기> <섬기기> <나누기>
이 두가지입니다.
<드리기> <섬기기> <나누기>의 본보기 사람이 있습니다.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는 평생 돈을 모으기만 하였습니다. 여리고의 세리장이 되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회개하면서 삭개오의 생애는 큰 전환점을 맞이 하였습니다. <드리기> <나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내 재산을 반을 가난한 자 주겠습니다.”
재산을 반을 정리하여 나누어 준 사람이 역사상 있을 가요?
“그리고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회개를 의미합니다. 철저한 회개입니다. 눈에 보이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눈에 보여야 합니다.
삭개오는 <드리기> <섬기기> <나누기>로 인생이 전폭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삼미 그룹이 있었습니다.
야심으로 가득 찬 김 현철 회장이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입을 꾹 다물고 세운 그룹입니다. 눈에 보이게 성장하였습니다. 멋진 재벌이 되어 가고 있을 때 직장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사경을 헤메고 있었습니다. 그는 삭개오처럼 모든 것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시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그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드리기> <나누기>로 모든 재산을 다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중앙일보 기자가 인터뷰하면서 물었습니다.
“삼미 그룹 회장 시절과 선교사 지금과 어느 쪽이 더 행복하나요?”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행복하였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세계 제일의 재벌이 될 것이다라는 꿈을 가지고 죽을 둥 살 둥 일할 때 행복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습닏다. 스트레스와 고민과 걱정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선교사가 되고 나니 더 없이 행복히합니다. 모든 것을 드리고, 모든 것을 나누어 주며 사는 지금은 항상 행복합니다.”
그렇습니다.
<드리기> <섬기기> <나누기>는 신앙생활에 핵심니다.
바로 맥추절에 하나님이 명하시는 삶이 <드리기> <섬기기> <나누기>입니다.
그런 맥추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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