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서 난사” 증언 이어졌지만
군은 최근까지 “기록 없다” 부인
전일빌딩 리모델링 전 탄흔 발견
묻힐 뻔한 헬기 사격 규명 증거로
당시 시민군과 내외신 기자 집결지
10층 사무실에선 150발 탄흔 나와
“M-16 추정되지만 기관총 가능성도”
전일빌딩은 5·18 당시 시민군이 도청을 오가며 신군부가 투입한 계엄군에 맞서 민주항쟁을 준비하고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대항하며 지킨 장소다. 5·18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이던 박남선(63)씨는 89년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시민군이 전일빌딩 옥상에 캘리버50 기관총 등 중화기를 설치했던 자리”라고 진술했다. 내외신 기자들이 80년 5월의 참상을 취재해 전 세계에 타전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전일빌딩 외벽에서 총탄 흔적 35개를 발견한 것이 진실 규명의 첫걸음이었다. 광주시와 국과수는 세 차례에 걸친 조사를 통해 모두 185개의 총탄 흔적을 확인하고 정밀 분석작업을 해왔다. 5·18 청문회를 비롯해 김대중 정부에서 5·18 진상 규명이 있었지만 지난해에야 전일빌딩에서 총탄 자국이 발견된 것은 5·18 이후 이 건물이 사실상 방치돼 왔기 때문이다.
국과수는 외벽에서 발견된 탄흔은 5.56㎜ 구경 또는 구경 0.3인치 탄환에 의한 탄흔으로 추정했다. 국과수의 3차 현장조사 당시 시민이 제출한 5.56㎜ 탄피 2점과 0.3인치 탄피 3점이 5·18 당시 사용됐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국과수는 “5·18 당시 광주에 UH-1기종과 500MD 기종의 헬기가 기동했다”며 “두 헬기의 무장은 7.62㎜ 실탄을 사용하는 M-60 계열의 기관총이나 M-134 미니건(minigun) 계열의 기관총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사용된 총기에 대해 국과수는 M-16 소총일 가능성을 우선 추정하면서도 M-60 기관총일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시민들을 향해 헬기에 부착된 기관총을 난사한 ‘기총소사’까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 대목이다.
하지만 국과수는 헬기 사격을 확인하면서도 “현재까지의 조사 상황으로는 확실한 판단 근거가 없으므로 사용된 총기의 종류에 대해 명확하게 논단할 수 없다”고 결론을 유보했다. 다만 국과수는 “일부 탄환이 전일빌딩 천장 슬라브 사이 공간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천장 부분에서 탄환을 발굴하면 사용된 총기류 규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이번 국과수 감정서는 신군부와 정부 당국의 기존 주장과 어긋난다. 군 당국은 그동안 89년 국회 광주청문회와 95년 검찰의 5·18 수사 때 “(80년 광주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몰려든 데다 장갑차마저 탈취해 장병(계엄군)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육군본부는 전일빌딩 탄흔의 헬기 사격 논란이 제기되자 최근 “(헬기 사격 여부를) 확인할 헬기 비행일지 등 당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헬기 사격 진실이 37년 만에 확인됨에 따라 광주시는 앞으로 전일빌딩을 5·18 유적으로 보존하기로 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전일빌딩의 역사·상징성이 검증된 만큼 철거 및 대규모 리모델링 계획을 접고 원형을 복원하고 추념공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김호 기자 ckha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