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손양원목사의 회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2. 4. 05:31

순교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주를 위해서 죽을 기회가 와서 죽는 것이며, 따라서 단순히 죽는 것 그 자체보다는 말씀과 삶의 일치가 순교 신앙이라고 했다. 주기철목사의 가르침을 통하여 "신사 참배 문제 이후로 설교할 때에 우상죄를 공격하지 않으면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 없다." 는 교훈을 자주 가르쳐 주었고 "가장 잘 죽는 사람은 누구인가? 주를 높이다가 죽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계 14:13),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자가 가장 잘 죽는 사람일 것이다." 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3) 성경공부와 김교신의 성서조선을 통한 영적성장
"나는 예수를 믿게 된 이후 벌써 25년이나 되었다. 나는 그 동안 천태 만상의 신앙으로 복잡하였다. 여러 가지 각 신앙 방면에서 오는 신앙 관념에서 헤매기도 하고, 나의 내적 실생활에 있어서 많은 의심과 고민 중에 헤매었다. 그러다가 30세 되던 해부터 정통의 기독자가 된 것 같다." 라고 손양원 목사는 고백하고 있다. 그는 또한 "나는 소학 시는 맹목적 신앙자였고, 중학 시까지는 미분명의 말세자로 준비적 신앙자였고, 너무나 지옥 형벌이 무섭고 천당의 향락이 하도 탐스러워 신앙 생활하는 자였고, 지옥 형벌을 피하기보다도 천당의 행복이 탐스럽기보다도,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께서 내게 행하신 크신 사랑을 감히 떠나 버릴 수 없고 섭섭히 여기실까 해서 신앙 생활을 했다. 30세 이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생명을 받아 내 안에 그리스도가 움직이게 하시는 대로 영적 인간, 기독자의 생활을 하는 자 가 되었다." 라고 고백하였다


열정과 사랑의 사도 손양원 목사는 1902년 경남 함안군 칠원면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아버지를 따라 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이후 아버지 손종일 장로의 신앙은 그의 삶에 지침서 역할을 했다. 손양원이 교회 사역에 깊이 참여하게 된 것은 1924년 중생 체험을 한 뒤부터다. 그해 고향의 칠원읍교회 집사로 출발하여 신앙을 다졌고, 1926년 경남 성경학교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인의 삶과 사역에 헌신하게 되었다. 신학생 시절 시작한 복음 전파와 부흥회에 대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손양원의 설교가 불을 뿜어 낼 듯이 열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35년 그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한국 교회에 신사참배 문제가 본격화된 1938년, 그는 경상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했다. 이 활동으로 손양원은 몇 번이나 옥에 갇히게 된다.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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