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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 혁명, 함무라비, 블랙 먼데이"…헌재에서 ‘역사 강의’하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2. 23. 23:5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231507001&code=940301

"크롬웰 혁명, 함무라비, 블랙 먼데이"…헌재에서 ‘역사 강의’하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지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16차 변론에서 피청구인측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16차 변론에서 피청구인측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은 탄핵심판의 의미에 대해 논하며 ‘역사’를 자주 인용해 왔다. 이들은 변론 등을 통해 고대·중세·근대·현대사를 아울러 국회의 소추절차와 헌법재판소의 심판 절차에 대한 정당성을 따졌다. 이들의 발언 속에는 탄핵 절차에 대한 문제 의식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은 희생자’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의 사실상 첫번째 변론이던 지난달 5일 2차 변론에서 서석구 변호사(73·사법시험 13회)는 ‘색깔론’과 함께 고대와 중세사를 인용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서 변호사는 “예수도 십자가를 졌다”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불의하게 핍박받고 있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한편 “소크라테스도 다수결로 배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며 국회가 다수결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서석구 변호사의 이날 ‘역사 강의’는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기도 했다. 서 변호사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한 것과 관련해 “기원전 1700년대 함무라비 법전도 피해자의 무죄주장 권리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함무라비 법전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자리잡은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 만든 인류 역사 초창기 성문법전 중 하나다. 그는 “1215년 마그나카르타(대헌장)도 적법한 무죄주장 권리를 보장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영국 귀족들이 ‘왕의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왕의 의지를 법적 절차로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당시 존 왕에게 서명하라고 한 문서다.

이후 한동안은 증거조사와 증인신문을 통해 사실관계를 묻는 시간들이 계속됐고, 역사 이야기는 쉽사리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22일 16차 변론에서 김평우 변호사(72·사시 8회)가 이전 기일(20일·15차 변론)에서 제지당했던 1시간45분간의 장시간 변론을 하며 다시 역사를 거론했다. 김 변호사는 헌재가 탄핵심판 절차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헌재가 없다면 국회파와 대통령파가 나뉘어 시가전이 발생하고 불행히도 내전 상태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 역사의 ‘크롬웰 혁명’과 당시 왕당파와 의회파의 전쟁을 거론했다. 

김평우 변호사가 말한 ‘크롬웰 혁명’은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혁명’을 뜻한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는 “당시 수십만명이 죽었고 일부는 신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을 세웠다. 국회파와 대통령파가 충돌하면 나라 망하는게 분명하고 그걸 막기 위해 헌재를 만들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헌재가 국회쪽에 쏠려 탄핵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변론 내내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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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변론 후 대리인단 브리핑에서는 대표 변호사인 이중환 변호사(58·사시 25회)는 기자들에게 “<블랙 먼데이스(Black Mondays)>라는 책을 보라”고 말했다. 이 책에는 ‘연방대법원의 최악의 선택(Worst Decisions of the Supreme Court)’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조엘 D. 조셉의 영문서적이다. 이중환 변호사는 이 책을 소개하며 “연방대법원은 우리 헌재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최고법원”이라며 “이들이 얼마나 황당한 판결을 했는지 나와있다”고 말했다. 

이중환 변호사는 황당한 결정의 예를 들며 “도주한 흑인 노예를 종전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데 합헌, 일요일 영업금지 명령에 합헌,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미국 서부에 살던 일본인 이민자들을 로키산맥 동부 네바다에 강제이주한 것이 합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판결을 한 재판관이 누구인지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근·현대에서 일어난 일들을 또다시 인용해 최고 법원인 헌재 결정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이렇게 역사 지식을 늘어놓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탄핵심판을 부정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를 통해 국회의 탄핵소추 과정,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이 모두 위법·위헌이고 향후 헌재의 결정도 정당성이 없다는 걸 강조한다는 것이다. 권력형 비리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박 대통령을 ‘약자’, ‘희생자’로 설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변호사가 언급한 연방대법원 결정의 피해자들은 흑인 노예,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었고, 서 변호사가 예를 들었던 예수도 기득권 세력과 거리가 멀다. 


법조계 관계자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들이 재판관과 변호인의 관계를 망각하고 70대의 법조계 선배가 50대의 후배를 가르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이미 탄핵심판에서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포기하고 심판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의심될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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