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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칼럼] ‘촛불-태극기 양비론’을 탄핵한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3. 2. 13:45

[김종구 칼럼] ‘촛불-태극기 양비론’을 탄핵한다

한겨레 등록 :2017-03-01 18:18수정 :2017-03-01 20:48

 

김종구
논설위원

이 글을 쓰는 1일 오후, 서울 도심 거리는 태극기 물결로 넘실대고 있다. 98년 전 3·1 운동 때 거리로 쏟아져나온 사람들의 손에 태극기가 들려 있었던 것처럼, 많은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한다. 하지만 지금의 태극기는 그때의 태극기가 아니다. 3·1 운동의 정신은 불의에 대한 저항이요, 폭압적 권력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을 지키자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지금 거리를 휩쓸고 있는 태극기의 물결은 정의롭지 못한 권력을 찬양하고 나라를 다시 폭압의 시대로 되돌리자는 아우성이다. 일본군 다카키 마사오의 딸을 따르는 광신도 무리가 뿜어대는 섬뜩한 광기와 증오로 민족의 상징인 태극기의 존엄성은 이미 훼손됐다. 그들의 손에 들린 태극기는 태극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일제의 총검이라고 불러야 옳다.

촛불에 대항하는 태극기 집회가 늘어나면서 ‘촛불-태극기 양비론’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양비론자들은 촛불과 태극기 양 진영의 민-민 갈등으로 나라가 두 쪽 날 지경이 됐다고 개탄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내려지면 ‘마주 보고 달리는 두 열차’가 정면으로 충돌해 나라가 결딴날 것이라는 걱정도 한다. 그 선봉에는 <조선일보>가 있다.

모든 양비론이 그렇듯이 촛불-태극기 양비론 역시 위험하고 교활하다. 겉으로는 객관성과 공정성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본질을 호도하고 상황을 왜곡해 국민을 현혹한다. 3·1절에 서울 세종로 광장이 둘로 나뉜 것은 분명히 불행한 일이지만, 집회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양쪽을 동렬에 올려놓고 비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한쪽에는 탄핵 찬성 말고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 건설 등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녹아 있다. 반면에 다른 한쪽은 “빨갱이는 모두 죽이자” “군대여 일어나라”는 따위의 권력자 한 사람을 위한 맹신과 광기가 넘쳐난다. 그런데도 잘못의 경중이나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둘 다 모두 잘못”이라고 몰아세운다.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전형적인 물타기다.

양비론은 집회에 참여하는 정치인들을 향해서도 “시위대의 눈치를 보는 영합 세력”이라고 준열히 꾸짖는다. 거리의 집회는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며, 따라서 집회에 참석하는 정치인은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사람들로 폄하된다. 그래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등 야권 대선주자들은 졸지에 “특검은 망나니” 따위의 막말을 일삼는 김진태 의원과 동격이 되고 말았다. 촛불 시위에 참여하는 야권 대선 주자들을 겨냥해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유권자들의 첫째 의무”라는 목소리도 드높다. 야권 대선주자들을 깎아내리는 대통령 선거운동은 이미 시작됐다.

객관성을 가장한 편파와 왜곡은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면 나라가 파국에 처할 것이라고 겁을 주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거리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피를 흘리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유혈 사태’를 기정사실화하며 ‘대통령 사퇴와 탄핵 각하’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참으로 간교한 논리다. 그것은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절묘한 탈출구가 될지 모르지만, 이 사회가 갈등의 늪에서 빠져나올 탈출구는 되지 못한다. 탄핵에 대한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어물쩍 덮어버리면 오히려 갈등과 분열은 깊어지고 혼란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본질적 특성상 ‘광장의 정치’는 결국 ‘제도의 정치’로 수렴되게 돼 있다. 게다가 탄핵 인용이 있고 나면 곧바로 대선 국면에 들어간다. 촛불과 함께 타오른 새 시대에 대한 소망이든, 태극기와 함께 펄럭이는 폭압적 시대로의 회귀 열망이든, 결국은 유권자의 투표로 결정이 난다. 모든 선거에 수반되는 왁자지껄한 소음과 삐걱거림을 ‘아스팔트 싸움’이니 해서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느 면에서 우리 정치는 너무나 오랫동안 대중과 유리돼 있었다. 이제는 거리의 정치와 제도의 정치가 긴장과 균형 속에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이번 대선은 거리의 정치를 제도의 정치로 전환하는 중대한 시험대다. 촛불은 촛불대로 각기 바람직한 후보를 위해 새롭게 타오를 것이고, 태극기 역시 나름 새로운 대안을 찾아갈 것이다. 미리 위험성을 부풀릴 일도, 파국을 걱정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중립과 객관으로 교묘하게 포장한 양비론이다. 상황을 오도하고 국민을 현혹하는 촛불-태극기 양비론은 탄핵당해야 마땅하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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