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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또 다른 미완의 혁명이어서는 안된다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3. 11. 22:26

[특별기고] 또 다른 미완의 혁명이어서는 안된다

한겨레 등록 :2017-03-10 19:36수정 :2017-03-10 22:30

 

박태균 교수
박태균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교수·역사학자


국민들이 다시 한번 한국을 세계 역사 속에 기록했다. 1919년 3월1일의 시위는 1943년 12월 열강 지도자들의 카이로 선언에 ‘노예 상태에 있는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조항을 넣을 수 있도록 했고, 1960년 4월19일 국민들은 전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갈망했던 민주 정부를 이끌어냈다. 1979년 와이에이치(YH) 노동자들과 부산, 마산의 시민들은 유신의 종말을 이끌어냈고, 1980년 광주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힘은 1987년 민주항쟁의 씨앗이 되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촛불을 든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다시 한번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법에 의거해서 시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87년 체제’가 끝나는 시점에서 ‘87년 체제’의 가장 큰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 법에 기초하여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재확립한 사례는 세계 현대사에서 지금까지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도 기록하지 못했던 쾌거다. 세계의 역사를 다시 쓴 것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높은 성숙도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시민들은 몇 차례에 걸쳐 부정한 권력을 교체하였지만, 그 이후에 들어선 정부는 시민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3·1운동 이후 거세게 계속된 독립운동은 결국 8·15 해방을 성취하였지만, 그 이후에 들어선 정부는 북진통일만을 외치면서 통일된 민주공화국을 수립하고자 했던 국민의 열망을 저버렸다. 4·19혁명 이후 국민들은 야당이었던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지만, 정작 민주당 정부는 부정축재자 처리도 제대로 못한 채 스스로 분열되면서 불법적인 쿠데타의 빌미를 만들어주었다. 부마항쟁과 광주민주화항쟁은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신군부에 넘어갔고, 6월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6·29선언에 도취한 상태에서 야당의 분열과 신군부의 재집권, 그리고 3당 합당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절치부심한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1997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시민의 힘으로 비정상을 정상화하고자 하였지만, 실질적 정상화의 과정은 없었던 것이다. 정권 교체의 가능성에 도취해 있는 순간 또 다른 비정상의 씨앗이 싹을 맺기 시작했다. 실질적 권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시민들은 정치인들이 고스란히 그 성과를 가져가는 것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사 속에서도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1970년 평화적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칠레의 아옌데 정권은 불법적인 쿠데타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가장 최근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룩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시민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에 직면해 있다. 자유화 이후 불안정한 동구 유럽과 러시아에서는 과거 공산당하의 독재 체제에 대한 향수마저 나오고 있다. 민주화 이후 나타났던 독재에 대한 향수,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한국 사회는 역시 이미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성취에 대한 도취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부터 시민의 눈을 모두 가릴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시스템화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선거 속에 묻혀 버렸던 1987년과 마찬가지로 곧 시작될 대통령 선거의 과정 속에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가 선거의 소용돌이 속으로 묻혀버릴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또 한번 비정상이 재생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제 냉정하게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고민해야 한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87년 체제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기회를 위기로 만들어버렸던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서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정부를 세울 수 있도록 시민들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냉전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독재의 신화를 지워버려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그 신화 속에서 탄생했고, 비정상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구성원에게 국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의 안보는 무기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의 안보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다. 이는 이미 40년 전 남베트남의 패망으로부터 얻었어야 할 교훈이다.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국가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 때 진정한 안보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정상을 만들어냈던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했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했다. 해방이 되었건만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고,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청산해야 할 때에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청산해야 할 과제들은 전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문제가 되어버렸다. 해야 할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를 통한 시민의 힘과 요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폐단에 대한 해결은 필수적 조건이 될 것이다.

역사는 2016년과 2017년의 촛불시위, 그리고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 평가는 어제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되었다. 4·19혁명을 미완의 혁명으로 평가하는 것도 혁명 이후의 과정 때문이 아닌가? 87년 체제가 많은 성과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많은 것 역시 동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 또 다른 미완의 시민 혁명이 기록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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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6031.html?_fr=mt0#csidxd0348ae4b57e75cafb90c7175f4a7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