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박근혜, ‘아버지를 위한 대통령’의 비극
박근혜, ‘아버지를 위한 대통령’의 비극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유신정권 시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그는 단지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우는 정도가 아니라 유신 지지 활동 등 국정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1978년 5월1일 남산3호터널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앞 왼쪽)과 큰딸 박근혜양의 모습.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갈무리
박정희 추모사업에 매진
퍼스트레이디 5년 동안
유신정권 뒷받침 충실‘아버지=영웅’ 신화 빠져
박정희는 ‘인혁당 후회’했으나
딸은 “5·16 구국혁명”에 고정
집권 뒤도 ‘아버지 추존’ 집중 퍼스트레이디 시절 박근혜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최태민과 함께 ‘구국선교단’과 ‘구국여성봉사단’을 만들어 유신을 적극 뒷받침했다. 박근혜가 명예총재를 맡은 구국선교단은 집회 때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위하여 기도하자”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박근혜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를 맡은 구국여성봉사단은 1979년에 이름을 ‘새마음봉사단’으로 바꾼다. 새마음봉사단은 전국 읍면에까지 지부를 조직했다. 총재 박근혜는 시도별 또는 직장별 ‘새마음 갖기 궐기대회’에 참석해 충효사상을 강조했다. 단순히 유신 독재자의 딸이 아니라 유신정권을 지키고 강화하는 데 앞장선 명실상부한 유신공주였다.그는 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주로 챙기는 이른바 ‘영부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겨울 한파에 대한 각 시도별 대책을 보고받는가 하면 중앙정보부장 교체 건의 등 국정 운영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그는 1989년 엠비시(MBC) ‘박경재의 시사토론’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제가 여러통의 편지와 건의서를 받았거든요. 그것은 시국을 걱정하는 편지고 건의서인데 아버지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일을 망치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사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력한 건의였어요. 거기에 차지철, 김재규씨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날 그걸 제가 종합적으로 아버지께 다 말씀드렸지요”라며 “10·26 사태가 없었다면 김재규 당시 정보부장이 경질됐을 것은 확실하고 차지철 경호실장도 그 자리를 물러났을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1977년 8월31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 앞에서 서예를 하고 있는 큰딸 박근혜양.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