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구속됐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 파면’을 선언한 지 21일 만이다. 개인적으로는 참담한 일이겠으나 법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요, 정치적으로는 한 시대를 매듭짓는 역사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국회의 탄핵 소추와 특별검사 수사,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이어 구속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끊임없이 견인해온 것이 광장의 ‘촛불시민’이었다는 점에서 민주시민의 승리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31일 새벽 3시께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등 혐의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옮겨진 박 전 대통령은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작은 독방에서 ‘미결 수용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440원짜리 식단과 세면도구 등 최소한의 생활용품으로 생활해야 한다. 평생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자괴감을 맛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고 지나온 몇달만 돌이켜본다면, 이 모든 게 부인과 억지 주장으로 일관한 자신이 불러온 결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그곳에서의 나날을 성찰의 시간으로 삼기 바란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장 발부는 박근혜-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행위에 대해 일차적인 사법적 단죄가 내려진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강 판사가 ‘증거인멸의 염려’를 구속 사유로 꼽은 것은 박 전 대통령 쪽의 그간 주장과 변명을 거짓으로 판단하고, 진실이 묻히지 않도록 조처한 것으로 평가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두차례 수사와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를 통해 완벽에 가까운 증거가 확보된데다 관련자들도 구속된 상태여서 영장 발부는 일찍이 예상돼왔다. 더구나 그 증거의 원천이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수족처럼 부리던 참모들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끝까지 참모에게 책임 돌려 구속 자초
박 전 대통령 쪽은 검찰에서뿐 아니라 영장 심사 과정에서도 “사익을 취하지 않았고 통장에 돈 한푼 들어온 적 없다”는 식의 논리로 반론을 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의 설립·운영·인사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상의하며 ‘공모’한 사실을 확인했다. 삼성의 정유라 지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대기업들로부터 뜯어낸 돈이 자기 계좌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해서 죄가 안 되는 게 아님은 당연한 법리다.
박 전 대통령 쪽은 관련자들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도 편 모양이다. 그러나 안종범 수석을 통해 이승철 전경련 당시 부회장에게 허위진술을 요구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은 여럿이다. 무엇보다 그가 명백한 증거와 증언이 있는데도 모든 책임을 참모와 측근에게 돌리며 “몰랐다”고 발뺌하는 태도를 보인 이상, 법원에서도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 구속은 여러 면에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른 재벌 수사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 등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최씨 일가 재산은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반드시 추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 전 수석이 검찰을 농단한 부분에 대한 수사를 비롯해 검찰 스스로 자기 살을 도려내야 하는 중요한 과제도 남아 있다. 검찰 수뇌부를 포함해 성역을 두지 말고 제대로 마무리지어야 한다.
국민에게 사죄하고 극단세력 자제시켜야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간 한번도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소수 극렬 지지자들에게는 사실상 탄핵과 수사에 ‘불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국민저항본부’가 31일 구속 비난 성명과 함께 1일 태극기 집회를 예고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구속은 법률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 도덕적으로 그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라도 극단세력을 자제시켜야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선 결자해지의 자세로 모든 진실을 고백하고 희생자 가족에게 사죄하기 바란다. 그것이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분열과 갈등을 씻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과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이기도 하다.
그를 따르는 친박 세력 역시 이제는 억지 주장을 버리고 극단주의와 단절해야 한다. 그것만이 건강한 보수로 재탄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적 심판과 함께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시대도 역사에서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다. 이번 구속은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반세기 동안 쌓여온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와 상식의 새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