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유기성*신우인목사설교+칼럼

[스크랩] 주님께 어떤 음성을 듣고 싶은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4. 7. 05:30



말씀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 21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 9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 고린도후서 515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같을 것이라 이사야 58 11


내용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양자 삼아주신 목적을 이렇게 기록한다.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6)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제일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사람의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질문에 이어지는 답은 이렇다.

사람의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아이티에서 지진이 났을 즈음에 놀라운 기사를 하나 봤다.

뉴질랜드 출신인 어느 유엔 직원의 이야기였다.

지진으로 셋과 남편이 머물고 있던 호텔이 무너졌고,

유엔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젊은 아내는 위험을 무릅쓰고 가족이 머물던 호텔로 달려갔다.


무너진 건물 근처에서 살려달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분명 큰딸과 둘째딸의 목소리였다.

아직 살아 있구나하는 안도감도 잠시, 딸을 구할 방도가 없었다.

커다란 건물 잔해를 치울 없었기 때문이다.

절박한 심정에 맨손으로 흙더미를 파헤쳐봤지만 역부족이었고, 사이에 딸은 숨지고 말았다.


남편도 잔해 속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와중에 살배기 막내딸도 함께 숨진 알았는데 아기는 기적적으로 살아 있었다.

남편의 시신 아래서 구조되었다.

언론은 호텔이 무너질 아버지가 온몸으로 막내딸을 품고 공간을 확보했던 같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타이틀이 이랬다.

건물 무너져도 피한 남자 그의 품엔 막내딸이 있었다.


아버지는 충분히 피할 있었는데도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죽음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나는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이가 자라서 자기의 목숨이 아빠가 바꿔준 생명이란 것을 알게 되면,

아이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어떻게 살게 인생인데, 시시하게 살아서야 되겠는가?

아빠가 자신의 생명과 바꾸어준 인생인데,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야겠다.

이런 사명감 같은 있지 않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마찬가지 아닌가?

저주의 그늘 아래서 신음하던 우리를 구해내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죽음과 맞바꾸어 얻은 생명이 우리이다.


목회를 하다가 나태하고 게을러질 때면 이런 주님의 책망의 음성이 들려온다.

네가 그렇게 살라고 내가 십자가에서 너의 생명과 맞바꾼 아느냐?

네가 그렇게 살라고 대신 죽어준 아느냐?

음성이 우리 모두에게 들리는 은혜가 있길 바란다.



전에 청년 바보 의사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랫동안 올랐다.

책을 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이 돌았던 기억이 있다.

결혼도 30 초반의 청년 의사의 삶이 어떠했는지,

어떤 자세로 주변 사람들을 대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짧은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가 유행성 출혈열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맬 ,

병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외과 중환자실 안수현을 위한 혈액을 구한다 공고가 떴다.

그러자 공고가 나간 하루 만에

지정 헌혈과 헌혈증이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어떤 삶이 풍요한 삶인가?

무엇이 흘러넘치는 삶인가?

통장에 돈을 쌓아놓고는 죽을 때까지 쓰지도 못하고 가는 것이 풍요로운 삶인가?

언젠가 내가 땅을 떠날 ,

내가 남긴 삶의 향기가 아름다워 남은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그런 삶이 진정 풍요로운 삶이라고 있지 않을까?


나는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지로 축복하고 싶다.

흘러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살기 바란다.

믿는 자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을 인정받는 인생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풍요로움을 가두어 두지 말고 흘려보내기 바란다.

유통하기 바란다.

한국교회가 욕을 먹는 이유는 이것이 되기 때문이다.

흘려보내야 한다.

자꾸 흘려보내야 한다.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 주변이 형통의 복을 받아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 아이덴티티: 예수 안에 있는 , 이찬수 / 규장

 

기도


존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맞바꾼 나의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인생이 되도록

주님께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퍼지는 인생,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주위를 풍요롭게 하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그리스도인으로서 흘러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나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이 되기를 간구합시다.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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