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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평전’낸 안재성 소설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5. 9. 13:48

안재성 소설가 “돈-명예 마다하고 역사의 퇴비가 된 사람”

이지훈기자 입력 2017-05-09 03:00수정 2017-05-09 03:00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평전’낸 안재성 소설가
소설가 안재성은 “청년시절 윤한봉의 모습이 나와 흡사해 놀랐다”며 “내 꿈도 목장을 운영하며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합수(合水). 두 줄기 물이 합쳐진다는 뜻으로 호남지방에서는 똥과 오줌이 합쳐진 거름을 가리키기도 한다. “똥거름처럼 살겠다”며 합수를 자신의 호(號)로 삼은 이가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사진)이다.

그는 1980년 5월 전남도청 장악 투쟁을 계획한 혐의로 현상수배 명단에 오른다. 죄명은 내란음모죄. ‘살아남아 달라’는 동료들의 청에 못 이겨 이듬해 4월 미국으로 망명했다. 12년 만에 수배가 해제되고 1993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죽기 전까지 12평 임대아파트에 살다 폐병으로 2007년 세상을 떴다.  

그로부터 10주기 되는 해 그의 삶을 톺아보는 평전 ‘윤한봉’이 출간됐다. 작가는 노동운동가이자 소설가인 안재성(57)이다. 그는 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인간 윤한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윤한봉의 꿈은 목장을 운영하며 앞 못 보는 아내에게 피리를 불어주는 거였어요. 전남대 축산학과에 진학했지만 어수선한 시국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죠.”

그가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게 한 것은 유신이 계기였다. 대학생이 되고 3년 후인 1974년 박정희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대통령 중임 제한을 없앴다. 당시 상황을 그의 여동생 윤경자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라디오에서 ‘유신체제가 선포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오자 열불이 터진 합수는 책과 영어사전을 볼펜과 연필로 마구 찍어대고 황소처럼 벽을 머리로 들이받으며 고함을 질렀어요.”

길고 고된 투쟁의 시작이었다. 민청학련사건, 5·18민주화운동…. 독재에 맞서는 광주 학생운동의 중심에는 윤한봉이 있었다. 

작가는 윤한봉이 좌우(左右)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일성의 항일운동은 인정하지만 북한 체제는 비판했던 그는 좌파 운동권으로 완벽히 흡수되지 못했고, 망명 후 통일운동을 했던 그를 우파에서는 친북파라 비난했다. “윤한봉은 인도주의와 민족적인 의미에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사회주의체제에서 평등은 수용했지만 공산주의나 억압적 정치체제에 대해선 비판했죠.”(안재성)



2015년 겨울 그의 평전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안재성은 8개월가량 기자처럼 취재했다. 광주에 사는 윤한봉 가족뿐 아니라 미국에 있는 그의 지인 50여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녹취록만 1만 페이지가 넘었다.

“그때 만난 사람들 대부분 윤한봉을 ‘합수 형(兄)’, 이렇게 부르더라고요. 그는 탈권위적인 사람이에요. 저 역시 40년 넘게 운동했지만 아무 직위도 없이 퇴비처럼 살다 간 사람은 처음 봅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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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Main/3/all/20170509/84267367/1#csidxf83ac9c97ae04c58759f6322a10a5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