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묻어버린 법학교수 죽음의 진실
한승동 입력 2017.05.18. 19:46 수정 2017.05.18. 20:26
'유럽거점 간첩단사건' 판결문·진술서
30년 진상규명 활동과 자료 '집대성'
[한겨레]
만들어진 간첩-유럽거점 간첩단 사건, 그리고 최종길 교수 죽음의 진실
김학민 지음/서해문집·1만9500원
박정희나 ‘박정희 신화’를 평가할 때 간과하기 쉬운, 그러나 핵심 포인트 중의 하나는 그와 그의 시대를 비교 평가할 상대가 없다는 점이다. 흔히 그를 한국 경제성장과 근대화(산업화)를 이끈 최고의 지도자로 일컫고, 그의 ‘탁월한 영도력’을 숭배 대상으로 삼지만 비교 대상이 없는 ‘최고’나 ‘1위’ 등의 비교 수사들은 억지 선전이거나 사기(속임수)일 수밖에 없다. 그 졸렬한 1인극의 추악한 이면을 살피지 않는 박정희나 박정희 신화 평가는 한마디로, 거짓이다.
김학민의 <만들어진 간첩>은 바로 그것을 실증하는 또 하나의 보고서요 피 맺힌 증언이다. 북이 밀파했던 황태성의 평전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2015)로 박정희 시대 이면을 파헤친 김학민이 이번 책에서 다룬 것은 1973년 10월 영문도 모른 채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 불려간 지 사흘 만에 만신창이가 돼 죽은 최종길(당시 42살) 서울대 법대 교수와 그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덮고 정권 안보를 위해 날조한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이다.
1931년 충남 공주 반포면에서 난 최종길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한국인 최초로 독일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소르본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당대 유수의 자유주의 민법학자였다. 그가 서울법대 학생과장을 맡았던 기간(1969년 8월~70년 2월)은 대학생들이 앞장섰던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또 하나의 정점에 이른 시기였고 서울법대는 그 중심에 있었다. 이 상황이 그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2년간의 하버드법대 교환교수 생활과 6개월간의 독일 쾰른대 방문체류 뒤 돌아온 그는 1972년 8월에 서울법대 교수로 복귀했다. 2개월 뒤인 그해 10월17일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 쿠데타’가 일어났고 1973년 10월2일 서울대 문리대에서 처음으로 반유신 시위가 벌어져 학생시위가 번졌다. 그 두달 전인 8월엔 김대중이 백주에 일본 도쿄 도심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0월4일 유신반대 서울법대생 전원회의와 긴급교수회의가 열렸고 그 자리에서 최종길은 학생들의 행동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역설했다. 며칠 뒤 최 교수는 중앙정보부에 소환당했고 그달 16일, 중앙정보부 제9기 정규과정에 수석으로 합격해 그해 1월에 첫 보직으로 감찰실에 발령받았던 막냇동생 최종선의 안내를 받아 자진출두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죽었다.
10월19일 중앙정보부는 증거도, 자필 진술서나 심문조서, 구속영장 한장도 없이 ‘최종길이 북에 가서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고 자백한 뒤 7층 화장실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가족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리고 그달 25일 돌연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면서 최종길을 거기에 끼워 넣었다. 모두 54명으로 발표된 그 ‘간첩단 조직’에서 단 2명만 기소됐으나 그들조차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거나 2012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그 6년 전의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이 그랬고, 수백명이 영문도 모른 채 당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나 납북어부·울릉도 간첩단 사건 등이 그러했듯이. 민청학련·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1천명 이상 구금당하고 8명이 전격 처형당한 게 1974년이었고, 언론자유실천운동을 벌이던 동아·조선일보 기자들 200여명이 무더기로 해고당한 것도 그때였다.
<만들어진 간첩>은 최종길 고문치사 사건 직후 충격 속에 보름간 세브란스병원 정신병동에 들어가 자신이 파악한 사건 전말을 몰래 기록한 동생 최종선의 ‘양심수기’(2001년에 다른 글들을 보완해 <산 자여 말하라: 고 최종길 교수는 이렇게 죽었다>로 출간)를 축으로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 판결문과 진술서 등 재판 문서, 당시 중앙정보부 주무수사관 차철권의 2002년 <신동아> 인터뷰, 그리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 여기에 여러 보도와 관련 인사·친지들의 기고·증언들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아직도 직접적인 사인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중앙정보부 발표 어디가 어떻게 날조·조작됐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유가족·친지 등의 30여 년에 걸친 진실규명 노력의 궤적도 함께 담았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마당발’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그동안 단편적으로는 발표되거나 소개된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이 사건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적은 없었다”면서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지난날 어떠한 질곡과 고난 속에 살았으며, 이 나라 이 공동체가 어떻게 오늘 여기까지 왔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비극적이면서 희극적으로 끝난 박근혜 정권과 친박세력들이 시대를 거스르며 복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며, 왜 그랬는지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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