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 마16:13-20, 요한2서1:1-12
세상에는 많은 조직과 단체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은 두 곳으로 하나는 가정이요, 또 하나는 교회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건강하면 사회도, 국가도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이 병들고,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면 사회도 국가도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바로 세우는 기관으로 가정과 교회를 세우셨지만 이 시대의 많은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위험수위를 벌써 넘어섰습니다.
교회마저 주님이 주신 권위와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교회의 본질을 바로 알아서 우리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 교회다운 교회,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 있는 교회로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러시아가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얼마나 교회가 성했던지 모릅니다. 교회당 건물도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하게, 웅장하게 교회들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 교회들을 다 폐쇄했습니다. 교회를 학교로 사용하고, 형무소로, 관공서로,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병원으로 사용하고 심지어는 풀장으로까지 사용했습니다. 어떤 곳은 하나님은 안 계신다는 무신론을 강의하는 강연 장소로까지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70년 만에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남는 것은 가난 밖에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초창기에 북한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복음이 왕성하게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6.25 때에 북한에 공산당이 집권 하면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엄청난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교회들을 불태우고, 수많은 성도들을 학살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남은 것은 가난과 억압, 인권 유린이 곳곳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뜨거운 믿음을 가진 자들이 남한으로 피난 와서 교회를 세우고 섬김으로 교회가 부흥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정도로 경제적인 성장과 사회 각 분야에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전이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세속의 물결이 들어와 교회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고, 성도들의 순수한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의 모습 보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모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모두 정신 차린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는, 1.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이 있는 교회입니다.
복음서 본문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주님은 요17:3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서신서 본문 1:7에 미혹하는 자 곧 적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신자들이 미혹하는 이단에 빠지게 됩니까?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바른 고백 없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발자취만을 따라야 할 자들이 여기에 구원이 있다. 이 무리에 들지 못하면 구원 받지 못한다고 미혹하는 자들에게 미혹되는 것은 무늬만 신자요, 말로만 예수 믿는 것이지 실상은 예수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무 기뻐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속죄와 구원을 위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유일한 구원의 문이 되신 분이요, 유일하게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으로 모든 믿는 자들의 소망이 되시는 분입니다.
바른 믿음의 고백을 한 시몬에게 베드로, 곧 반석이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인간 베드로가 아니라 믿음의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인간 베드로는 믿음이 부족해서 주님의 책망을 받기도 했고,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기도 했으며, 위선적 행동으로 후배인 바울의 책망을 받기도 했고,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 하는 자리에 있기도 했고, 주님의 부르심을 잊고 다시 고기 잡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바른 신앙고백을 할 때 반석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여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와 같은 이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자가 진정한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아무리 공교한 말로 유혹을 해도 미혹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주님 곁을 떠난다 해도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말하며 절대로 주님을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 자가 됩니다. 이런 자들에게 천국 열쇠가 주어지고, 천국 문이 열리게 됩니다.
미국의 뉴욕은 빌딩숲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위시해서 지난번 911 사건으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 등, 엄청난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까닭은 그 땅의 지반이 든든한 반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높이 솟아오르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이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그래야 주님 오실 때까지 미혹 되거나 파선 되거나 무너짐이 없이 견고히 서있는 신앙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바른 신앙 고백위에 견고한 믿음의 집을 지읍시다.
2.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는 교회입니다.
요한2서1:4에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했습니다. 요한2서는 원어로는 245 단어로 된 짧은 편지로 된 성경입니다. 그 중 1절에서 4절까지는 진리라는 말이 각 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습니다.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곳인데 하나님이 바로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 65:16에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했습니다. 진리의 하나님을 히브리어로는 ‘엘로헤 아멘’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요14:6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이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요 14:16-17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성 삼위가 모두 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요, 교회에서는 이 진리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진리는 교회의 생명이요, 교회를 교회 되게 합니다. 진리의 말씀은 울타리와 같아서 미혹의 길로 가지 못하게 막아줍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티코미로프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 부모와 함께 농업하기에 좋은 환경을 찾아 유럽에서 시베리아로 이주해왔습니다. 오랜 여행 끝에 그의 부모는 콜레라로 죽었고 그 소년은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은 먹고 살기 위해 도적 떼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8년 간 그들은 농사짓는 이웃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그날도 일당과 함께 두 사람을 살해하고 소지품을 강탈했습니다. 탈취 물 가운데는 두 권의 책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신약성경이었습니다. 그는 숙소로 돌아와 잠들기 전에 그 책을 뒤적이다가 롬 3:15-18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성경 앞면에 손 글씨로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1898년 5월 15일 주님께 회개함으로 중생을 체험하다. 그날 주님은 내 죄를 용서하시고 그의 거룩한 보혈로 나를 씻어주셨다.” 이 글이 뭔 뜻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하여 틈만 나면 읽고 또 읽었습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십자가 위의 두 강도 이야기가 그를 강하게 사로잡았고 드디어 죄악생활을 청산하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다른 일곱 명도 그와 함께 자수하는데 동의했습니다. 그들은 10년의 중노동형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는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졌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드디어 사면되어 소련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걸어서 가는 도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간증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그는 신앙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는 중에도 후에 목사가 되어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인 사람으로부터 강탈한 신약성경을 늘 소지하고 다녔는데 그 성경 첫 페이지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를 용서해주시오. 내가 죄 속에 빠져 있었을 때 당신을 죽게 했소. 주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소. 그의 죽으심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영생으로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오. 이 성경은 나의 굳어진 마음을 생수같이 부드럽게 해주었소. 그것은 내 목마름을 달래고 계속하여 흐르면서 다른 영혼에게 생명을 주며 활기를 띠게 하고 있소. 이로써 나는 그대와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오. 아멘.” 이처럼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버리게 만들고, 성결하게 하며, 비전을 세워주고 그 비전을 따라가도록 열정을 안겨줍니다.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 때 은혜 체험이 따르게 되고, 기쁨과 감격이 따르게 되며, 보람과 하늘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3.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행하는 교회입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에서 사도요, 장로인 요한은 성도는 진리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존재들인 것을 가르쳐줍니다. 요한2서 1:3에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했습니다. 성도의 사랑은 진리를 중심으로 한 사랑입니다. 진리를 동반하지 않은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사도 요한은 바른 진리를 떠나 거짓으로 미혹하는 이단에 빠진 자들에 대해 10절에서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비 진리와는 타협하지 말고 단호하게 대하라는 말입니다. 성도가 진리를 떠나면 그 순간 영적 생명에서 끊어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진리를 사수해야 합니다. 중세에 잔 후스(Jan Hus 1370~1415) 라는 종교개혁가가 있었습니다. 보헤미아, 지금의 체코에서 태어나 프라하대학의 학장을 지낸 분이었습니다. 후스는 중세카토릭교회의 타락을 공격하다가 프라하대학의 학장직에서 추방당해 유랑생활을 했고 파문당했습니다. 권세를 잡은 이들은 후스에게 콘스탄스(Costance)라는 곳에 와서 함께 토론하자고 했습니다. 신분을 보장하고 공정하게 토론하고 안전하게 돌려보낼 것을 보장하니 오라고 했습니다. 후스는 그 말을 믿고 약속한 곳으로 갔습니다. 가자마자 체포당해 감금되었습니다. 후스는 굽히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호소한다. 그 분은 그릇된 증언이나 잘못된 공의가 아닌 진리와 정의를 기초로 판결하실 터이기 때문이다.”
1415년 7월, 후스는 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가롯 유다라는 비난을 받으며, 마귀의 형상을 그린 모자를 씌우고 사형장으로 끌려가서 화형을 당할 때 후스는 부드러운 얼굴로 자기를 도와주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는 태연한 모습으로 시편을 찬송하고 기도하며 불꽃이 타오르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잔 후스는 목숨을 위해 진리가 아닌 것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잔 후스의 순교는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순교로 꼽히고 있습니다. 후스의 개혁운동은 마르틴 루터에게 이어져 열매를 맺었습니다. 체코 프라하 광장 중앙에는 잔 후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는 진리가 아닌 것은 따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반대로 진리 안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힘써 사랑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요한3서 1:8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전도대원들이 어느 아파트 앞에서 전도하고 있는데 그 아파트 주민 하나가 와서 나는 어느 교회에 나가는 누구라고 소개를 하더랍니다.
전도대원들은 그 사람이 ‘여기는 내 전도구역이니 다른 데로 가세요.’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 분은 수고한다고 하고 ‘나는 이 아파트 몇 호에 사니까 전도하다가 목이 마르거나 화장실을 사용할 일이 있으면 자기 집으로 오세요.’라고 하더랍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교제하는 본받을 만한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랑입니다. 진리를 바탕으로 한 거룩한 사랑이 아니라면 요한2서는 부도덕한 문서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5절에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 사랑이 진리를 바탕으로 한 거룩한 사랑이 아니고 남녀 간의 에로스적인 육적 사랑이라면 요한2서는 외간남자가 유부녀를 유혹하는 불륜의 편지가 되어서 스캔들이 크게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성도의 사랑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거룩한 사랑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겸손히 섬기는 사랑, 희생의 사랑, 주는 사랑, 원수까지라도 용서하는 사랑, 끝까지 변치 않는 사랑으로 차원이 높은 사랑, 숭고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는, 1.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이 있는 교회입니다.
2.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는 교회입니다.
3.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행하는 교회입니다. 아멘.
<2017. 5. 21. 성산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호현낙선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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