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특정 정당·정치인에 대한 인터넷 댓글을 작성하라고 지시해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6)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이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대웅 부장판사)는 30일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 대해 두 혐의 모두 유죄로 보고 이같이 선고했다. 원 전 원장은 법정에서 구속됐다.
원 전 원장의 지시를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전파해 댓글 대선개입을 실행한 혐의를 받은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60)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59)에 대해서는 징역 2년6개월·자격정지 2년6개월·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트위터 계정 391개를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했다며 이 계정으로 트윗 글 29만5636건을 작성했다고 판단했다. 이중 정치인으로 분류하지 않는 교육감에 대한 글 일부를 제외한 28만8926건이 정치관여 행위로 인정됐다.
당초 항소심은 계정 716개, 트윗 글 27만4800건을 심리전단 직원들이 작성한 것으로 봤었다. 심리전단 직원 김모씨 e메일에 첨부돼있던 ‘425지논’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그 안에 기재된 트위터 계정도 모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인한 2015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이들 파일에 기재된 계정을 제외했다.
재판부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서 특정 게시글에 찬성·반대 클릭한 행위 1200회, 이외의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2027회도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원 전 원장은 재판 과정에서 대북 심리전 차원으로 쓴 글이지 대선개입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게시글의 내용이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직접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취지라 정치관여 행위가 명백하다고 봤다.
국정홍보성 글이나 현직 대통령을 옹호하는 게시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고인들 주장처럼 북한 흑색선전이나 국정 성과 폄훼에 대한 대응이었다고해도 객관적 내용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대한 지지·반대로 이어지면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며 “선제적으로 정책을 홍보해 다양한 의사결정을 막은 것도 정치관여 행위”라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1심이 무죄로 봤던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댓글 활동은) 18대 대선과 관련해 여당 및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당선을 도모하거나 야당 및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등의 낙선을 도모하는 능동적·계획적 행위로 선거운동에 해당된다”며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와 트위터 계정에서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반대하는 동일 게시물들이 장기간 반복 게시되거나 트윗·리트윗됐다”고 밝혔다.
국정원 심리전단이 댓글활동을 시작한 2012년 1월엔 대선후보자가 결정돼있지 않아 특정 후보자의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선거운동은 아니라고 했던 1심 판단에 대해서는 재판부는 “국정원 내부적으로 대선 관련 별도 팀을 꾸린 것이 명백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평상시 활동 자체가 특정 정당 및 정치인 지지하고, 반대해 선거국면에서 영향을 미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원 전 원장은 심리전단 직원들이 댓글을 다는 내용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며 공모관계를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이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정원의 상명하복 관계와 원 전 원장이 가지는 조직 장악력을 보면 원 전 원장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범행 지시하지 않았다고 해도 활동 내역을 보고받고 승인해주면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이상 범행을 촉진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이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댓글 하나하나에 대해 일일히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이 전 차장과 민 전 단장을 통해 지시내용이 하달돼 댓글활동이 이뤄졌으므로 순차적 공모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 등이 행한 사이버활동은 정당한 (북한) 대응활동이 아닌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반대하는 것으로써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행위”라며 “정당의 정치활동의 자유와 의사형성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 침해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국정원과 국가기관 대해 국민 신뢰가 상당부분 훼손됐으나 원 전 원장 등이 반성하지 않고 직원들의 일탈행위로 치부하거나 개인적 책임으로 돌렸다”며 엄정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3년 6월 기소된 원 전 원장은 2014년 9월 1심에선 징역 2년6개월·자격정지 3년·집행유예 4년을, 2015년 2월 항소심에선 징역 3년·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선고 직후 법정구속된 적이 있어 이번이 두번째 법정구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