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독립’ 보장 위한 제도개선 논의 집중
“고법 부장 발탁 위해 사법행정 순응” 지적
이용훈 대법원장 추진·양승태 대법원장 무력화
12월4일 4차 회의서 행정처 개혁 논의 예정
12~13일 청문회 앞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행정처 비대화·인사제도 개선” 의지 밝혀
“고법 부장 발탁 위해 사법행정 순응” 지적
이용훈 대법원장 추진·양승태 대법원장 무력화
12월4일 4차 회의서 행정처 개혁 논의 예정
12~13일 청문회 앞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행정처 비대화·인사제도 개선” 의지 밝혀
대법원의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으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4월7일 낮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전국법관 대표회의(의장 이성복 부장판사)가 11일 3차 회의를 열어 고등법원 부장판사 보임 폐지를 결의하는 등 ‘법관 독립’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래로부터 제시된 사법 개혁의 밑그림이 새 대법원장 취임과 맞물려 어떤 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법관회의는 이날 96명의 법원 대표 중 92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고법 부장판사 보임 폐지·지방법원과 고법 인사의 이원화 △법관 의사가 실질적으로 반영된 사무분담 △법관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 근무평정 개선 △법관 전보인사의 최소화 등을 결의했다. 법관회의가 개선을 요구한 이 같은 제도들은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와 ‘법원 관료화’의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법관회의 공보를 맡은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 부임 비율이 소수에 불과해 고법 부장에 발탁되기 위해 사법행정에 순응하는 법관 관료화가 심화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지난 2월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설문조사에 답한 법관 502명 중 443명(88.2%)이 “사법행정에 관해 대법원장, 법원장 등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한 법관이 보직, 평정, 사무분담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96.6%(483명)는 “법관의 독립 보장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사법행정 분야가 있다”고 답하며 승진제도와 전보제도, 재임용제도 개선을 지목했다. 법관회의도 승진, 근무평정, 전보에 법관들이 신경 쓰다 보면 재판이나 판결에서 대법원의 눈치를 보게 되고, 법관의 독립이 무너지면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도 2011년 정기 인사부터 지법과 고법 판사의 인사를 분리해 장기적으로는 고법 부장 ‘승진’을 없애려 했으나, 양 대법원장 때 무력화됐다.
이와 함께 법관회의는 ‘법원 중심의 재판’, ‘법관 독립 보장과 공정한 재판’ 등의 사법행정 개혁 방향에 공감하고 오는 12월4일 4차 회의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기로 했다. 주요 내용으로 △법원행정처 기능 분산 △사법정책 수립에 국민·법관 의사 반영 △사법행정 절차의 투명화 △윤리감독 기능의 독립과 실질화 등이 담겼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설화를 약속한 법관회의 대법원 규칙안도 결의됐다. 규칙안을 보면 법관회의는 대법원 규칙 제정·개정 의견 제출, 법관 인사 위원회·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 등 각종 사법행정 위원회 법관 위원 추천, 주요 인사원칙 설명 요구 및 의견 제시 등의 권한을 갖는다. 또 약 100여명으로 구성된 법관회의가 1년에 두 번(4월, 12월) 회의를 갖도록 했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가 지적한 사법행정권 남용 이뤄진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회의 자료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법행정 기록의 투명한 관리와 철저한 보존도 결의했다.
오는 24일 퇴임하는 양 대법원장의 임기 중 마지막 법관회의였지만 앞서 결의된 ‘사법부 블랙리스트’ 등 사법행정권 남용 추가 의혹 조사 요구는 나오지 않았다. 법관회의는 6월 첫 회의에서 추가 조사 권한 위임을 요구했지만, 양 대법원장은 “교각살우의 우”라며 거절했다. 12~13일 청문회가 진행될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와 대법원장의 권한 축소 등이 논의되고 있는 개헌 관련 논의도 이날 진행되지 않았다.
한편 김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법원조직 측면에서의 최우선 혁신과제는 사법행정의 제자리 찾기”라며 사법 제도 개혁 의지를 밝혔다. 먼저 김 후보자는 여러 차례 “제가 추구하는 사법행정은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사법행정은 재판을 지원하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행정처의 비대화 문제는 행정처에 근무하는 판사를 몇 명 줄이는지의 문제에 그쳐서는 해결될 수 없다”며 “사법정책과 사법행정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권능은 행정처의 고위 간부 몇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관회의, 전국법원장회의,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에 그 권능을 적절한 방식으로 이관하거나 실질적으로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김 후보자는 답했다. ‘제왕적 대법원장제’ 행정처 중심의 법원 관료화 원인으로 지목된 인사제도의 개선도 김 후보자는 지적했다. 김 후보자는 “법관들이 근무평정 주체인 법원장이나 최종적인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하거나, 상급심 판결례에 반하는 판결을 하는 경우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며 “법관의 관료화를 막고 판사들이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도록 법관 인사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