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가 25일 공개한 ‘정치인·교수 등 엠비(MB)정부 비판세력 제압 활동’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박지원·정동영 의원 등 당시 야권 인사들뿐 아니라 홍준표·정두언·원희룡 등 여권 인사들까지 온·오프 라인에서 비판 활동을 전개한 사실이 확인됐다.
군과 국정원까지 아우르며 은밀한 공작을 지시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에 최고 권력기관과 그 권력자밖에 없다. 국정원과 군을 동원한 총선·대선 등 선거개입만으로도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뿌리째 뒤흔든 명백한 헌정 유린 행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정치인 대상 공작까지 공개된 이상 ‘이명박 청와대’ 인사들이 “정치 보복” 운운하며 물타기할 상황은 지나버렸다.
개혁위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국정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정부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등에 비판 글을 싣고 어버이연합 등을 시켜 노무현재단 앞에서 규탄 시위를 열게 했다. 오프라인 심리전을 위해 극우인사 변희재씨가 운영하는 미디어워치에 구독·광고를 지원하는 등 조직적인 여론조작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이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확인되는 등 이명박 정부의 공작정치는 분야와 영역을 가리지 않고 상상을 초월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2012년 2월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작성한 ‘사이버 심리전 작전지침’이 공개된 데 이어 같은 해 3월의 ‘사이버사령부 관련 비에이치(BH) 협조 회의 결과’ 문건이 25일 공개된 것도 심각하다.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요청으로 청와대와 사이버사가 함께 회의한 내용을 정리해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결재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3월 문건에는 ‘대통령 지시사항’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군무원 순수 증편은… 대통령 지시” “대통령께서 두차례 지시하신 사항임을 명문화 강조”라고 굵은 글씨로 강조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이버사 군무원 채용을 두차례나 지시하고 예산 편성까지 기획재정부에 요구하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서거 직후 비난공작을 벌인 것도 모자라, 또다시 노 전 대통령을 끌어들여 ‘전 정권 죽이기’ 운운하는 친이 측근들의 행태는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 댓글공작 관련 영장이 일부 기각되는 등 사안의 심각성이 오도되는 듯한 일각의 분위기는 매우 유감스럽다. 반민주적 헌정 유린 범죄를 적당히 덮으면 반드시 더 큰 범죄로 재발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