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재론 바람직하지 않아” 발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건호씨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혐의 고발장을 접수하기 전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씨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부부싸움 때문”이라고 주장한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을 25일 검찰에 고소했다. ‘막말 정쟁’에 휘말리기보다 단호하게 법적 책임을 지우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정 의원은 “검찰 수사에 당당하게 응하겠다”고 했지만, 당내에서는 정 의원이 자초한 정치적·법적 논란의 확산을 바라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재단법인 노무현재단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지난 20일 피고소인 정진석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허위의 사실을 게시함으로써 노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진석씨를 명예훼손 및 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노건호씨는 이날 오후 3시께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방문해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필요에 따라 고인을 욕보이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치적 가해 당사자가 오히려 피해자를 다시 짓밟는 일은 용납하기 어렵다. 추악한 셈법으로 고인을 욕보이는 일이 다신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쪽의 고소에 따라 논란은 검찰 수사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정 의원의 처분을 검찰 수사에 맡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정권의 불법·탈법 행위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자유한국당이 ‘정치보복’을 주장하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둘러싼 논쟁이 전·현 정부의 갈등 구도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박범계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에 출연해 “정 의원의 발언은 감정을 끄집어내서 결국은 정쟁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라며 “(정 의원이) 그냥 법적인 대응과 법적인 책임을 지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이건 징역 실형 8개월이 나온 조현오 경찰청장이 했던 말과 버금간다”고 덧붙였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010년 한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 차명계좌가 발견되지 않았느냐”고 말한 것이 알려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적폐청산을 하자면서 (이전 정권과)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면 또다른 적폐를 낳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또한 국정원과 검찰을 통한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정 의원은 이날 저녁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검찰 수사에 당당하게 응해 사실관계를 따지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정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이명박·박근혜 정부 조사’에 맞서 ‘물타기’를 하려다 거센 역풍을 자초했다는 말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도 재수사하라”며 맞불을 놓은 지 사흘 만에 홍준표 대표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홍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을 향해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문제를 두고 정 의원이 한마디 한 것을 침소봉대해서 본질은 외면하고 곁가지 논쟁을 벌이고 있다. 더 이상 그 문제를 두고 재론하거나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센 비난 여론과 함께 ‘공소권 없음’으로 끝난 이 사건을 재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두루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엄지원 김남일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