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중생자가 남에게 해를 끼치나?
엡5:8-11 ‘8.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 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아멘.3 인간은 모두 죄인으로 나서 죄 된 세상을 살다가 죄값으로 하나님의 심 판을 받게 되는데. 죄인임을 증거하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 하신 간단한 언약이 사랑이 많으 신 하나님께서 2천 년 전에 독생자를 주셔서 희생시키시고 이제 주를 믿는 자마다 의롭다고 하시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롬3: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 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문제는 예수 믿어도 죄의 근성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존재로서 의 삶을 살기를 노력해야 합니다.그 중에 거듭난 자로서의 이웃과의 관 계에서 가져야 하는 윤리적 인격을 다시 생각하고 [중생자가 남에게 해 를 끼치나?] 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도는 교양적 문화인이 아니라 영적으로 새로운 영혼 사회가 교회를 비판할 때 복음대로 사는 자를 사상적으로 미워하는 소 위 핍박이 있는가 하면 교회가 세상에 빛이 되라 하셨는데 오히려 범죄 를 저질러 세상에 부끄러운 행동을 할 때 비난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할 수 있으나 반성하고 깨끗하게 새로워지려는 회개 가 없을 때 우리는 그를 성도, 중생한 성도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 다. 본문 8절,‘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 녀들처럼 행하라’ 성도라는 명분의 존재는 단순히 교회당을 왕래하는 종교문화인이 아 니라 영혼이 달라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중생할 때 자각하 게 되고 큰 기쁨으로 확신하며 변화된 언행을 나타내 보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문화를 발전시키며 수행을 하고 철학을 해도 근본이 달 라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어둠의 영, 사탄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죄와 어두움의 정신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요1:9)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갈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 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 이었더니’ 2. 성도는 영적 빛을 문화생활에 보여야 하나님의 백성은 공동체 생활에 어긋맞게 이단처럼 행동하는 것은 잘 못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1) 빛 되기 위한 태도로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이웃에게 잘해주기 전에 먼저는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합니다. 법이 설정 된 것은 이웃에게 잘하는 자에게 상을 주기 위함보다 잘못하여 해를 끼 친 자에게 벌을 주려고 하는 조항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영적 빛을 받으면 이웃을 생각하며 살게 되는데, 그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이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생활을 진실케 합니다. 본문 9-10절, ‘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 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믿음을 받고 영혼이 거듭나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웃 관계 속에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게 하시는 새로운 정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바른 인간의 정신이 회복되어 바로 삽니다. 내가 하는 이 일과 계획이 주님께 합당한지, 그리고 주님 기뻐하실지 시험을 해보라는 이 시험,도키마죠(δοκιμάζω)는 언행에 있어 마치 과 학적 검사를 하듯이 가치가 거룩하고 하나님께 합당한지 정밀히 조사 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생활에 대한 교육이 신학적으로도 준비한 목사가 가르쳐야 하는 겁니다. 2) 사회 속에 어둠의 일을 책망도 해야 함 기독교인은 개인주의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났을 때부터 그런 개인주의로 살던 세상의 정신에서 변화를 입었습니다. 어둠의 일 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은, 대부분 자기 영혼의 상태가 건강하지 못 해서 그렇습니다. 비난과 책망을 다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적극적으로 믿음과 의로움에 대한 삶을 권장해야 합 니다. 소극적으로만 사는 것은 바른 성도의 태도가 아닙니다. 본문 11절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 하라’ 자식을 성장시키려 할 때 부모는 격려와 함께 책망을 합니다. 그것은 죄의 근성을 제압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사람은 원죄 이후 죄의 근 성이 많아 10계명에 하지 말라는 말씀이 8회 하라고 권장하심이 2회 있습니다. 그만큼 잘못이 많은 인간입니다. 세상은 진리가 없으므로 책망 받기보 다 서로 이해를 나누고자 합니다. 소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하고 하나 님의 징벌을 받을지도 모를 일에도 규합을 하려 합니다. 이렇게 잘못 살고 있는 이웃이 망하게 되는 길을 가는데 내버려 두는 것도 성도는 무관할 일이 아닙니다.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 받게 하고 또한 주님의 선하신 삶의 법칙을 몸소 보이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해야 합니다. 이것은 간섭하는 것으로 여기 말고 세상을 정화하기 위한 선지 자적 소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요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실 때 그 정황은 우리가 죄인됨과 사회의 악 을 드러내고 회개를 외치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례요한도 세 상의 권세자의 부도덕을 지적하고 유대인들을 향해 죄를 회개하라고 외치며, 마3:7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 라 하더냐’ 이것은 이웃을 살리고자 하는 충고요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는 선교입 니다. 죽어가는 이웃에게 무관심한 것도 마찬가지로 간접적인 해를 끼 치는 복음증거에 태만한 일입니다. 이 말세에 개인주의가 팽창하여 이웃이 없습니다. 세인들은 그렇게 산 다해도 신자라면 그리 살면 안 됩니다. 주님의 교훈대로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서 삶의 모범이 되기를 원합 니다. ------------------------------------------------------------------- 출처:사이버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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