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종합적 점검
구조적 폭력이 만들어낸 욕망
인간 존엄 관련된 인권의 문제
토지 가치의 공동체 소유 주장
구조적 폭력이 만들어낸 욕망
인간 존엄 관련된 인권의 문제
토지 가치의 공동체 소유 주장
안티 젠트리피케이션-무엇을 할 것인가?
신현방 엮음/동녘·1만9000원
신현방 엮음/동녘·1만9000원
“한 집에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면 사람들은 그것을 폭력이라고 하지만, 모든 집에서 여성이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을 폭력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구조적 폭력’을 짚어내는 평화학자 요한 갈퉁의 말이다. 마찬가지로 한 집에서 용역깡패가 세입자를 폭행하고 끌어내면 폭력이라고 보지만, 모든 집에서 세입자가 언제 내쫓길지 모르는 불안함을 견디며 사는 것을 폭력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혹은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은 ‘구조적 폭력’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는 시대, 많은 청년의 꿈이 ‘건물주’인 시대라는 게 오늘날의 만연한 젠트리피케이션과 열악한 세입자 지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안티 젠트리피케이션>은 인권운동가, 쫓겨난 예술가, 주거권 운동 변호사, 기록사진가, 다큐 감독 등 10여명의 필자가 생생한 언어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을 기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지난해 7월7일 그룹 리쌍(길, 개리)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자신들 소유 건물에서 곱창집 ‘우장창창’에 대한 강제집행을 시도하자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과 연대 단체 회원들이 몸으로 막고 있다.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이미 성북동과 동숭동에서도 쫓겨난 경험이 있었던 갤러리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영업을 해도 된다는 건물주의 말을 믿고 2010년 한남동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새 건물주가 된 가수 싸이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들인다는 이유로 나가라고 통보한다. 대화를 요구하자 돌아온 건 고소와 소송과 강제집행. 신사동의 곱창집 ‘우장창창’도 건물주가 가수 리쌍으로 바뀌면서 계약 갱신 거절, 소송, 강제집행 등의 과정을 겪었다. 2010년 북촌에 자리 잡은 ‘장남주 우리옷’은 건물주가 4번이나 바뀌면서 끝도 없이 월세를 올려줬지만, 결국은 직접 영업을 하겠다는 건물주에 의해 강제집행 명령이 내려지고 사설 용역에 의해 쫓겨났다. 서울 미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촌의 25년 된 헌책방 ‘공씨책방’도 커피숍에 임대를 주려는 건물주에 의해 나앉을 판이다. 서울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현행법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한·일 ‘권리금’ 연구를 하는 서울대 다무라 후미노리 연구원은 ‘용역을 통해 세입자를 내쫓는 일은 일본에선 100년 전에나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곳곳에서 쫓겨나는 세입자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고, 최근 5년간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책과 논문,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고 있으며, 국립국어원도 ‘둥지 내몰림’이라는 대체어를 내놓을 만큼 젠트리피케이션은 일상이 되었다. 과연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은 개별 건물주의 무한 욕망에 있으며, 사적 소유물에 대한 무제한 권리가 합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은 “인류 역사상 막을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책은 “소유주의 욕심이나 의지는 강제퇴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구조적 폭력이 만들어낸 욕망에 가깝다”며 인권적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 신시내티주 어느 거리에 붙어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포스터. 출처 플리커.
집이 없는 사람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실업수당을 줄 때, 이것이 ‘구휼’이냐 ‘인권’이냐는 관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인권의 관점으로 접근할 때 국가가 보호해야 할 것은 집과 일 자체로 한정되지 않는 ‘사람다움’이다. 집이 없어서 집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집이 없는 상태가 사람다움 즉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집을 공급하는 것이다. “건물주가 어떤 사람이건 지대의 변화가 어떠하건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쫓겨나선 안 된다. 공간은 물건이기 이전에 삶이기 때문”이다. 국제인권기구는 오래전부터 강제퇴거가 중대한 인권침해임을 강조해왔고,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은 ‘점유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점유가 안정적으로 보장되어야 삶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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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구체적인 법적 제도 개선도 제안하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토지 가치를 사회적·공동체적으로 소유하는 지역자산화 운동도 소개함으로써 토지의 본질을 회복하는 장기적 대안까지 제시한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도 질문은 계속 귓전에 떠돈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현장을 찾아다니며 연대와 나눔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최소연 디렉터의 질문 말이다. “왜 이렇게까지 폭력적으로 내몰까? 왜 대화를 안 할까? 왜 가짜뉴스를 퍼뜨릴까? 왜 시민들은 건물주 편일까? 그 많던 이웃들은 다 어디로 쫓겨난 걸까?”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