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국선변호인][한겨레 프리즘] 박근혜의 법정투쟁을 응원한다 / 이본영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2. 6. 04:57

[한겨레 프리즘] 박근혜의 법정투쟁을 응원한다 / 이본영

등록 :2017-12-05 17:35수정 :2017-12-05 19:14

 

이본영
국제뉴스팀장



셋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고 공자가 말했다. 좋은 것은 본받으면 되고, 나쁜 행동에서도 고칠 점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악당조차 본의 아니게 사회 발전에 기여해 이름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

미국 형사사법 분야에 그런 뚜렷한 사례들이 있다. 에르네스토 미란다가 한 예다. 어려서부터 절도, 강도, 성범죄 등 블루칼라 범죄를 섭렵하며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든 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길 기회를 잡은 것은 납치와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면서다. 극빈자 법률 구조에 나선 그의 변호인들은 무지한 사람에게 수정헌법이 규정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고지하지 않고 받아낸 진술은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침 민권 향상에 크게 기여해 ‘슈퍼 대법원장’으로 불린 얼 워런이 수장이었던 연방대법원은 1966년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다. 유명한 미란다 원칙이 탄생한 순간이다. 그보다 3년 전에는 부랑자이자 알코올 중독자인 클래런스 기디언이 절도 혐의로 구속되자 수정헌법을 독학했다. 마침내 공공변호인(한국의 국선변호인과 비슷) 제도를 전면화한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좀도둑 출신의 묘비에는 그가 변호인에게 보낸, “모든 시대는 인류를 위한 법률의 진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난 믿는다”라는 편지 문구가 새겨졌다.

지금 한국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본의 아니게 약간의 기여를 하고 있다. 첫째, 형사사법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예를 들어 1심의 경우 6개월 안에 끝나지 못하면 새 구속영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지게 됐다. 매우 심각한 처분인 인신 구속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일깨웠다. 대통령 탄핵심판 제도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끌어올린 것도 ‘성과’다. 대형 사건은 사법제도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넓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국선변호인 제도의 희망을 보게 해줬다. 국선변호인 제도는 취지가 매우 중요하고 발전이 없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요식행위로 인식되는 측면이 강하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국선변호인은 무죄 변론을 기대하는 구속자에게 “나 이렇게 국선 해서 얼마 받는지 알아요? 고작 30만원 받아요, 30만원!”이라며 버럭버럭한다. 사건의 중요성과 복잡성 때문이긴 하나 박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이 5명이나 선임된 게 우선 신기하다. 그들이 12만쪽이나 되는 재판기록을 꼼꼼히 살피며 분투하고 있다니 신선하다. ‘10초 변론’이라는 비난이 자취를 감출지 기대된다.

셋째,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공화국의 이념을 몸소 구현하는 중이다. 이게 그의 가장 중요한 역설적 기여다. 이런 점들을 보면 재임 때보다 파면 뒤가 더 의미 있는 전직 대통령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지금은 재판을 거부해 진술거부권에 버금가는 ‘출정 거부권’이라는 개념이라도 띄우려는 것 같다. 그러나 법률적 관점에서 스스로에게 이롭지 못하다. 이를 따라 하는 것은 대중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헌법은 형사사건에 대해 신속하고 공개적인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할 뿐, 재판받지 않을 권리라는 것은 없다. 어찌 보면 출정 거부는 헌법을 무시하는 행태다. 재임 때도 헌법을 무시하더니, 일관성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앞서 언급한 미국의 잡범들이 쟁취한 피고인의 권리 위에서 싸워야 한다. 세금이 들어가는 국선변호인의 접견마저 거부하는 것은 또 하나의 남용이다. 나중에 갖가지 혐의에 유무죄 판단이 어떻게 나오든 처절하게 다퉈 피고인의 권리와 사법 발전에 미미한 기여라도 하는 게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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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2159.html?_fr=mt5#csidx05cfab03ac91897b7ebd59dfa374c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