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정호성, ‘국정농단 3각고리’ 대화 보니
“문화라는 표현을 안 써도 그런 느낌이 오게. 뭔가 그 복지 대신 국민 행복을 쓰듯이 뭐 그런 거….” (박근혜 전 대통령)
“음, 한번 좀 찾아봐요.” (최순실씨)
“예.”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문화향유, 문화를 즐겨야 문화가 부흥하지.” (박 전 대통령)
“그렇게 해서 딱 해가지고 고거를 막 이렇게. 국가기조를 해서 딱 하시면 이게 막 컨셉이 되는…. 공무원들도 알고 뭐도 알고. (중략) 그게 이번 취임사에서 나와야 한다고. 공무원한테도 내려보내셔야 돼. 1부속실에서 하는 게 그런 일이야.” (최씨)
최순실이 지난 5월23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가 사뭇 빠른 속도로 주거니 받거니 말을 이어나간다. 별다른 의견 없이 낮은 목소리로 “예예”하며 거드는 것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몫이다. 최씨가 정 전 비서관에게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임무’를 지시하며 대화는 마무리된다. 박 전 대통령 취임 직전 4대 국정기조(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구축)가 논의된 현장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심리로 13일 열린 최씨 재판에서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파일 8건을 재생했다. 최씨와 박 전 대통령 및 정 전 비서관의 회의 내용 1건과 정 전 비서관과 최씨의 휴대전화 통화 내용 6건 등이 공개됐다.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검찰이 제시한 이 녹음파일 내용은 정호성 전 비서관 등 재판에서 일부 공개된 바 있다.
이날 공개된 대화 녹음 내용을 종합하면, 세 사람은 취임식을 앞둔 2013년 2월17일 새 정부 국정기조 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박 전 대통령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전 국민의당 상임고문)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을 언급하자 최씨가 ‘경제부흥’을 제안하고, 정 전 비서관이 “경제부흥이란 단어는 한동안 많이 안 쓰던 단어인데 처음에 딱 보니까 먹힐 것 같다”며 거든다. 박 전 대통령이 ‘경제부흥’을 수용하고 ‘국민행복’을 제안하자 최씨가 “국민행복도 괜찮다”며 맞장구치는 식이다. 또다른 국정기조인 ‘문화융성’ 역시 두 사람의 협의 끝에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대야당 메시지를 세밀하게 고안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1월22일 최씨는 정 전 비서관에게 “‘여야가 합의해서 해달라고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예산을 묶어둔 채 정쟁을 이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고 국민한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국정을 1년 동안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야당한테 물어보고 싶다’는 식으로 한 번 하라”고 전한다. 2013년 말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등으로 여야 대치가 첨예한 시기였다. 야당이 예산안을 ‘볼모’로 삼고 민생을 외면한다고 비판하란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사흘 뒤인 그해 11월25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금 국내외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이 많다. 앞으로 저와 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이런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야당을 ‘불복 세력’으로 규정하는 발언을 내놨다.
최씨 쪽 이경재 변호사는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숨은 조력자로서 대통령에게 걸맞은 얘기를 조언한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최씨 아이디어에 따라 국정기조를 정했다는 주장은 박 전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당선시킨 1200만 주권자에 대한 모독에 가깝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