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미국인들 분노에 불 붙인 ‘살인마의 키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2. 23. 20:28

미국인들 분노에 불 붙인 ‘살인마의 키스’

한겨레 등록 :2017-12-20 15:06수정 :2017-12-20 22:24

 

가해자, 피해자 유족의 ‘피해 결과 진술’ 청취 거부
‘겁쟁이’ 비난하는 방청객 향해 입맞춤 한 뒤 퇴장

레베카 블레치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제프리 윌리스. 사진 WOOD TV8 보도영상 갈무리.
레베카 블레치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제프리 윌리스. 사진 WOOD TV8 보도영상 갈무리.

살인범이 피해자 유족에게 입맞춤 제스처를 날리고 법정을 떠났다. 눈가엔 옅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이 ‘살인범의 입맞춤’이 전파를 타고 미국 전역에 보도되자 미국인들은 분노했다.

지난 18일(현지 시각) 미시간주 서부에 있는 머스키건 카운티 법원은 레베카 블레치를 살해한 혐의로 제프리 윌리스(47)에게 가석방이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피해자인 블레치(36)는 2014년 6월 조깅하러 나갔다가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는데, 그 범인이 바로 윌리스다. 〈워싱턴포스트〉는 “배심원단이 윌리스가 도로에서 조깅하던 피해자 블레치를 자신의 승합차로 납치한 후 반항하자 총으로 쐈다는 수사 당국의 말을 믿고 유죄 평결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숨진 블레치의 가족은 선고 순간 만을 기다려왔다. 윌리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모든 주는 판사가 형량을 선고하기 전 ‘피해 결과 진술(victim impact statement)’이라는 절차를 두고 있다.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가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진술하는 절차로 판사가 형량을 결정하는 근거가 되는 것으로 우리의 ‘범죄피해자 의견진술제도’과 비슷하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거의 유일하게 직접 마주치는 순간이기도 하다. 윌리스의 경우, 피해자가 숨졌기 때문에 유족인 블레치의 두 여동생이 피해 결과 진술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족은 윌리스에게 아무 말도 전할 수 없었다. 윌리스가 피해 결과 진술이 있기 전 판사에게 ‘유족 진술과 형량 판결을 건너뛰게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머스키건 카운티의 판사 윌리엄 마리에티는 윌리스가 피해자 유족의 진술을 듣지 않고 법정을 빠져나갈 수 있게 허락했다. 윌리스를 기소한 힐슨 검사는 담당 판사에게 “(피해 결과 진술을 듣지 않고 법정을 나가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유족에겐 자신들의 자매와 딸을 죽인 범인에게 발언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비에스(CBS) 뉴스 판사가 ‘미시간의 주 법에는 윌리스를 법정에 앉혀 둘 강제 조항이 없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방청객과 유족들은 윌리스에게 ‘겁쟁이’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윌리스는 당당했다. 그는 눈가에 옅은 웃음을 띠고 거들먹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걸어갔다. 그리고 문에 다다랐을 때 입맞춤 제스처를 날렸다. ‘겁쟁이’라며 그에게 비난을 날리던 사람들은 이 입맞춤을 보고 놀라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후 블레치의 두 자매는 비어있는 피고인석을 향해 “지옥에서 썩어라” “괴물”이라고 저주를 퍼부었으나 정작 당사자는 이를 듣지 못했다.

앞서 블레치의 유족은 오랜 기간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2014년 블레치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뒤 거의 2년이 지나도록 범인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실마리는 의외의 사건에서 풀렸다.

2016년 4월16일 한 여성이 911에 구조를 요청했다. 승합차(‘은색 미니밴’)에서 도망친 한 10대 소녀가 자신의 집으로 뛰쳐 들어왔으며, 겁에 질려 발작 상태에 있다는 신고였다. 당시 피해자는 “길을 잃었는데 한 남성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해주겠다’며 접근했고, 이후 내가 차에 타자 머리에 총을 겨눴다”고 증언했다. 이 10대 소녀는 이 남성이 몰던 승합차가 ‘은색 미니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경찰은 ‘은색 미니밴’을 실마리 삼아 윌리스 검거에 성공했다. 윌리스가 구속되면서 미궁에 빠졌던 두 사건의 실체도 드러났다. 지역 매체인 미시간라이브에 따르면 경찰은 그의 승합차에서 총기, 밧줄, 체인, 수갑을 찾았으며 총기와 탄약이 블레치를 살해한 범행도구와 일치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후 제보 등을 통해 윌리스의 여죄도 드러났다. 윌리스의 사촌 케빈 블럼은 자신이 2013년 윌리스를 도와 시체 한 구를 유기했다고 증언했다. 경찰과 블럼은 이 시신을 당시 실종된 엑손모빌 주유소 종업원 제시카 린 히링거로 추정하고 있다. 윌리스는 곧 히링거 유괴 및 살인에 대한 재판도 받을 예정이다.

미국 범죄피해자센터의 설명을 보면, 피해자 결과 진술은 법정에 피해자만 알고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 뿐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이 가능한 한 빨리 범죄 피해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블레치 가족은 그 기회를 잃게 됐다. 이번 사건 뒤 미국 내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나 유족의 진술을 의무적으로 듣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 가고 있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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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824331.html?_fr=dable#csidx61d90a2939aa1959a7271cef589c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