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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와” 하늘도 함께 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2. 25. 01:24

엄마, 나와하늘도 함께 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겨레등록 :2017-12-24 20:07수정 :2017-12-24 23:59

 

충북 제천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로 목숨을 잃은 할머니, 딸, 손녀의 영결식이 열린 24일 오전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들의 시신이 운구차량에 실리고 있다. 제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충북 제천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로 목숨을 잃은 할머니, 딸, 손녀의 영결식이 열린 24일 오전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들의 시신이 운구차량에 실리고 있다. 제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제천 참사 사망자 29명 중 19명 발인식
3대 잃은 유족 어떻게 이럴 수가…”
슬픔속 안전한 나라 만들어달라

잿빛 하늘이 제천에 장대비를 뿌리며 함께 통곡했다. 24일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 1층에 유가족의 오열도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엄마, 나와.” 제천 화재로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딸은 어머니 김현중(81)씨의 주검이 실린 운구차를 붙잡고 소리 질렀지만, 운구차는 아무 말이 없었다. 최근 외할머니에게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하며 기뻐했던 김씨의 손녀 김지성(19)양, 지성양의 어머니이자 김씨의 딸인 민윤정(50)씨가 함께 고인이 되어 이날 장지로 떠났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 29명 중 19명의 발인식이 24일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 등에서 엄수됐다. 이날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사우나에서 3대가 함께 목숨을 잃은 김현중씨 세 모녀, ‘봉사 천사’ 이항자(57)씨 등의 발인식이 열렸다. 제천체육관에는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이날 시민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고 이낙연 국무총리 등도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어머니”, “언니”, “지성아”. 이날 오전 10시30분 검은 상복을 입은 ‘고 김현중씨 세 모녀’의 유가족들이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쓰러지듯 통곡했다. 수척한 얼굴로 안치실로 나온 김씨의 딸 민아무개씨는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까지 “엄마, 나와”라고 외치며 눈물을 쏟았다. 김씨의 아들들 또한 “어머니”를 외치며 관을 붙잡고 눈물을 떨궜다.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양쪽에서 부축을 받은 유가족들은 곧이어 나오는 민씨와 김양의 관 앞에서 결국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가족들은 민씨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지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라고 외치며 흐느꼈다. 김양 친구들도 김양의 운구차가 장례식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로 배웅했다. 아내, 딸, 장모까지 한꺼번에 잃은 민씨의 남편 김아무개씨의 쉰 목소리가 장례식장의 슬픈 공기를 갈랐다.

세 모녀는 21일 사고가 났던 사우나에 함께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씨의 딸 민씨와 손녀 김양은 수능이 끝난 기념으로 이날 오랜만에 제천 할머니 집을 찾았다고 한다.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 사우나를 찾았던 이들은 화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함께 유명을 달리했다. 세 모녀는 모두 2층 여성 사우나에서 발견됐다. 김양은 최근 서울의 한 대학 국문과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인식 전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 장례식장을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가족들은 “저희의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철저한 수사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세 모녀의 발인식에 앞서 이날 오전 9시께 같은 장소에서 영면에 들어간 이항자씨는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나눠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평소 다니던 교회에서 지인들과 함께 포장한 뒤 피곤하다며 사우나에 들렀다가 교회 동료 김태현(57·여)씨와 함께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와 함께 교회를 다녔다는 지인은 “(이씨와 김씨가)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을 하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선하다. 오늘 교회에서 추모 예배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화마 속에 남겨두고 혼자 빠져나온 탓에 실의에 빠진 남편은 환자복을 입은 채 하루 종일 병원 대신 분향소에서 눈물을 떨궜다.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체육관에는 고 장경자(64)씨의 남편 김인동(64)씨가 아내의 영정사진 앞에서 “경자야, 경자야!”라고 외치며 통곡했다. 장씨의 대답 대신 검게 탄 듯한 잿빛 하늘만이 이날 눈물 같은 빗물을 쏟으며 김씨를 위로했다. 희생자 발인식은 계속 이어진다. 25일과 26일에는 각각 4명의 발인식이 열린다. 앞서 23일에는 장경자씨의 발인이 진행됐다.

유족들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있어선 안 된다’며 우리 사회가 철저한 반성과 대책 마련을 통해 희망의 밑돌을 놓아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소방당국의 이번 구조 실패 원인을 분석해 대안을 잘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한 유족은 “소방관, 경찰 정말 고생한 분 많다. 그분들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훌륭한 매뉴얼을 만들어 안전하고 사람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차분한 장례 진행도 눈길을 모았다. 유족들은 사건 이튿날 대부분 장례 일정을 정했다. 박인용 제천부시장은 “장례 관련 유족들의 협조가 너무 고맙다. 엄청난 충격으로 격앙됐을 텐데 모두 차분하게 대응해주셨다”고 말했다. 제천체육관 합동분향소는 발인 이후에도 당분간 계속 운영된다.

제천/신민정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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