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주장에 ‘분노’ 나타낸 문재인 대통령. 그래픽/김승미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한 데 이어 측근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공세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고, 여당은 “국정원 특활비 일부가 김윤옥 여사의 명품 구매에 쓰였다”는 미확인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이 한창 수사 중인 사안이 정쟁으로 변질될 조짐이 엿보여 우려스럽다. 정치권은 발언을 자제하고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게 바람직하다.
이 문제를 정치 쟁점으로 불붙여 출발점을 잘못 끊은 이 전 대통령 책임이 가장 크다. 이 전 대통령도 당사자로서 해명하고 반박할 수는 있다. 그러려면 분명한 사실관계를 얘기해야 한다. 하지만 핵심 측근들이 구속된 특활비 문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법원이 혐의를 인정했는데도 사과 한마디 없다.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면, 아니라는 얘기라도 해야 할 거 아닌가. 무조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며 ‘정쟁의 늪’으로 끌고 가려는 속내가 너무 훤히 보인다.
이 전 대통령 측근이라는 사람들의 행태도 한심하다. 밑도 끝도 없이 ‘기획설’, ‘배후 조종설’을 제기한다고 있던 사실이 없어질 리 만무하다. “심각한 내용이 있다”며 ‘폭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도 찌질하고 궁색하게 보인다. “이전투구를 한번 해봐야겠나”라는 김두우 전 홍보수석의 말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정치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어 위기를 모면하려는 속셈이 잘 드러난다.
여당 한쪽에서 사실관계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썩 좋게 보이지 않는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 특활비 일부가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명품 구매 등에 사용됐다”고 공개회의에서 말했다. 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이고 ‘검찰 진술 제보’란 출처를 밝히긴 했지만 검찰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구체적 혐의사실 공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 부인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논두렁 시계 모욕주기’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문 대통령이 ‘분노’를 나타낸 건 인간적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까지 거론한 이 전 대통령의 행태는 금도를 벗어난 일임이 틀림없고, 검찰 수사와 청와대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검찰에 강경한 수사를 주문한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전 대통령 쪽의 노림수가 바로 이런 식으로 정치 쟁점화하려는 것 아니겠는가.
전직 대통령들의 잇따른 불행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럴수록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더욱 엄정해야 한다. 정치논리가 들어설 여지를 차단하고 오로지 사실이 말하게 하고, 증거가 입증하게 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제 자제하고 차분한 태도로 검찰 수사를 지켜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