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커버스토리/ 마흔살 ‘샘터 사옥’의 재탄생
지난해 주인 바뀌면서 ‘공공일호’로 새 출발
건축의 쓰임새와 공적 가치가 만나는 실험
지난해 주인 바뀌면서 ‘공공일호’로 새 출발
건축의 쓰임새와 공적 가치가 만나는 실험
지난해 촬영한 샘터 사옥 모습. 사진 공공그라운드·타별사진관 제공
마흔살 먹은 ‘대학로 그 건물’이 ‘공공(共共)일호’ 한살로 재탄생한다. 1979년에 태어난 출판사 샘터 사옥은 대학로(서울시 종로구)의 대표 건축물 중 하나로 자리잡으며 그 거리의 시간을 함께해왔다. 2018년 2월 샘터 사옥이 공공그라운드가 매입한 1호 건물로 새 옷을 입는다. 부동산 투자·관리회사 공공그라운드는 지난해 9월 매물로 나온 샘터 사옥을 인수해 개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공공그라운드는 가치 있는 부동산을 보존해 미래 세대를 위한 실험공간으로 활용하면서도 적정 수준의 수익을 거두려는 회사다. 샘터 직원들이 떠난 3·4층 공간에는 교육과 미디어 영역에서 혁신을 꾀하려는 단체와 젊은 스타트업들이 입주해 활동을 시작했다. 주인과 이름, 입주자들이 바뀌었지만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친숙했던 건물 외관만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옛 주인이 임대수익을 포기하고 누구나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 1층 공간은 그대로 열려 있으며, 벽돌을 감싸는 담쟁이넝쿨 역시 계속 자랄 것이다. 사회적 가치와 수익을 동시에 창출하는 부동산 투자 실험의 시작점이자 건물 안과 밖이 이어진 열린 플랫폼이 되길 꿈꾸는 공공일호. 그 건물의 재탄생을 따라가며 건축의 쓰임새와 공익적 실험이 만나는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사진 공공그라운드·타별사진관 제공
붉은 벽돌로 쌓아 만든 벽은 거칠어 보인다. 천장은 콘크리트로 찍어낸 ‘와플’ 같다. 벽지를 바르거나 그림을 그리면 교실 풍경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새 교실이 될 공간을 본 ‘거꾸로캠퍼스’ 학생들의 의견이었다. 교육혁신 비영리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가 설립한 대안학교인 거꾸로캠퍼스는 중고생 나이대 청소년들이 소통과 협력으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나가는 일종의 실험실이다. 거꾸로캠퍼스의 새 교실은 다름 아닌 ‘대학로의 상징’ 샘터 사옥이다.
1970년 월간지 <샘터>를 창간한 김재순(1923~2016) 전 국회의장은 서울대 후배이자 막역했던 건축가 김수근(1931~1986)에게 설계를 맡겨 1979년 사옥을 지었다. 지난해 9월 부동산 투자회사 ‘공공그라운드’는 매물로 나온 샘터 사옥을 인수한다. 건물이 지닌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미래 세대를 위한 ‘실험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공간을 사용하는 주체들도 달라졌다.
거꾸로캠퍼스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이사를 앞두고 샘터사 사무실이었던 3층 공간에서 시험 수업을 했다. 샘터 사옥 리노베이션을 맡은 건축가 조재원 공일스튜디오 대표도 함께였다. 이날 조 대표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나라 근대건축 아버지란 분이 설계를 했는데 여러분이 보고 있는 벽돌은 그분이 주로 쓴 재료다. ‘와플 천장’(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보를 격자 모양으로 촘촘히 배치한 것)도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건물을 만들 당시, 높게 지을 수 없어서 가능한 한 여러 층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방법이다. 내가 알기론 이렇게 생긴 천장은 국내 어디서도 볼 수 없다. 콘크리트가 워낙 많이 들어가고, 제작 과정이 번거로워 앞으로도 만들어지긴 어려울 거다. 그러니까 이 건물을 쓰는 데 불편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잘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 15일 샘터 사옥 3층을 찾았다. 계단을 통해 3층 입구에 닿자 ‘놀다보니 슈퍼맨 웃다보니 어벤져스' 거꾸로캠퍼스라는 표시가 보인다. 학생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활기차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공사도 마무리 단계였다. 2월27일 정식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이렇게 ‘샘터 사옥’은 ‘공공일호’라는 새 이름으로 변화해나가고 있다.
출판사인 샘터사 사무실로 쓰이던 샘터 사옥 4층 공간엔 젊은 미디어 스타트업들이 입주했다. 이들의 머리 위로 1979년 신축 당시 한 층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고안된 ‘와플’ 모양의 천장이 보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옛 주인과 새 주인이 마주하다
샘터 사옥의 주인이 바뀐 이후, 보통의 부동산 매매 과정에선 볼 수 없는 광경들이 펼쳐졌다. 지난해 9월, 샘터사와 공공그라운드 사람들, 그리고 건물이 보존해온 가치를 이어받아 현재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역할을 하게 된 조재원 대표 등이 마주 앉았다.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건물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이런 변화 속에서도 지켜온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한 자리였다. 샘터사는 신축 당시 도면을 비롯해 보유하고 있던 건물 기록을 모두 새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샘터 사옥의 가치는, 비단 붉은 벽돌이나 ‘와플 천장’에만 있는 건 아니다.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1층 중간에 2층 높이까지 뻥 뚫린 공간 ‘샘터 광장’에 있다. 지붕이 있는 공간이기에 뜨거운 햇볕이나 갑작스러운 눈비를 피하는 데 제격이다. 누군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약속의 장소이기도 하다. 샘터 광장은 건물 앞과 뒤, 옆쪽으로 나 있는 길과 이어져 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건물을 드나들 수 있게 한 구조다. 내부 계단 외에도 건물 바깥에서 누구든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외부 계단’이 놓여 있다.
샘터 사옥이 서 있는 자리는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옛 서울대 문리과대학 터다. 1979년 샘터 사옥이 들어설 당시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이 개통된 건 1985년의 일이다. 조재원 대표는 “주변에 무엇인가가 없던 시절에 건축가가 상상을 확장해 크지 않은 건물에 문을 여러 개 만들고, 앞뒤 길 연결하고, 광장을 만드는 등 도시와 호흡하도록 설계한 부분이 ‘혁신’이란 키워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설치 공간(샤프트)도 미리 확보해 두었더라. 2012년 그 자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1979년생 ‘샘터 사옥’ 인수 뒤
신축·증축 도면 등 기록 수집
개보수 공사 전 공간 곳곳 촬영
인터넷 통해 기록·사진 공유
신축·증축 도면 등 기록 수집
개보수 공사 전 공간 곳곳 촬영
인터넷 통해 기록·사진 공유
샘터 사옥은 ‘열린 공간’ 지향
1층 공간 비워 누구나 통행가능
바깥엔 2층으로 통하는 외부계단
불편함 감수하고 화장실도 개방
1층 공간 비워 누구나 통행가능
바깥엔 2층으로 통하는 외부계단
불편함 감수하고 화장실도 개방
사회적으로 좋은 일 하면서
적정수익 추구 ‘임팩트 투자’
부동산 투자 소식 전했더니
사람들이 ‘다행’이라고 하더라
적정수익 추구 ‘임팩트 투자’
부동산 투자 소식 전했더니
사람들이 ‘다행’이라고 하더라
겉모습엔 거의 변화 없어
교육·미디어 대안 찾으려는
젊은 입주자들 3·4층 공간에
공간 활용 방법도 함께 논의
교육·미디어 대안 찾으려는
젊은 입주자들 3·4층 공간에
공간 활용 방법도 함께 논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문을 열지 않아도 각층 공간 내부를 볼 수 있다. 이번 리노베이션 공사 과정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이다. 진효숙 건축사진가, 공일스튜디오 제공
샘터 사옥 앞 대학로 풍경. 주변 노점상인이나 버스 운전기사들은 항상 열려 있는 이 건물 화장실을 이용해왔다. 진효숙 건축사진가, 공일스튜디오 제공
모두에게 열린 화장실
주변 노점상인들이나 버스 운전기사들에게 샘터 사옥은 급한 볼일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이었다. 샘터 사옥 화장실은 밤늦게까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 화장실은 1층부터 5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실에 있다. 청소 등 관리 부담뿐 아니라 유동 인구가 많고 집회·시위가 잦은 지역임을 고려하면 안전 문제도 걱정됐을 것이다.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누군가가 불쑥 위층 공간으로 올라올지 모른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화장실을 개방한 것이다.
이렇게 샘터 사옥은 일정한 공간을 아예 비우거나 되도록 문을 닫아걸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이 모여드는 ‘열린 공간’을 지향했다. 이러한 건물의 특징은 비슷한 시기 김수근이 설계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경찰청 인권센터)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1976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소음조차 새어나갈 수 없도록 바깥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폐쇄적 공간’이다. 결국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이 이곳에서 고문을 받다 희생된다.
지난 12일 늦은 오후, 조재원 대표를 만나기 위해 샘터 사옥 5층 라운지로 향했다. 사방이 탁 트여 대학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기가 막힌’ 석양이 밀려들었다. 거꾸로캠퍼스 학생들이 쪼르르 올라와 밖을 바라보며 수다를 떤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청년들이 라운지 공간에 들어와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40년 가까이 샘터 사옥의 겉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는 2012년이다. 건물 내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2개 층을 올렸다. 새로 확보된 지상 5층으로 지하에 있던 직원식당이 올라갔다. 그 위 옥탑방처럼 생긴 공간은 직원휴게실로 조성된다. 전망 좋은 곳이니만큼 고급 레스토랑이라도 만들 법한데 말이다. 창업주 막내아들로 1995년부터 샘터사를 이끌고 있는 김성구 대표에게 왜 이렇게 공간을 운영했는지 물었다.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 그 건물을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거야.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게 2002년 월드컵 때 옥상에서 동네 사람들 다 불러 함께 고기도 구워 먹고 같이 응원한 거예요. 오페라노래방 사장, 이음센터 수위 아저씨, 스타벅스 매니저는 자주 바뀌니까 좀 그렇지만…. 다 이웃사촌이지.”
샘터 사옥엔 임대수익을 창출하는 상업공간과 돈이 되지 않는 문화공간이 공존해왔다. 공간 임대로 돈을 벌되 ‘이윤’만을 좇지 않았던 셈이다. 이런 샘터 사옥이 시장에 매물로 나온 건 2016년 말. 상속세 부담이 컸던 김 대표가 출판업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땅과 건물이 곧 재테크의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현실에서, 많은 부동산 투자회사들은 샘터사가 오랫동안 열린 공간을 유지한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많은 시민들에게 유무형의 추억을 가져다주었을 샘터 광장은 ‘임대수익을 내지 못하는’ 값어치가 없는 공간으로 치부됐다. 건물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모르는 이들에게 사옥을 넘길 순 없었다. 적절한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을 무렵, 공공그라운드가 샘터 사옥을 사겠다고 나섰다.
착한 부동산 투자는 가능할까
공공그라운드가 지향하는 부동산 투자는 ‘임팩트 투자’다. 기존 투자가 경제적인 성과에만 주목하는 데 비해 임팩트 투자는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적인 가치 창출, 즉 임팩트도 함께 추구하는 투자를 말한다. 국내에서도 임팩트 투자를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 2016년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창업자는 자본금 200억원을 전액 출자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옐로우독’을 설립한다. 지난해 말까지 공공그라운드를 이끈 제현주 전 대표는 옐로우독 일원이다. 다양한 방면으로 임팩트 투자를 검토하던 참에 샘터 사옥을 인수하기로 했다. 신기술금융회사인 옐로우독은 현행법상 부동산을 직접 살 수 없어 공공그라운드가 설립됐다.
그런데 ‘돈’만을 좇지 않는 부동산 투자가 가능한 것일까?
1998년 영국에서 설립된 ‘에시컬 프로퍼티 컴퍼니’(ethical property company·윤리적 부동산 회사)는 이러한 사업 모델을 현실화했다. 비용 대비 효율이 높고 잘 관리된 공간을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에만 시세보다 10%가량 낮은 임대료를 받고 빌려준다. 이 회사 2015~2016년 연차보고서를 보면, 영국 9개 도시에 23개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5년간 평균 공실률은 5%가량이다. 이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은 24개국 출신 1332명이다.
공공그라운드는 한국판 윤리적 부동산 회사를 꿈꾼다. 첫 자산인 샘터 사옥 공간을 한국 사회에서 딱히 해법이 나오지 않는 ‘교육·미디어’ 분야에서 혁신을 궁리하는 조직과 개인들에게 임대했다. 주변 시세보단 낮은 임대료를 받는다.
첫 자산을 마련해 운영하는 그 모든 과정은 부동산 임팩트 투자 영토를 넓히기 위한 하나의 실험이다. 공공그라운드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가치있다고 동의해주는 투자자가 얼마나 있는지, 이러한 사람들이 원하는 적정 수익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나가야 한다. 동시에 여러 주체가 참여하는 소유 구조를 만들기 위해 자금 모집도 진행 중이다.
공공그라운드가 추구하는 목표는 크게 세가지다. ①문화적 가치가 담겨 있거나 담을 수 있는 부동산에 투자해 가치를 강화·유지 ②투자한 부동산을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혁신적 활동을 위해 활용 ③이러한 목표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민주적인 소유 구조 확보. 궁극적으로는 많은 시민들이 100만원, 1000만원의 적은 돈을 가지고도 가치있는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 싶다.
제현주 전 대표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샘터 사옥 프로젝트를 통해 ‘희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우선 샘터 사옥을 인수했단 소식에 ‘다행’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리노베이션 공사 과정에 참여한 이들은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한다며 더 많은 일을 해주거나 가격을 낮춰주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었다. 샘터 사옥 인수를 검토했던 한 부동산 투자회사 직원은 공공그라운드가 이 건물을 산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목표로 한 수익률을 내려면 시민들에게 내준 1층 공간을 닫아 임대공간과 주차장을 늘리고, 건물을 높게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샘터 사옥 3층엔 소통과 협력으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나가는 일종의 실험학교인 거꾸로캠퍼스 혜화랩 등 교육 혁신을 꿈꾸는 이들이 입주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샘터 사옥의 가장 큰 특징은 1층 중간에 뻥 뚫린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지붕이 있는 공간이기에 뜨거운 햇볕이나 갑작스러운 눈비를 피하는 데 제격이다. 이 공간은 건물 앞과 뒤, 옆쪽으로 나 있는 길과 이어져 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건물을 드나들 수 있게 한 구조다. 진효숙 건축사진가, 공일스튜디오 제공
우리들의 실험 건물 밖으로
공공그라운드가 인수한 뒤 샘터 사옥의 겉모습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건물 외벽에 걸린 ‘샘터’라는 두 글자는 떼어지고, 대신 ‘공공그라운드’, ‘공공일호’라는 이름이 올라갈 예정이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두개의 계단실과 각층 공간 사이에 놓인 벽돌로 된 벽을 철거하고 투명한 방화벽으로 바꾸었다. 계단을 따라 건물 안으로 올라와, 굳이 내부로 통하는 문을 열어보지 않고도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공사 전 사진을 살펴보니, 1층 ‘외부 계단’을 통해 건물 위로 이어지는 계단실의 경우 창이 없어 어두침침했고 물건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조재원 대표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어놓는다고 해서 그 공간이 꼭 활발히 쓰이게 되는 건 아니라고 보았다. “공간을 사용할 ‘주 타깃층’을 분명히 하고, 이들이 좋아하고 매력을 느낄 만한 구성이 있어야 한다. 타깃층 중심으로 공간이 활발하게 쓰이면서 다른 사람들도 ‘저긴 도대체 뭐 하는 곳이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좋은 플랫폼이다.” 그는 지하 1층 샘터파랑새소극장 1관 공간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4층에 입주한 젊은 콘텐츠 제작자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스펙이 엄청난 장비가 아닌 가벼운 동영상 콘텐츠를 바로바로 만들어 공유하는 시스템을 원했다. 지하 1층은 극장 모양새를 유지하면서도 동영상 촬영과 실시간 송출이 가능한 곳으로 바뀌었다.
샘터 사옥 3층엔 거꾸로캠퍼스뿐 아니라 미래교실네트워크 등 교육·놀이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조직과 개인에 투자하는 벤처기부펀드 ‘씨프로그램’의 교육혁신 라이브러리가 들어섰다. 벤처기부는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도록 투자 대상을 전략적으로 도우면서도 수익을 요구하진 않는다. 접근성이 좋은 샘터 사옥이 실험 공간으로 바뀐다는 소식에 지금까지 살펴본 실험과 시도들을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다. 엄윤미 씨프로그램 대표는 “지난 3년간 활동을 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교육과 놀이 부문에서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험 대부분이 변방에서 소규모로 진행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는 고민이 있었다. 교육자분들은 무엇보다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자극’을 얻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 공간엔 어떤 사람들이 찾아들 수 있을까. “선생님 가운데 아이들과 무엇인가를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 무엇인가 시도를 하고 있는데 새로운 자극이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분,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모르는 학부모 등 교육과 관련해 공통분모를 지닌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4층은 미디어 스타트업 발굴·육성 조직 메디아티와 젊은 스타트업들의 활동 공간이다. 씨프로그램은 4층 입주자들과 협력해 새로운 실험들을 쉬운 언어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공공일호 단면도
공사 전후 기록을 남기는 까닭
공공그라운드와 조재원 대표는 리노베이션 공사 전후 과정을 모두 꼼꼼히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이렇게 자료를 남겨두면 공사 전 모습으로 복원이 가능하다. 건물의 변화를 가져온 설계도면과 공사 진행 과정을 인터넷 누리집을 통해 공개해 두었다. 조 대표는 네덜란드 유학 시절 리노베이션 프로젝트 과정에 참여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시청에 가서 그 건물에 대한 100년 전 자료를 찾았더니, 직원이 자료 뭉치를 꺼내주더라. 감동이었다. 기록과 아카이빙이 되지 않으면, 하나의 건물이 왜 지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공공그라운드는 ‘공공일호’ 공식 오픈을 앞두고, 샘터 사옥의 가치와 새롭게 조성한 공간을 소개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토요일이었던 지난 20일, 정재은(40)씨는 세살배기 둘째아들 건해와 투어에 참여했다. 샘터 사옥 뒤편, 김수근의 또 다른 작품인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일하는데다 대학 전공도 연극이다. 스물세살 때 얻은 첫 직장도 대학로에 있었다. 대학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대학로의 상징’인 건물 안을 보고 싶었어요. 공공그라운드가 새롭게 만든 공간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이날 건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정리를 하던 길현자(68)씨는 친정어머니를 이어 30년 넘게 샘터사에서 밥 짓는 일과 청소 업무를 해왔다. “이 건물 자체가, 사람도 다 좋았어. 그러니까 오래 있지 않았겠소?”
지금까지 ‘샘터 사옥’과 연을 맺었던 사람들, 앞으로 ‘공공일호’를 드나들 사람들은 세대도, 라이프스타일도, 그 목적도 다를지 모른다. 그렇기에 오래된 공간이 지닌 유무형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녹록지만은 않을 것이다. 공공그라운드는 고심을 거듭하다 계단실에 위치한 화장실을 계속 열어두기로 했다. 시민들에게 ‘예전보다 접근성이 막혔다’는 느낌을 주는 건 맞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향후 갈등이 발생하면, 물리적으로 문을 닫아버리는 게 아니라 메시지를 주는 등 운영관리 방식에서 묘수를 찾아볼 생각이다.
오래도록 지켜진 건축물과 좀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젊은 사람들의 만남,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새로운 부동산 투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시도이자 현재진행형의 실험이다. ‘대학로의 상징’ 붉은 벽돌 건물이 새로운 사람들과 호흡하며 앞으로 그려나갈 미래가 궁금한 이유다.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