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커버스토리/ 마흔살 ‘샘터 사옥’의 재탄생
1970년대 샘터 사옥과 마로니에공원 주위에 아파트가 세워졌다면, 지금 대학로는 어떤 모습일까?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샘터 사옥이 디딘 땅은 옛 서울대 문리과대학 캠퍼스가 있던 자리다. 그 앞으론 북악산에서 흘러내려와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흥덕동천(대학천)이 있었다. 앞서 경성제국대학 터였으며, 조선시대부터 교육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다.
2006년 서울대가 발간한 <서울대학교 60년사>를 보면, 관악캠퍼스 이전이 확정된 서울대 문리과대학(종로구 동숭동)·사범대학(동대문구 용두동) 건물과 땅의 새 주인이 된 주택공사는 1973년 이 부지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한다. 문리과대학 자리에 세워질 아파트는 40·60·80평 크기의 고급 아파트였다. 대학 건물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되 대학본부(1931년 준공. 현 예술가의 집)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중앙도서관은 슈퍼마켓으로 전환될 예정이었다. 샘터사 창업자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나 건축가 김수근을 포함해 이러한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1975년 건설부는 아파트 건립 계획을 철회했고, 주택공사는 문리과대학·사범대학 부지를 주택지로 일반에 매각하기로 한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대학본부 및 주변 부지 600평을 매입했고, 김재순 전 국회의장도 200여평을 사 건축가 김수근에게 건물 설계를 맡긴다. 1979년 샘터 사옥과 아르코미술관(옛 미술회관), 1981년 아르코예술극장(옛 문예회관)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동숭동은 문화예술 거리로 변화해 나간다.
1979년 샘터 사옥 신축 당시. 샘터사·공공그라운드 제공
1985년 정부는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로터리까지 1.2㎞, 폭 40m의 6차선 도로를 ‘대학로’라고 명명했다. 비슷한 시기 대학로엔 여러 소극장이 들어섰다. 1984년 샘터 사옥 지하 1층 공간에, 대학로 최초 민간 소극장인 샘터파랑새극장이 문을 열었다. 60평 공간에 180여석 규모였다. 1985년 지하철 4호선 혜화역이 개통됐다. 1988년 1월 1집 음반을 낸 그룹 ‘동물원’은 그해 3월 샘터파랑새극장에서 데뷔 첫 콘서트를 열었다. 1985년 촬영한 사진을 보면, 샘터 사옥 외벽엔 월간 <샘터> 가로쓰기 제호뿐 아니라 엄마랑아기랑, 파랑새극장 로고도 함께 보인다. 샘터가 1976년 창간한 유아잡지 <엄마랑 아기랑>은 1999년 2월호까지 통권 272호를 발행하고 폐간된다.
1985년 3월 촬영. 샘터사·공공그라운드 제공
1990년대 말 사진에서는 현재 샘터 사옥 바로 앞 인도에 있는 4호선 혜화역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는다. 이 엘리베이터는 2000년에 설치된 것이다. 박은숙 샘터사 이사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서 사옥 전면 화단이 훼손됐다. 당시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고민하며 자료를 찾아봤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별로 없더라.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등에 연락해 자료를 모아 원형을 복원했다”고 회상한다.
1998년 1월 촬영. 샘터사·공공그라운드 제공
샘터 사옥 초창기 1층 공간에 있었던 난다랑은 원두커피 체인점의 시조로 불린다. 난다랑 뒤를 이은 밀다원은 갓 볶은 원두로 내린 커피맛으로 유명했다. 1980년대부터 10년 이상 자리를 지켰지만 시대 변화의 파고를 헤치기엔 버거웠다. 1999년 9월3일치 <경향신문>은 “신세대 취향 외식 레스토랑에 밀려 경영적자가 쌓이면서 밀다원이 사라지게 됐다”고 폐업 소식을 전했다. 밀다원 자리엔 이탈리아 식당이 들어왔다 오래 머물지 못했고, 프랜차이즈 카페가 확산되면서 자바커피(2000~2009년, 2006년 엔제리너스커피로 개명)·스타벅스(2009년~현재)로 이어졌다.
2012년 보수와 증축을 하면서 샘터 사옥 겉모습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다. 증축 공사 설계는 김수근의 제자인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말았다. 건물 내부에 작은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으며, 지상 4층 붉은 벽돌 건물 위로 철과 유리를 사용한 2개 공간을 올렸다.
2005년 1월 촬영. 샘터사·공공그라운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