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수첩 증거 불인정>
대법, 당사자가 파일작성 부인해도
다른 사실들 종합해 증거로 인정
<정유라 말 뇌물 아니다?>
차량 수뢰자가 소유자 등록안해도
사용·처분권한 있으면 뇌물로 판단
대법, 당사자가 파일작성 부인해도
다른 사실들 종합해 증거로 인정
<정유라 말 뇌물 아니다?>
차량 수뢰자가 소유자 등록안해도
사용·처분권한 있으면 뇌물로 판단
지난 5일 항소심 판결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서울구치로를 나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안종범 업무수첩’과 ‘김영한 업무일지’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최순실씨의 말 소유권을 부정한 ‘이재용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 판례와 충돌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후 대법원에서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는 지난 5일 이 전 부회장 항소심 선고 때 ‘안종범 업무수첩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단독면담 내용을 인정할 간접사실에 대한 증거로 볼 수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단독면담에 참석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안종범 수첩에 적힌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 전 수석의 수첩을 대화 내용의 증거로 사용하면 ‘전문법칙’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은 판사가 직접 듣지 않고 전해 듣는 증거(전문증거)는 원진술자가 법정에 나와 자신이 한 말이 맞다고 인정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에만 증거로 인정하는 ‘전문법칙’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3년 이른바 ‘왕재산 사건’에서 안종범 업무수첩과 같은 간접증거를 국가보안법 회합 유죄 증거 중 하나로 인정한 바 있다. 당시 피고인 중 한명의 컴퓨터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 일정이 적힌 파일이 발견됐는데, 당사자가 파일의 작성을 부인했지만 법원은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했다’는 근거가 되는 간접사실에 대한 증거로 인정했다. 이 파일과 함께 국가정보원 수사관의 증언, 출입국 내역 등을 종합해 유죄를 인정한 2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북한 공작원들과 회합했다는) 내용이 담긴 파일이 피고인 컴퓨터에 저장됐다는 사실 자체는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간접사실에 해당돼 전문법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없다”고 2심과 같이 판단했다.
특검 쪽은 이 판결을 들어 “피고인의 컴퓨터에 저장된 회합 예정 사실이 적힌 문서파일은 회합의 정황증거가 되고 다른 관련 증거를 종합해 회합 사실이 인정됐다”며 “(이재용 2심 재판부가) 정확성과 신빙성이 높은 안종범 업무수첩에 대해 전문법칙에 관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탄 말 구입비 36억여원이 뇌물이 아니라고 본 항소심 판단도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기준대로 따졌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대법원은 2006년 “자동차를 뇌물로 제공한 경우 자동차등록원부에 뇌물수수자가 소유자로 등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실상 소유자로서 실질적인 사용 및 처분 권한이 있다면 자동차 자체를 뇌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이재용 2심 재판부는 최씨의 실질적인 사용·처분 권한, 삼성의 돌려받겠다는 의사 등의 유무에 대해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소유권 자체가 최씨에게 넘어간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정씨 홀로 탔던 말에 대해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이 부회장의 횡령액은 1심의 약 81억원에서 36억여원으로 깎였고, 형량이 높아지는 50억원 기준선도 피해갔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