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국정농단 주범으로 꼽혀온 최순실씨에게 법원이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세윤)는 13일 삼성으로부터의 뇌물 등 20개 혐의 가운데 16개 혐의에 유죄를 인정해 이렇게 판결했다. 재판 시작 450일 만이고, <한겨레>가 최씨의 실명을 지면에 처음 등장시킨 때부터 따지면 17개월 만의 단죄다. 이번 선고는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주범에게 엄중한 심판이 내려졌다는 사법적 의미를 뛰어넘는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헌법적·형사법적 단죄 절차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회적·역사적 의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재판은 박 전 대통령 재판의 예고편 성격도 띤다. 두 사람이 공범으로 돼 있는 상당수 혐의에 유죄 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앞으로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도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커졌다.
재판부는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뜯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을 설립한 데 대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해 기업의 출연을 강요한 것”이라며 권력을 이용한 강탈행위임을 분명히 못박았다. 이재용 사건 항소심 재판부와 달리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에 대해 “증거능력이 있다”고 밝히고, 삼성이 최씨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3필의 뇌물성을 인정한 대목도 눈에 띈다. 뇌물 액수도 말 구입비 36억6천만원을 포함해 모두 73억원까지 인정했다.
그러나 이재용 사건 항소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개별적 청탁이 없었으니 포괄적 청탁도 있을 수 없다며 최순실씨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원을 받은 뇌물 혐의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을 이용한 뇌물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가 밝혔듯이 ‘헌법상 책임을 방기하고 국민이 부여한 지위를 사인에게 나눠준 대통령과 이를 이용해 국정을 농단한’ 최씨의 책임은 20년의 형량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검찰과 특검 수사를 ‘정치보복’이라 우기며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최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관련 재판까지 거부하는 등 아직도 사법방해를 자행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거리의 태극기 부대를 호도하며 스스로 정치보복의 피해자를 자처하기엔 드러난 죄과가 너무 무겁다.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이제라도 최소한의 상식과 양심을 되찾기 바란다.
한편, 이날 신동빈 롯데 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선고와 함께 법정구속됐다. 다른 대기업과 달리 ‘비선 실세’ 최순실씨 쪽에 직접 줄을 대 말까지 제공하는 등 죄질이 더 나빠 보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풀려난 것이 더 어색해 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