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강》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롬 2:6-16)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몹시 추운 어느 날 밤에 장사를 다니는 아라비아 사람이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고 있을 때, 낙타가 슬그머니 천막 안을 들여다봅니다. 주인이 "무슨 일이냐, 할 말이라도 있느냐?"고 하자, 낙타가 "주인님, 오늘밤은 대단히 춥습니다. 죄송하지만 제 머리만이라도 천막 안에 넣어주십시오" 주인은 불쌍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해서 친절하게 승낙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낙타가 "주인님, 목도 추우니 조금 더 들어갈 수 없나요?" 이번에도 주인은 승낙을 했습니다. 그러자 낙타는 또 주인에게 "어쩐지 서서 있으니까 거북하고 괴롭습니다. 앞다리를 천막 안으로 들어 넣게 해주세요" 마음씨 좋은 주인은 이것도 승낙하며 일어서서 자신의 자리를 줄이고 낙타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낙타가 또 청을 합니다. "주인님 제가 이렇게 서 있으니 천막이 열려 바람이 들어와 둘 다 춥습니다. 내가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 어떨까요?" 주인은 이것마저도 허락해 주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밤에 낙타에 깔려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탄은 우리에게 이런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는 절대로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타협했다가는 낙타에 깔려죽은 아라비아인처럼 우리도 죄에 깔려 죽게 됩니다. /할/ ◀제목소개!▶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심는 데로 거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이 뿌린 대로 거두게 됩니다. 인과응보(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나온다는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행한 대로 받는 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우리 하나님은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5절까지는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멸시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은 진리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임을 망각하고 고집 때문에 회개치 아니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는 남을 판단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의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의 필요성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죄를 짓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런데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너희들도 똑같이 죄를 짓고 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느냐, 드러나지 아니하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너희들도 똑같은 죄인들이다.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너희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즉시 임하지 아니한다고 해서 심판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복음 전파가 역시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이 너희들을 즉시 심판하지 않는 것은 너희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너희가 멸시하고 있다"고 꼬집고 나서 바울은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주 엄하게 경고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너희가 계속해서 고집을 피우면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진노의 날,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너희가 지금까지 쌓아놓은 진노가 한꺼번에 너희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6절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6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심판은 누가 합니까?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각 사람에게" 심판의 기준은? "그 행한 대로" 심판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매 급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1대1. 심판도 1대 1 입니다.
목사 아들이라고, 장로 아들이라고 봐 주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 성도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소위 유대인이냐? 헬라인이냐? 동양인이냐? 한국인이냐? 이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명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 행한 대로'입니다. 여기서 행함이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인간이 품고 있는 마음까지도 들어다 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시139:2-4절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103:14절 "저가(하나님이)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부모는 자식의 체질을 대강 압니다. 아내는 남편의 체질을 압니다. 좋아하는 음식, 취미, 건강 여부 등 대강 압니다. 그러나 완벽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결혼한 후 30년 동안 감기 한 번도 걸려 본 일이 없는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돌아오더니 속이 매끄럽고 머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부인은 단순히 체했거니 하고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다가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남편은 열이 오르고 밤새도록 신음하며 괴로워했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종합 진찰을 했더니 결과가 간암으로 나왔습니다. 간암에 선고를 받은 부인이 맨 먼저 터트린 말은 "설마 이럴 수가" 있느냐는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모를 수가 있었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만큼 우리를 자세히 아시는 분은 없습니다. 의사보다, 가족보다, 하나님은 나의 체질을 아십니다. 체질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이 (각 사람이 그 행한 대로)를 모르겠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이 설마 우리를 보실까? 이런 착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보십니다. 지금도 보시고 계십니다. /믿/
계20: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또 계20:15절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생명 책과 행위의 책이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주민등록부나 호적 원본이 있어 거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기 백성의 이름을 생명 책에 기록하고 계십니다.
눅10:20절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어떤 사람이 그곳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말3:16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그런데 하나님께 범죄 하면 그 이름이 지어진답니다. 출32:3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여러분! 우리의 이름이 지워지면 우리는 망합니다. 지옥 음부에 떨어지고 맙니다.
또 하나의 책은 우리의 행위를 기록한 책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의 행위 뿐 아니라 믿는 자의 행위까지도 기록해 놓으시고 행위대로 상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마16: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 4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불신, 불 신앙, 불의, 불선'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상급의 심판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형벌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표준은 무엇입니까? 심판의 특징은 공정성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편벽 되거나 불공정하지 않습니다. 시비와 선악을 가려 벌을 주시고, 상을 주십니다. 심판을 받지 않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예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당한 판결을 받아 고생하는 예도 절대로 없습니다.
세상의 재판은 부당한 판결을 받아 고생하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한 예로 이번에 순경하나가 살인범 누명을 쓰고 징역살다가 진범이 잡혀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 세상의 재판은 언젠가 탈주 범들이 폭로한 것처럼 돈이 있으면 형이 가벼워지고 돈이 없으면 형이 무거워집니다.
한마디로 무분별, 무원칙의 재판이라고 뜻 있는 사람은 혹평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공명정대합니다.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오늘 이 본문에서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구원의 기준을 믿음에 두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행위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행위대로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학자의 견해가 있습니다만 '알 포드'는 악인을 심판하고 선인을 상주시는 하나님의 일반법칙을 설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그러나 상급은 행위대로 얻어집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7절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7절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여기서 말하는 선은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심인데,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있을 때 하나님의 기준으로 선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참고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참고 선을 행하여'의 '참는다'는 것은 '작은 것으로는 혈기를 참고, 큰 것으로는 닥쳐있는 큰 환난을 참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인내입니다. 성령의 열매도, 사랑의 열매도 인내요, 오래 참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참아야 합니다. 혈기뿐 아니라 닥쳐올 어려움도 참아야 합니다. 성질 급한 성도는 어제 기도했는데, 오늘 응답 없다고 '하나님이 뭐 이러냐?'고 합니다. 기도의 응답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하는 것을 구하는 자에게는" 무엇이 보상으로 옵니까?
생명입니다. 영원히 사는 영생의 축복입니다.
▶여기서 ①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광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사는 경건의 삶을 말합니다. 고전10: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②여기 존귀라 함은 귀한 것 또는 보배를 가리키는 것으로 존귀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잠8:17-18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③썩지 아니함은 이슬과 같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에 부귀영화와 물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마6:20절에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 한다"고 하셨습니다.
▶넉넉지 못한 신앙이 좋은 집사님 댁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들이 군에서 제대했습니다. 용돈이 필요했습니다. "어머니, 용돈 좀 주세요" "얘야, 지금 너에게 줄 돈이 없구나" 아들에게 용돈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의 마음속에 문득 의심이 들었습니다.
'과연 어머니가 돈이 없어서 용돈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있으면서도 주시지 않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없을 때 몰래 어머니의 가방을 뒤져보았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가방에서 십일조 헌금봉투를 발견했습니다. 그 속에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착했습니다.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뒤에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 봉투 속에 분명히 돈이 있던데 왜 제가 용돈을 달라고 할 때 없다고 하셨습니까?" 어머니는 아들을 타일렀습니다. "얘야, 그것은 내 돈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란다" /할/
사랑하는 아들에게 용돈 하나 변변히 주지 못하는 심정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속으로 많이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확신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그 가정에 쌓여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그 가정에는 하나님의 엄청난 복이 폭포수와 같이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보고 살아갑니까? 썩어질 육신을 보고 살아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은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광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8: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존귀를 구하고 썩지 아니하는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에게는 그 보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원히 사는 생명, 영생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까지도 주신다고 요1:12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8절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당을 짓는다는 말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고, 또 다른 의미는 '이기심에 얽매인다'는 말입니다.
당을 짓는 자는 이 사람, 저 사람을 격동시키고 악한 말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악평하고, 불평과 불만을 품게 하고, 공동으로 죄를 짓습니다.
한 사람이 주동이 되어 선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일에 동조하여 악한 세력을 구성합니다. 불의를 좇는 자에게 하나님은 노와 분을 발하십니다. 고라의 일당의 말로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그 누가 대적할 수 있습니까? 작게는 징계요, 크게는 심판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불의를 좇지 맙시다. 히12:4절에서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신라의 김 유신 장군을 잘 압니다. 장군은 소년 때 불의한 친구를 사귀며 한때는 방황하며, 방탕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간곡한 눈물의 훈계에 감동이 되어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하루는 말을 타고 산책을 하다가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말이 한곳에 멈추어 섰습니다. 이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이고, 도련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평소 자주 출입하던 기생 천관의 집 앞이었습니다. 말이 주인이 잘 가지 때문에 그곳으로 안내한 것입니다.
유신은 즉시 말에서 뛰어 내려 긴칼을 뽑더니 사정없이 말 목을 단숨에 쳤습니다.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결단을 가지고 죄와 불의를 짤라내야 합니다.
▶8절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⑴당을 짓고, ⑵진리를 좇지 않고, ⑶불의를 좇는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을 한번 생각해 보자! 저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례 받은 자기들을 할례 당이라고 하고,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무 할례 당이라고 마음대로 판단하고 멸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또한 진리를 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진리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까? 그러나 저들은 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의를 끝까지 고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들은 불의를 좇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좇지 않으면 불의를 좇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은 본질적으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보응을 하신다고 했습니까?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노'의 원어로 보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는 뜻이고, '분'은 '터져 버린다'는 뜻입니다.
주전자에 물을 붓고 불을 때서 끓이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시는 모습입니다. 계속 가열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한계에 이릅니다. 그러면 뚜껑이 날아갑니다. 터져 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분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 하나님의 진노가 화산처럼 터져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9절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여기서 '영'은 '프쉬케'로, '혼, 혹은 목숨, 여기서는 속 사람'을 가리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외부적으로만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속 사람, 즉 내적 심령의 고통이 먼저 옵니다.
다윗이 심령의 고통의 표현을 시32:3-4절에서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보응하십니다. 어떤 보응입니까? "환난과 곤고"가 옵니다. 여기서 '환난'의 원어의 뜻은 '내려누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위에서 내리 누르는 하나님의 간섭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누르시면 피할 길이 없습니다.
'곤고'는 심령이 괴로워 고통 하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평강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57:21절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교제가 끊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악을 행한다면 심령이 괴로워지고 마음에 곤고가 찾아옵니다. 믿는 사람이 주일날 낚시하러 가 보십시오. 마음이 불안합니다.
여기서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은 '당을 짓고,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복음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다고 했습니다. 육신은 잠시 잠깐입니다. 길어야 백 년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예수를 안 믿는 악인들도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잠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은 영원합니다. 저들이 지옥에서 당해야 할 고통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앞으로 지옥에서 환난과 곤고를 세세토록 밤낮 없이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예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날 그 날에 당할 지옥의 고통은 영원토록 끝나지 않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 에게며" 본 구절은 다음 10절에도 나옵니다. 구원이나 은혜도 마찬가지로 심판과 형벌에 있어서도 유대인이 우선적입니다.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먼저 주었기 때문에 그 구원을 거절한 형벌도 유대인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됩니다.
여기서 헬라인은 이방인을 뜻합니다. 눅12:48절의 말씀을 의역해 보면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한 사람은 채찍을 더 많이 받고 알지 못하고 잘 못 행하면 적게 맞는다"고 했습니다.
알고 저지른 죄와 모르고 저지를 죄는 형량이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알고 믿는 자가 유대인이요 모르는 자는 헬라인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책임이 더 큽니다. 주님 오실 때 우리가 더 책망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복음 전하는 복된 입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0절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9절의 정반대를 말합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라! 아멘! ▶9절의 말씀처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알고 순종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먼저 받고 또 많이 받게 됩니다. 받은 순서대로 옵니다. 첫째는 유대인이 먼저 받았으니 유대인들이 그 은혜를 누리고 헬라인이 둘째로 받았으니 또한 그런 은혜를 누린다는 말입니다.
▶11절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6-10절까지의 결론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잠16: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여기서 외모란 얼굴일 수도 있고, 주위 여건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배웠다, 안 배웠다, 가졌다, 못 가졌다, 이런 외형적인 모습입니다.
인간세계는 외형적인 조건 때문에 계급사회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계급의 형태 따라 사람들은 한 개인을 판단합니다. 이렇게 인간이 만든 계급이라는 형태 따라 그 인간의 귀천이 결정되고 대우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거지왕자라는 동화를 잘 압니다. 어느 왕자가 왕궁이 갑갑하여 왕궁을 탈출했습니다. 어느 불쌍한 거지 집에 들어가 거지 아이와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모습이 너무 비슷했습니다. 거지 옷을 입은 왕자는 자유를 얻은 듯 기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왕궁이 발칵 뒤집힌 것입니다. 전국에 수배하여 왕자 옷을 입은 거지를 찾아 왕궁으로 모셔왔습니다. 신분이 거지였던 아이가 왕자의 옷을 입었다는 이유 하나로 왕궁에 들어가 왕자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판단의 기준이 그 외모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
약2:9절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신10:17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그 심령 속에 살아있는 영을 보시고, 그 마음속에 품고 있는 중심을 보십니다. ▶삼상16:7절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행13:22절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은 우리 심령 속에 영을 보십니다. 살았느냐? 죽었느냐? 롬8: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영국 웰링턴 장군이 어느 날 성찬식에 참석하여 단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한 가난한 노인이 와서 장군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려 했습니다. 그때 한 재직이 작은 소리고 "장군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좀 기다리라"고 하자 그때 웰링턴 장군은 노인의 손을 꼭 잡고는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나나 당신은 평등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미국 동부에 가면 '보스턴'시가 있는데, 그 도시에 미국 최대의 명문 대학인 하버드 대학교가 있습니다. 그 하버드 대학교 정문에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그 비석에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이런 말이 새겨지게 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아주 돈 많은 억만장자 부부가 있었습니다. 저들은 자기들이 일평생 모은 돈을 사회의 뜻 있는 곳에 기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들은 평소에 후세 교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대 최대의 대학인 하버드 대학의 총장을 만나서 이 일을 상의하려고 서부에서 동부로 달려와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정문에서 수위에게 총장을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위가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평상시대로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양새를 보고 수위가 불친절하게 대한 것입니다. 그때 부인이 자기 남편에게 "여보, 이만한 대학을 하나 설립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요?" 수위가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는 기가 막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취급했습니다. 결국 노부부는 하버드 대학교 총장을 만나지 못하고 쓸쓸하게 걸음을 돌이켰습니다.
노부부는 고향에 돌아와서 전 재산을 다 기증해서 미국 동부의 하바드 대학교에 버금가는 좋은 대학을 설립하게 되었는데 그 대학이 미국 서부의 명문 대학인 '스탠포드' 대학입니다.
드디어 스탠포드 대학이 설립되던 날 하바드 대학의 총장이 축하를 하기 위해서 건너왔습니다. 뒤늦게 그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수위 한 사람이 외모로 사람을 취했기 때문에 학교는 엄청난 손실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돌아와서 정문에 비를 하나 세웠습니다. 큼지막하게 글씨를 새겼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 ▶12-16절은 하나님의 심판의 규범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2절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다 망합니다.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다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란 이방인, 헬라인, 한국인들 등등입니다.
원래 우리들은 모세의 율법을 못 받았습니다. 율법 없이 범죄 했다고 해서 안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율법이 있고 범죄 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진리대로 심판하시므로 율법이 있는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나 범죄 하면 다 같이 망한다는 말입니다. 또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13절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 율법 책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으나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의인이 못되고 행하는 자라야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약1:25절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믿음은 행함이요 결단입니다.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이것은 특별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율법을 받았다는 것보다는 그 받은 율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온전히 실천하므로 구원을 얻으라는 말입니다. 율법의 긍정적 목적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예수)을 믿게 하는데 있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실천할 수 없다는 자아를 깨닫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4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하나님이 주신 본성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성인 양심을 주셔서 먼저 자기 자신에게 심판을 받게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양심에 가책을 받아 마음에 평화는 사라지고 불안과 공포가 엄습합니다. 자기 양심이 자기에게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15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양심이 증거가 되어" 사람이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우리가 옳게 살지 못한 것은 우리의 양심이 증거 한다는 뜻입니다. 양심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고전8:7절에 "더러워진 양심"이 나옵니다. 죄로서 더러워진 양심은 활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딤전4:2절에 "화인 맞은 양심"도 나옵니다. 화인을 맞으면 굳어져 버리고 감각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굳어진 양심은 예수의 보혈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녹아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어떤 제도나 어떠한 규범이라도 이 양심은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또 딤전1:19절에 "선한 양심"과 딤전3:9절은 "깨끗한 양심"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그 보혈로 씻음 받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우리 양심이 선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16절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16절에 은밀한 것이 드러나는 그 날인데 어떤 날입니까? 바로 심판의 날입니다. 한마디로 복음 안에 있는 자는 기쁜 날이요,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망하는 날입니다. 그 날은 주님의 심판의 날입니다. 그 날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은 기뻐 웃는 날, 밖에 있는 자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행위 속에 기록한 대로 상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대 전도자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여러분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나는 오히려 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으로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고 난 뒤에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행한 대로 보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사는 것이 더 두렵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상급을 많이 쌓으시기 바랍니다. /할/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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