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한겨레 사설] ‘안희정 성폭행’이 던진 충격과 분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3. 7. 17:10

[한겨레 사설] ‘안희정 성폭행’이 던진 충격과 분노

등록 :2018-03-06 21:51수정 :2018-03-06 21:56

 

유력 정치인의 위선 드러낸 폭로
‘권력에 의한 성차별’ 종식 계기로
여당, 뼈를 깎는 반성과 쇄신 해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여성 수행비서 ‘성폭행 파문’은 충격과 경악이란 말로도 묘사하기 힘들 지경이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꼽혀온 인물이 하룻밤 새 ‘성폭력범’으로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과 지지자들의 심경은 참담하고 허탈하기 이를 데 없다. 피해자가 또 다른 성범죄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철저한 조사와 진상 규명이 뒤따라야 한다. 안희정씨는 지사직 사퇴와 정치활동 중단에 그칠 게 아니라 법적 책임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안희정 충남지사.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안희정 충남지사.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사건 경과를 살펴보면 그 뻔뻔함과 위선에 기가 막힌다. 첫 성폭행은 지난해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였다. 대선에서는 철저한 사생활 검증이 이뤄진다는 점을 경험했으면서도 이런 일을 저질렀다니,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은 물론 국민을 두려워 않는 오만함마저 느껴진다. 더구나 ‘미투’(Me Too)가 촉발한 노도와 같은 분노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는 와중에, 그것도 스스로 ‘미투 지지’를 말하면서 또다시 성폭행을 했다니, 그 괘씸함과 몰염치함이 혀를 차게 한다. 안희정씨는 평소 페미니즘을 옹호하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등 눈에 띄게 여성 인권을 강조한 인물이었다.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의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받았고,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참신한 시대적 감수성을 지녔을 것으로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그에 대한 기대치가 컸던 만큼이나 지지자들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의 강도는 더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전형적인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임을 짐작하게 한다. 피해자 김지은씨는 “지사님 표정 하나 일그러진 것까지 다 맞춰야 하는 수행비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안 지사의 대선캠프에서 일하다 특채된 피해자는 ‘을 중의 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성폭력의 핵심 문제는 ‘힘의 차이와 기울어진 권력구조에 의한 폭력’으로 지적됐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 전반에 폭넓고 깊숙하게 뿌리박은 남성 중심의 권력관계를 걷어내지 않으면 성폭력 문제가 쉽사리 근절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미투 운동’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의원 보좌관에 의한 성폭력 사례도 속속 폭로되고 있다. “의원님이 #미투를 응원할 자격이 있냐”는 글도 올랐다. 국회의원과 보좌관, 그리고 주변 산하기관 사이에 ‘갑을 관계’가 분명하고 정보 유통을 고리로 한 비공개적 만남이 일반화된 정치권은 ‘권력형 성범죄’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안고 있다. 이제까지 드러난 유력 정치인들의 성추행이나 성희롱 사례도 적지 않다. 각 정당은 성폭력범죄신고상담센터 설치 등 제도 보완을 다짐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그릇된 문화를 바꿔내기 어렵다. 후진적인 권위주의 문화를 털어내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리더십이 뿌리내리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정치권 전체가 엄청난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지적을 깊이 새겨야 한다.

이번 사태를 특정 진영을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태도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진보, 보수를 떠나 명백한 범죄행위에 ‘공작’ 운운하면서 음모론을 들먹이는 사람들 역시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미투 운동’을 언제까지 피해 당사자의 용기 있는 폭로에 의존하도록 방치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 전반의 낡은 문화와 관행을 뜯어고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834925.html?_fr=mt0#csidxb5bfee262bb651b816c7b6b5f358e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