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1987,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 김정남(언론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3. 6. 17:48
제 896 호
1987,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김 정 남 (언론인)

   영등포 교도소에서 한병용(한재동,전병용)을 통해 내게 보낸 이부영의 편지는 “박(종철)군 건으로 구속된 조(한경), 강(진규) 건은 완전 조작극이야”로 시작, 별지로 된 추신(追伸)을 통해서는 박종철 군을 죽음에 이르게 한 나머지 고문경관 3명의 이름과 직위를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은폐조작의 경위와 함께 2월 27일에 검사 안상수가 교도소로 찾아와 조한경으로부터 고문 경위에 대한 자세한 진술을 청취하고도 “어느 쪽이 유리한지 잘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다는 얘기도 담고 있었다. 이와 함께 이부영은 이 같은 조작사실을 한 두 언론에 제보해서 그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기자 출신다운 제안을 하고 있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

   나는 이부영의 편지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1월 14일의 박종철 죽음 이후 그와 관련된 기사를 샅샅이 훑어 정황증거를 보완하면서 언젠가 밝힐 발표문 초안을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수배 중인 몸으로 언론사와 접촉한다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고, 설사 접촉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나를 노출시켜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그 무렵 예정되어 있던 임시국회에서 본회의 대정부 질의를 통해 이 엄청난 사실을 폭로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정치권에 있는 친구들을 통한 조심스러운 탐문과정에서 한때는 그것이 성사되는가 싶기도 했지만,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의원이 자신을 더 이상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거꾸로 사정하더라는 얘기를 듣고는 그 일을 더 이상 진척시킬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나는 김수환 추기경과 당시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일을 맡고 있었던 함세웅 신부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편지를 썼다. 처음에는 단지 내가 들어 알고 있는 이 놀라운 사실을 보고하는 내용이었지만, 점차 이 엄청난 정권 차원의 조작 사건을 빛 속에 드러내 줄 것을 간청하는 방향으로 편지 내용이 바뀌어 갔다. 연락은 나를 숨겨주고 있던 고영구 변호사의 부인 황국자 여사(1943~2007)와 딸 고은영이 맡았다. 이들이 명동성당은 물론 주임 신부가 해외출장 중이라 함세웅 신부가 주일미사를 집전하던 구파발성당에까지 쫓아가서 내 편지를 전했다. 그러나 이제나저제나 가타부타의 말씀이나, 기다리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는 이 충격적인 진실의 제보자가 나 김정남이라고 밝혀도 좋다는 간곡한 뜻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명운이 사제단의 어깨에 있다,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길이 이 진실의 공개여부에 달려있다, 어떻게 하든 사제단이 십자가를 져 달라고 떼를 쓰며 매달렸다. 실제로 나는 사제단 성명의 마지막에서 “이 사건 범인조작의 진실이 박종철 군의 고문살인 진상과 함께 명쾌하게 밝혀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과연 우리나라에서 공권력의 도덕성이 회복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결말이 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진실과 양심, 그리고 인간화와 민주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중대한 관건이 이 사건에 걸려있다”고 썼고 또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함세웅 신부는 5월 17일(그날은 주일날이었다), 내가 보낸 편지를 구파발 성당에서 받아 읽고는 “그래, 할 수밖에 없구나”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홍제동 성당으로 사제단의 단장 격인 김승훈 신부(1939~2002)를 찾아가 말없이 내가 보낸 편지를 전했다. 옆에는 김 신부의 어머님이 계셨다. 어머님은 그 무렵 이 나라에 큰 난리가 나는 꿈을 꾸셨고, 바로 어젯밤에는 난리통에 김승훈 신부가 깊은 웅덩이에 빠졌는데 성모님께서 건져 올려 주시는 좋은 꿈을 꾸셨다는 얘기를 들려주면서 자리를 피해 주셨다. 함세웅 신부가 “내일 성명서 발표는 신부님이 해주세요. 그리고 모든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라고 말했고, 김승훈 신부는 기쁘게 “내가 이번에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것은 구속을 각오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3120자, 십자가를 진 신부님

   1987년 5월 18일 오후 6시, 명동성당에서 광주민주항쟁 제7주년을 기념하고 박종철 군을 추모하는 미사가 거행되었다. 미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성당 마당까지 신자와 일반인으로 가득 찼다. 김수환 추기경은 미사강론을 통해 “눈 감고 귀 막고 외면한 죄를 용서하십시오”라며 “사제로서 전 생애를 바쳐 이 시대 구원의 십자가를 짊어지자”고 비장한 결의를 내비쳤다. 김수환 추기경도 미사 후에 전개될 상황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1부 미사가 끝나고 김승훈 신부가 제대에 올랐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향해 절을 할 때는 얼마나 간절했던지 장백의가 머리를 덮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의 제목이 낭독되자 성당 안팎이 술렁였다. 성명을 읽는 김승훈 신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듣는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마침내 이 성명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미사에 다녀온 황국자 여사로부터 들었다. 내가 할 일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내가 쓴 성명의 전문이 3,120자라는 것을 나는 김승훈 신부가 남긴 글을 통해서 비로소 알았다. 구속을 염두에 두고 얼마나 긴장된 가슴으로 그 성명을 읽었으면 글자 수까지 헤아렸을까, 신부님께 정말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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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이 사람을 보라:인물로 보는 한국 민주화운동사 1,2〉(전 2권) 두레, 2016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창작과 비평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