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밝혔던 김지은 전 정무비서가 “더이상 악의적인 거짓 이야기가 유포되지 않게 도와달라”며 쓴 자필편지를 12일 공개했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최근 현직 부장검사의 글로 ‘2차 피해’를 봤다며 조사단에 명예훼손 혐의 수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통스러운 피해를 힘겹게 세상에 공개했던 이들이 다시 한번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에 참담함을 느낀다.
김씨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배포한 편지에서 “신변에 대한 보복도 두렵고, 온라인을 통해 가해지는 무분별한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 예상했던 일들이지만 너무 힘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알려진 뒤, 온라인이나 에스엔에스에선 김씨의 의도를 의심하거나 “바로 사표를 던지면 되지, 이해가 안 간다”는 투의 글들이 퍼졌다. 일부 언론은 김씨의 전 직장 이력과 피해자 지인의 인터뷰까지 전하며 사건 본질과 관계없는 피해자 신상을 부각하는가 하면, ‘애초에 여성을 비서로 둔 게 문제’라는 패널 발언을 여과없이 내보냈다.
서 검사의 경우, 검찰 내부 통신망에 ‘성추행 문제와 인사 문제를 결부시키지 말라’는 현직 부장검사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에스엔에스에 ‘피해자 코스프레’ 등의 단어까지 사용했다가 지운 것으로 알려졌다. 서 검사가 지난해 9월 법무부 간부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성추행 사건 진상조사를 요구하지 않고 인사 요청만 했다는 허위사실이 퍼지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는 성폭력 피해 자체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7월 서울여성노동자회 실태조사에서,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제기했다가 불이익이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퇴사한 이들이 10명 중 7명꼴로 나타난 게 우리의 현실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조롱이나 비난만 문제가 아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이나 ‘사이비 미투 경계’ 같은 주장 역시, 결과적으로 말 못 하는 피해자들을 위축시키는 또다른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실관계 다툼이 필요하다면, 벌이면 된다. 하지만 근거없는 ‘카더라’ 식의 2차 가해는 피해자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병폐 구조를 공고히 하는 것이란 인식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