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강》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자! (롬 13:11-14)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죄악이 많은 세상, 어두운 세상'으로 표현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 가지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⑴어둠 속에서 어둡게 사는 사람, 죄를 짓고 악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썩었는데 나 하나쯤 썩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나만 유별나게 살 필요가 있겠는가, 올바로 살 필요가 있겠는가?' 하며 그냥 탐욕대로, 욕심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⑵어둠 속에서 죄악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할지라도, 나만은 올바로 살아야 되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첩첩 산중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차라리 혼자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⑶세상이 칠흑같이 어둡다 할지라도 나는 세상의 빛으로 살겠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삶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빛이 되고 소금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어둠의 자녀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지만, 빛의 자녀는 자기 보다 더 높은 신적인 가치관, 더 높은 법칙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빛의 자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비록 로마는 타락하고 방탕에 빠졌지만 로마에 사는 교회 성도들은 빛 된 삶,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AD 400년경에 어거스틴은 아프리카의 히포라는 곳에 주교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기독교 2천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에 한 분입니다. 그는 기독교에 사도 바울 다음으로 영향을 많이 준 신학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성자 어거스틴도 젊은 시절에는 방탕하고 타락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거스틴은 354년 북 아프리카 다가스테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파트리 키수스)는 이교도였고, 어머니(모니카)는 경건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가난한 생활을 하였고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마쳤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기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자 동네 유지들이 돈을 모아 유명한 카르타고 대학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기도와 동네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게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호탕한 기질이 있어 17세의 나이로 여인과 동거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키케르'의 책을 읽고 철학에 흥미를 느껴 바벨론 종교와 헬라 철학과 인도 사상이 종합된 이단 마니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그는 한 때 카르타고에서 가르치기도 했고, 나중에 이태리 밀라노대학에서 교수 생활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삶의 회의를 느끼고 어머니와 동거했던 여인과 아들의 만류도 뿌리친 채 로마로 갔습니다. 밀라노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암부로시우스 주교를 만나 큰 감화를 받았고 경제적인 안정도 이루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점 폐인이 되어갔으며, 항상 술에 취해 있었고, 정욕의 노예가 되어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에 보면 그가 정원에서 심각한 내적인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Tolle lege, Tolle lege)>는 어린아이의 노래 소리를 듣는 그 순간 그는 방으로 들어가서 성경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읽었던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 이후로 그는 어두움의 일을 청산하고 빛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386년 32세가 되는 해였습니다. 그 이후 430년 8월 28일 76세로 하나님께 부름 받기까지의 삶은 한마디로 은총의 삶이었습니다.
당시 어거스틴에게 들려진 음성은 이웃집 어린 아이가 부르는 노래 소리였습니다. 비록 어린아이의 노래 소리였으나 성령이 감동하시니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하늘의 음성으로 들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나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내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가 변해야 가정이 삽니다. 내가 변하면 교회가 부흥됩니다. 나부터 먼저 변합시다. /할/
우리는 흔히 높은 벼슬을 하던 사람이 그만두면 '옷을 벗었다'고 표현합니다. 꼭꼭 마음을 숨기는 사람에게 흔히 '가면을 벗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류의 가장 먼저 벗은 자가 누구인가? 아담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벗은 것이 부끄러워 숲 속에 몸을 감추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우고 있을 때 하나님이 오셔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이 때부터 죄를 지은 인간은 육신을 가리 울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옷은 죄의 옷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하십니다. ◀제목소개!▶
▶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깨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와 오늘의 사회도 어두워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시기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이 때가 어느 때인지 알아야 합니다. 때를 알아야 우리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여기 '이 시기'란 어떤 시기인가? 어떤 이는 종말의 때를 가리킨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복음의 시대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리라고 약속한 시기이든, 복음의 시대이건 간에 지금이 어느 때이며 지금이 어느 시기인 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원문에는 카이로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짧고도 명확한 시기를 말합니다. 특정적인 시기인데 그리스도의 재림전의 시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참 흥미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이 이 시기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 후에 이 시기를 해설하면서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악의 잠에서 깰 때가 되었습니다. 육신의 안일한 잠에서 깰 때가 되었습니다. 게으름과 태만의 잠에서 깰 때가 되었습니다.
▶잠자는 사람은 깨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내린 명령은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각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왜 깨어있어야 합니까?
살전5:4-6절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니라."
자다가 깨어야 할 이유는 아침이 오기 때문입니다. 아침이 와서 일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잠을 자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종말의 시대요, 예수께서 재림하는 시기입니다. 심판의 때가 점점 가까워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심판의 때, 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천국 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이 점점 더 가까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세 가지로 해석하면 <과거의 구원, 현재의 구원, 미래의 구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은 이미 받은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와 미래의 구원도 이루어져야 됩니다. ▶현재의 구원은 내 생활이 점점 발전해서 성화 되는 것, 거룩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미래의 구원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완전하게 구원받아 하나님 앞에 상을 받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마26:41절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이르러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닥치고, 유혹이 닥쳐와도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은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 아직도 잠자리에 있는 사람, 즉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시험에 빠지고, 유혹에 빠지고, 죄악에 빠져서 허우적거립니다.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세월만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벧전5:8-9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 속에는 악한 마귀가 있습니다.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악한 마귀, 사탄이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대적하지 않고서는 인간으로서 어느 누구도 이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깨어 있는 자는 등에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자입니다(마25:4). 여기 '자다가 깰 때'란 말은 '슬럼프에서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슬럼프 상태는 의욕을 상실해서 완전히 자포자기한 상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12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여기 '낮'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기도 하고, '천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살전5:5-6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밤'은 무엇을 말합니까? 밤은 해가 진 오후 6시부터 해가 뜨기 전 오전 6시까지를 말합니다. 어둠이요, 혼돈입니다. 고통이요, 고독이요, 죽음을 말합니다.
'낮'은 무엇을 말합니까? 낮은 해가 뜨는 오전 6시부터 해가 지는 오후 6시까지를 말합니다. 빛이 있고, 질서가 있고, 축복이 있고,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벗어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럼 <빛의 갑옷을 입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영적인 전신갑주를 입고,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삶을 말합니다.
바울은 엡5:8절에서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고,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정말 영광스러운 말씀입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이방인들의 빛'이라고 했고, 유명한 랍비들을 가르쳐 흔히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류에게 크게 공헌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인류의 등불'이라고 하고, 민족에게 공헌한 사람을 '민족의 등불'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무엇인가 독특하게 훌륭한 일을 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빛을 남긴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도를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우리 모두 감사,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혀 줍니다. 빛은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엄청난 힘을 행사하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혼탁한 이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하는 삶의 열매를 보여주며 살아 라고 하십니다.
▶'빛의 갑옷을 입자'는 무슨 의미인가?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믿는 자의 본을 보이며 살라는 권면입니다. 여기서 '행하다'는 말은 '걸어 다닌다, 혹은 산다, 실천한다.'는 뜻으로, 믿음의 사람들의 행위, 즉 삶의 열매를 말합니다.
우리는 본래 어두움에 속한 어두움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믿고 주안에서 빛의 자녀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8:12절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어두움은 더럽고 악한 죄악된 생활을 의미하고, 빛은 거룩하고 깨끗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①어두움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⑴자연적인 어두움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따라 해가 져서 캄캄한 어두움이 있습니다(창15:12).
⑵영적인 흑암(어두움)이 있습니다. ▶마22:12절 "지옥을 가리켜 바깔 어두운 곳"이고 했고, 골1:13절 "사단이 지배하는 곳을 가리켜 흑암의 권세가 있는 곳"이라고 했고, 엡6:12절 "악의 세력을 어두움의 권세, 혹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또 엡5:1절 "죄인의 길에 참여하는 자를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는 자"라고 했고, 고전4:5절 "영적인 무지를 어두움"이라고 했고, ▶고난, 고통, 환란과 역경을 어두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일제 36년을 민족의 암흑기라고 했고, 거기서 벗어난 것을 해방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롬13:12절 "도덕적인 부패도 어두움"이라고 했고, 요9:4절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을 어두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빛이라고 한 것은, 이런 '어두움의 세력'에서 이기고 승리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무슨 말인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믿/
▶성경은 주안에서 빛의 자녀된 우리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고 계십니다.
마5:16절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눅11:35절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행13:47절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롬13:12절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벧전2: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게 되면 빛의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나무가 햇빛을 받으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듯이 성도는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받아 빛 가운데 살 때에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깡패가 회개하고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예수 믿고 회개한 후에는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는데 어떤 술 취한 사람이 그 앞을 가로막고 시비를 하다가 주먹으로 막 때리더랍니다. 말없이 다 맞고 난 후에 "형님 다 때렸소?" 하고 물었더니 술 취한 사람이 "그래 다 때렸다"하며 거칠게 말합니다.
그때 김 목사님이 "예수는 내가 믿고 덕은 자네가 보았네" 라고 말했지만, 술 취한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영문을 몰라 함으로 "내가 김익두"라고 자신을 밝히니 이 사람이 깜짝 놀라 술이 깨어 "형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하고 빌었다고 합니다. "형님 지금부터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할 때 "어떠하긴 뭘 어떠하나 나를 따라와야지"해서 용서해주고 부흥회 데리고 가서 예수 믿게 하였답니다.
▶빛의 자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3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여기 '단정히 행하라'는 말은 올바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면서 화장을 하고 몸을 단장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단정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방탕'은 원래 '축제의 행렬'을 뜻하는데 축제가 끝난 뒤의 식욕과 몸의 쾌락을 필요 이상으로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술 취함은 방탕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방탕과 술취함은 타락으로 나아가는 수레바퀴와 같습니다. 방탕한 자들을 보면 다 술 취하게 되며, 술 취하는 자들은 방탕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방탕은 식욕과 몸의 쾌락을 필요 이상으로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욕의 무절제한 추구입니다. 술 취함의 상태가 바로 그러합니다. 술을 마실 때 처음에는 점잖게 사람이 술을 먹다가 나중에는 술이 술을 부르게 됩니다. 그러다가 취하면 술이 사람을 마셔 버립니다. 그러므로 술 취하면 자연히 방탕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방탕과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은 밤늦게 까지 먹고, 마시면서 술잔치 하는 무절제한 삶, 흥청망청하는 삶을 금하라는 말입니다.
엡5;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도가 입에 술을 대는 것은 방탕으로 향하는 지름길입니다.
술 취한 다음에 오는 것이 무엇인가? '음란과 호색'입니다. 여기 음란이란 말은 무절제한 정욕이 낳은 부도덕한 성행위를 말합니다. 호색이란 분별 없는 성욕을 말합니다. 창19:5절에 타락한 소돔성에 천사들과 상관하려 했던 무리들이 호색꾼들입니다.
'쟁투와 시기'는 무엇인가? 호색 군들이 나중에 서로 다투게 됩니다. 어두움의 결과가 다툼으로 끝을 맺습니다. 쟁투와 시기의 처음은 작은 미움에서 시작됩니다. 미움이 극에 달할 때 시기가 생기며, 시기하다 보면 분쟁하게 되고 서로 쟁투하게 됩니다. 이는 그릇된 편견과 아집과 독선에서 나옵니다.
여기 '쟁투'는 감정의 격정을 말하고, '시기'는 남의 성공에 대한 편견 즉 남의 행복을 원치 않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다른 사람이 누리는 축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우입니다.
현대는 감정이 격정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스승도 몰라보고, 부모도 몰라보는 시대가 되었고, 심지어는 하나님도 없다고 함으로 인간의 감정은 격정 일로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5:21절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방탕과 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엡5: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방탕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술 취한 사람도 많습니다. 싸우는 사람도 많습니다. 시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들은 범죄하고 죄악에 빠집니다(창19:32). 병에 걸립니다(잠14:30). 모든 재물을 다 잃어버리고 가난하게 됩니다(잠28:19). 화가 임하게 됩니다(사5:11). 그리고 심판을 받습니다(눅21:34).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을 당합니다(갈5:15).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됩니다(갈5:19∼21).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세 가지는 <의식주>입니다. 그런데 먹는 문제보다 입는 문제가 더 앞세우고 있습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란 말도 있습니다. 그 만큼 우리나라는 입는 옷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파리에서 새로 생긴 패션이 뉴욕이나 동경에서 유행하기 전에 먼저 서울에서 유행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옷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런 세상 화려한 패션을 입으라는 것이 아니라 '빛의 갑옷을 입으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하십니다. ▶옷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①옷은 신분을 상징합니다. 예수로 옷 입는다는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습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습니다. 의사나 간호원은 흰 가운을 입습니다. 경찰은 경찰복을 입습니다. 이처럼 옷은 사람의 신분을 짐작케 함과 동시에 민족이나 국적을 짐작해 하기도 합니다.
기모노를 입고 있으면 분명히 일본 사람일 것이고, 아오자이를 입고 있으면 분명히 중국 사람일 것이고, 한복을 입고 있으면 그 사람은 분명히 한국 사람일 것입니다. 이처럼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예수로 믿고 사는 그리스챤 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산다는 뜻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성도다. 목사다, 장로다. 권사다. 집사다>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 것을 숨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장된 성도요, 무늬만 가진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확실히 드러내 놓고 잘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②옷은 품위를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산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위를 지니고 그 품위를 드러내고 산다는 뜻입니다.
사실 입고 있는 옷을 보아서 그 사람의 인격이나 품위, 교양이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옷차림이 단정하면 어딘지 모르게 교양 있게 보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끼가 있어 보이고 허세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은 겉치레보다는 그 사람의 인격이 더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벧전3;3절 이하에서 경고하기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겉모습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기 속 사람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을 보시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고 아름답고 정직해야 합니다. /믿/
예수님은 바리세인들을 향하여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의 겉과 속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마23:27절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또 어느 곳이든 간에 다소 능력이 부족하게 보이거나 좀 바보스럽게, 좀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그래도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야! 정직하고 참 진실해!"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할/ 아무리 능력이 많고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또 큰 힘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저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 겉과 속이 달라! 진실하지 못해!”이 정도가 된다면 이미 그 사람은 인격파탄에 이른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로 옷 입고, 빛의 갑옷을 입고 사는 자들이기에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사람 중에 가장 무서운 사람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들입니다. 바울은 오늘 예수를 믿고 사는 우리를 향하여 '예수로 옷 입고 살라'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정직하게 바르게 성실하게 살라는 권면인 줄 믿습니다. /할/
③옷은 보호의 수단입니다. 예수로 옷 입고 산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보호자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옷은 우리의 몸을 보호해 줍니다.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 인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털옷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털신을 신고 다닌답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의 유래는 창3장에서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어 보겠다고 하나님이 절대로 보지도, 먹지도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따먹고 나서 그들이 하나님처럼 되었는가? 아닙니다. 눈이 밝아졌는데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그들의 발가벗은 수치였습니다. 그래서 그 수치를 감추기 위해 나무 잎을 엮어 몸에 걸쳤습니다. 그러나 그 옷은 해가 뜨면 말라 비틀어져 수치가 다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오셔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므로 그들의 수치가 가리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옷을 입게 되었는데 그 옷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유행에 유행을 거듭해서 현대는 우리가 하이 패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이 아무리 디자인이 좋고 색상이 좋고 원단이 좋다 할지라도 세월이 가면 낡아지고 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에 보호수단으로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낡아지고 없어지고 내 곁을 떠날 날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며 사는 재물도 권력도 명예도 인기도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날이 오고야 맙니다.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는 영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할/
다윗의 고백은 무엇인가? 삼하22:2-3절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바울 사도의 고백은 무엇인가? 고후4:8-9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 속에 예수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군인이 군복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서 세상에서 선한 싸움에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옷을 입는 데는 몇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입니다.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이러한 옷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낡아지고 떨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이 입혀 준 그리스도의 옷만이 우리가 입을 영원한 옷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입혀 준 옷은 어떤 옷인가?
①속죄의 옷입니다. 창3: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범죄한 아담이 벌거벗은 부끄러움을 가리우기 위하여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 옷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 묻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바로 이 옷은 주님이 우리의 부끄러운 수치를 가리우기 위하여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하시고 그 옷을 벗겨 우리에게 속죄의 옷을 갈보리에서 입혀 주신 것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추한 죄인이라도 주님이 주신 피 묻은 옷을 입기만 하면 허물과 죄에서 가리움을 받게 됩니다. /믿/
②온유와 겸손의 옷입니다. 마11:28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도 종의 형체를 입고 구유에 누우신 몸으로 오셨습니다. 일생동안 머리 둘 곳이 없는 몸으로 구원사역을 행하셨으며, 최후에는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 겸손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구원사역에서 이러한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응답을 받고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욥22:29절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 ▶시10:17절 "여호와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잠18:12절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벧전5:5-6절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할/
③영화(영광)의 옷입니다. 눅15:22절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탕자는 아비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가서 허랑 방탕하여 굶어서 주려 죽는 돼지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갈라 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이웃을 불러 잔치한 것입니다. ▶우리가 후일에 천국에 가서 이러한 영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입을 옷은 형언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옷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이 보입니까?
①예수 사랑, 이웃 사랑의 실천자가 됩니다. 바울은 고전13:4-7절에서 사랑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②섬김의 사람이 됩니다. 신앙생활은 섬김의 삶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주의 종들을 섬기고 직분 자들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어린 사람들을 섬기는 생활입니다. 예수님도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마20: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③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④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사는 거룩한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이제 육신적인 일을 도모하지 맙시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육신 적인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빌3:7-9). 그리고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을 입으라고 했습니다(엡6:10-20). 칼빈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 것 같은 엄숙한 태도로 살아라"고 했습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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