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목사의 역대상 2장 설교
가장 튼튼하고 견고한 나무가 세워지려면 한 뿌리에 한 줄기로 인하여 많은 가지가 벌어지고 그 가지에서 열매가 주렁주렁하게 열리는 것입니다.
뿌리도 여러 개로 되어 있고, 줄기도 여러 개로 되어 있으면 뿌리끼리, 줄기끼리 자기가 우선이고, 자기가 왕이라고 하면서 싸웁니다. 뿌리와 줄기가 서로 자기가 우선이라고 싸우면 온전한 나무가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무는 아브라함이라는 조상의 뿌리가 하나입니다. 이삭과 야곱이라는 줄기가 하나입니다. 그 뿌리와 가지에 야곱을 통하여 12가지로 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민족은, 유대인은 하나입니다.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외적과의 싸움에서 견디어내었습니다.
근 2000여 년 동안 나라와 국가를 잃어버리고 지구촌 곳곳으로 흩어져서 살았지만 2000여년이 흘러오는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였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나라가 독립하여 건국되면서 지구촌 곳곳으로 흩어져서 살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왔는데 똑 같은 언어와 풍습과 생활모습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같았습니다.
약간씩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2000여 년 동안 흩어졌는데도 하나의 언어와 생활풍습과 신앙을 고집할 수 있었던 것은 민족의 뿌리가 하나였고, 민족의 줄기가 하나였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뿌리가 하나였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민족이라는 뿌리도 가지각색이었고, 민족이라는 줄기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 곧 셈과 함과 야벳을 통해서 벌어지기 시작한 민족들이 각양각색의 색깔과 특성을 지니면서 각자의 민족으로 형성되어 갔습니다.
셈의 후손들 중에서도 유독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골격만 유대인이라는 민족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8명이었는데 이삭만이 유대인의 줄기가 되었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다른 이방인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삭의 아들 중에서도 야곱만이 유대인의 줄기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다른 이방 민족의 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은 12명이나 되었는데도 한 형제도 헤어지지 않고 12형제가 한 민족의 가지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단, 요셉, 베냐민, 납달리, 갓, 아셀, 이렇게 12명의 아들이 각각 지파를 형성하였습니다.
12지파는 12가지라는 말입니다.
그 12가지, 12지파에서 수없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시대를 따라가면서 열렸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과 애굽의 바로의 초대를 받고 애굽으로 내려간 숫자가 7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근 430년 동안 사는 동안에 기아급수적으로 불어났습니다.
이들이 출애굽할 때의 숫자를 보면 남자 장정들만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여기에 어린아이들과 여인들까지 합치면 얼마나 많은 민족이 형성되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중다한 잡족들이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뒤따라오는 애굽 군사들을 뒤로 하고 홍해가 갈라지고 갈라진 홍해를 건널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실로 엄청난 관경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울 정도로 팽창되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요 상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식들을 많이 낳으려고 했습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식을 많이 낳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각 가정들마다 아이들로 넘쳐난다고 합니다.
우리민족도 한민족이라는 뿌리와 줄기가 하나입니다.
근 5000여 년 동안 줄기차게 한 뿌리와 줄기에서 동방에 아주 작은 나라, 한 민족으로 형성되어 왔습니다.
5000여년 이 흘러오는 동안 각종 이주민들이 흡수되어 왔습니다.
이주되어 왔지만 역시 한 민족이라는 동질성 앞에서 흡수되어 왔습니다.
한 민족, 한 뿌리와 줄기라는 의식은 우리민족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빼앗겨버리면 우리 민족이 존재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한민족의 정신, 얼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한 행위들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한민족의 정신, 얼은 빼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비록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 하지 못하여 나라를 잃은 민족이 되었지만 한민족의 깊은 뿌리까지 빼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빼앗기지 않은 정신과 얼이 있었기에 지구촌 곳곳에서, 전국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다양한 민족들이 여러 종류의 모습으로 우리나라에 흡수되어서 다문화시대라고 합니다만 그래도 한민족,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은 쉽게 깨뜨리지 못합니다.
한민족,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이 깨져버리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인의 모습도 하나여야 합니다.
신앙의 뿌리도 하나, 신앙의 줄기도 하나여야 합니다.
그것 위에 여러 가지가 뻗어나고 그 가지에서 수많은 신앙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신앙의 뿌리,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줄기가 견고하게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뿌리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줄기에서 벗어나면 신앙은 죽게 되는 것이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을 통하여 각양각색의 열매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9가지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22-23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1;5-7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성령의 열매들이 많이 열리게 하려면 믿음의 뿌리, 줄기가 하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의 뿌리와 줄기가 하나가 될 때 성령의 역사는 풍성하고 풍족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화 중에는 계대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후손은 대가 끊어져서는 안 됩니다.
대가 끊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끊어진 대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 양자를 들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옛날에는 양자를 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낳았을 때에도 양자를 들여야 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을 떼에도 양자를 들였습니다.
그 양자는 가장 가까운 형제의 아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친족의 아들을 양자로 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대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사용하는 계대법은 우리나라의 양자를 들이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큰 형님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 되는데 형님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시아버지는 동생에게 형수의 침실에 들어가서 아들을 낳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생은 형수의 침실에 들어가서 형수에게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형수는 원하지 않는 침실이라도 시아버지의 명에 의해서, 사회적인 풍습에 의해서 시동생과 관계를 맺어서 임신이 되어야 합니다.
임신이 되어야 하는데 임신이 되지 않고 그 동생도 죽어버리면 그 다음 동생이 큰 형수의 침실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니 형수는 형수대로 마음과 몸을 고생해야 하고, 시동생들도 마음에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성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아십니까?
남편이 몇 명이라고 합니까?
다섯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섯 번째로 있는 남편도 남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 여인을 창녀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 수가성 여인은 창녀가 아닙니다.
수가성 우물에는 창녀가 없는 지역입니다.
창녀도 아닌데 어찌하여 남편을 다섯이나 둘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계대법에 의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본래 큰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낳지 못하고 큰 아들이 죽었습니다.
둘째와 결혼합니다. 둘째도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셋째와 결혼합니다. 셋째도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넷째와 결혼합니다. 넷째도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다섯째와 결혼합니다. 다섯째도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제 여섯째와 결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실 때 여인은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본래 남편은 단 한 사람뿐입니다.
정식으로 결혼한 첫째 아들만이 남편이었습니다.
다른 시동생들은 남편의 역할을 할 뿐 정식적인 남편이 아닙니다.
지금 여섯째도 정식적인 남편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인은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예수님께서도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가성 여인이 계대법에 의해서 살아가는 여인의 모습입니다.
원하지 않는 시동생과 성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동생들은 어찌된 것인지 형수와 성관계를 맺기만 하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 여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람 잡아먹는 사람. 사람 죽이는 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너무 너무 고통스럽게 사는 여인입니다.
자신은 이 집에 시집 온 것 밖에 없는데 시집에서는 이 여인으로 인하여 모든 남자들이 죽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사는 여인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메시야임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8장에 보면 유다의 가정에서 에르와 오난과 셀라를 통해서 계대법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말이 에르와 결혼했는데 에르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죽었습니다.
오난은 형수 다말에게서 아들이 태어난다해도 형 에르의 자식으로 입적될 뿐이지 오난의 아들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질 밖으로 사정하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가 되어 오난도 죽었습니다.
그러니 다말은 에르도 죽이고, 오난도 죽인 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셀라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다말에게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말은 유다의 가정에 시집을 와서 아들을 낳아주어야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인데 시아버지 유다가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셀라가 클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면서 친정으로 쫓아 보내고 말았습니다.
친정으로 돌아간 다말은 세월이 흘러서 셀라가 장성했는데도 시댁으로 돌아오라는 전갈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시댁에서 자신을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 유다가 자기 친정 마을로 휴가차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말은 일시적으로 창녀로 변신하여 유다를 꼬였습니다.
유다는 자기 며느리가 창녀로 변신한 줄로 모르고 지참물을 가져오기 전에 지팡이와 도장으로 대신 몸값을 지불하고 다말과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다말은 창녀의 옷을 벗고 친정으로 돌아가서 살았습니다.
유다는 친구를 보내서 창녀를 찾아서 지참금을 주고 자신의 물건을 찾아오라고 하지만 창녀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자기 며느리가 음행하여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여왔습니다.
유다는 대노하면서 음행한 며느리를 당장 죽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 다말은 유다가 지참물로 준 지팡이와 도장을 보여줍니다.
비로소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며느리를 용서해 줍니다.
다말은 유다로 인하여 임신하여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베레스를 통하여 유다의 가계가 계승되면서 헤스론, 람, 암미나답, 나손, 살마, 보아스, 오벳, 이세, 다윗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로서 여덟 번째 아들,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오늘 본문 2;15절에 보면 일곱 번째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6; 10절에 보면 다윗은 일곱 번째가 아니라 여덟 번째 아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세의 아들 중에 중간에 누군가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숫자에 놓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대상 2장에서는 다윗을 일곱 번째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대기는 이스라엘 왕국이 형성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역사에 필요치 않은 것은 빼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왕국을 세우고, 더 나아가 메시야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와 민족을 세워가기 위해서 민족의 뿌리, 줄기가 하나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계배법이라는 그 당시 사회적인 법, 전통, 관습을 통해서 사라져 가는 유다의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갑니다.
시아버지와는 절대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회 통념을 뛰어넘어서 다말에게 말도 안 되는 일 곧 남편과 시동생을 통해서 성취되지 않았던 족보계승을 시아버지를 통해서 족보를 계승해야 한다는 감동을 주셔서 베레스를 낳게 되고, 베레스를 통해서 유다의 가계를 이어나가게 합니다.
그 유다의 가계를 통해서 다윗 왕국이 탄생하게 되고, 더 나아가 메시야 왕국이 건설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인간적이고, 전통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만 성취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이고, 비전통적이고, 비정상적인 방법, 비율법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왕국이 건설되는 과정에 얼마나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베레스의 아들 헤스론을 통해서 신앙의 위대한 위인 갈렙을 태어나게 하여 유다지파를 신앙의 가문으로 세워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역대기 2장을 읽으면서 우리들이 강하게 느껴야 되는 것은 역사는 사람이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하나님의 손에 인도되어서 역사는 이루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힘차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들을 조종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우리들 자신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들도 하나님은 서슴지 않고 그 일들을 진행시켜 나가도록 감동을 줍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안 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들도 하나님께서 역사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손길에 맡겨진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가정과 생업터전과 우리들 자신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일에 맡겨드리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사는 우리 산성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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