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 영안이 열리지 않는 원인
부정적인 면들을 보게 됨으로 보다 더 긍적인 면을 확실하게 알게 되고
이 부정적인 요인들을 통하여 이를 읽는 분들이 빛과 어두움을 분명하게 보는
눈이 열리어 하나님을 온전하게 헤아릴 수 있는 긍정적인 영안이 열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지극히 성경적인 서술법이니
먼저 이해하는 마음으로 읽으셔야 은혜가 됩니다.
1. 말씀 무지에서 옵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말씀과의 차이를 알아야 하는데
성경을 앞에 두고도 말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말씀을 전하고 신학을 가르치고 성경과 말씀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고
설교를 들으려하기 때문입니다
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성경은 말씀을 기록한 것인데
이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
성경은 바로 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인데
이 신령한 말씀의 존재를 성경의 내용이나 사건이나 교훈으로 알려고 하기 때문에
말씀이라는 존재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을 연구하여 성경에 관한 해박한 지식은 가질 수 있을지 모르며
통독으로 성경을 암송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말씀은 존재요
인격체요 영이기에 그러한 방법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말씀을 아는 것은 말씀이라는 존재와 인격과 영의 실체를 전인격적으로 알아야 되는 것이기에
성경해석이라 하지 않고
‘말씀 해석’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통하여 성경을 알아가며 영안을 열어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을 알지 못하고 영안이 열리지 않는 것은 성경은 잘 알지만
말씀 무지에서 오는데 이것은 엠마오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듯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이 나타나셔서 성경을 풀어 해석하시어
말씀의 속성을 깨닫게 해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과 말씀의 차이를 비유적으로 다시 말하면
사람을 겉 사람과 속 사람을 구분하듯이 성경을 형상에 비유한다면
말씀은 속성에 비유할수 있겠다
사 59:9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 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행하므로
사 59:10 우리가 소경 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2. 말씀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없어 열리지 않아서 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한 지식이나 설교는 말씀을 체험적으로 살아가는 삶과 성령 안에서의
기도를 통한 영적 교제로 알게 되는 하나님의 속성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것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다 같이 성경 말씀 속의 하나님의 뜻을 진정으로 구하고자하는
마음과 절대적인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무조건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성경 속의 내용과 사건은 들려지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말씀의 속성을 헤아리지 못하게되고 영안이 열리지 않습니다
요 8: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
요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3. 말씀을 내 심령에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단순한 상식선에서 알고 있고 기도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방법을 모르고 어떻게 하여야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가를 모르고 있기에
기도가 힘들고 기도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기도가 힘들면 아직도 하나님의 생명이 나를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영적 상태이다.
기도는 즐거운 것이고 기도 시간이 기다려지며 기도하고 싶은 갈급 함이 있는 심령이
하나님께 살아 있는 심령이다
기도가 죽어 있고 기도가 힘드는 상태이면 이는 잠자는 자이요 죽은 자와 마찬가지로
심판의 대상이 되는 자이다
성경은 영적 잠자는 자와 죽은 자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마지 못해하는 기도나 의무적으로 할 수 없이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과 더불어 성령을 힘입어 기도하는 것이 참 기도 이다.
중언부언하거나 의미 없는 방언만 하거나 소원을 간구하고 나라와 민족을 운운하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발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간구와 다르고 기도는 묵상하는 것과 다르고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도 다르고
기도는 말씀을 상고하는 것과 다르고 기도는 종교 의식이 아니고
예배의 순서가 아니다.
기도의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의 의미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말씀을 듣는 것이며 내 심령에 말씀을 심는 것이며 기도로 말씀을 내 심령에 심으면
내 심령이 깨어 있어 살아있는 심령이라면 이 말씀의 빛된 속성을 통하여 삶 가운데서,
기도가운데서, 영안을 열어 가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4. 보이지 않는 성전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물질이나 세상이 실체이고 영적인 것이 허상이나
그림자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실체요
보이는 것이 허상이다 인간의 영혼이 참모습이고 육신은 단지 영혼의 반영이다
마음이 육신의 모습이 나타나고 보이지 않는 성전이 참 성전이고 보이는 성전은
보이지 않는 성전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영혼과 보이지 않는 성전의 실체를 저버리고
보이는 것에 매달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는 눈이 되어버린 것이다.
보이지 않는 영혼이 더 중요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이 더 중요한데도
보이는 성전을 더 중요시하게 가르치는 잘못이 문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를
소망하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더 사랑하는 마음과 보이는 것에만 메여 있고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보이는 것으로 소망을 삼고 살아가는 것
때문에 보이지 않는 심령 성정의 의미와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영안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뜻은
이 보이지 않는 성전에 들어와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라는 게 성경의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말씀을 누리기 위해 신령한 예복을 입어야 하고
이 예복을 입기 위해 예수님이 필요하고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하고
율법을 지켜야하고 기도를 해야 하고 여러 가지 파생된 수단과 방편이 동원되고
역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5. 구원의 의미를 오해하고 회개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으나 빛을 주관하는 광명을 다시 주시고 홍해를 건넜으나
요단강을 다시 건너야 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소유했다가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고토를 되찾고 허물어진 성전을 다시 재건하고 소경이 눈을 떴으나
안수를 두 번 받았고 예수를 만나 거듭 났으나 잃어버린 첫사랑을 되찾고
다시 한번 더 공중 혼인 잔치에서 만나야 되는 성경 말씀의 맥을 헤아리지 못하고
구원을 받으면 다 된 줄로 생각하는 잘 못된 인식 때문입니다.
죽어서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고 잃어버린 첫 사랑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처음 행위를 찾기 위해
신랑 맞이하는 신부처럼 새롭게 단장하고 혼인 잔치를 맞이하라는
현재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6. 영들의 실체를 헤아리지 못해 영적인 투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과 이를 위한 기도는 혈과 육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속한 악의 영들과의 투쟁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그 투쟁의 상대를 잘 모르고 영적 투쟁의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예수의 몸인 참 교회를 대항하고 성도를 무너뜨리는 세력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교만
(6)과 짝하고 동조하여 대중의 무지한 세력을 형성하는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이 세상
(6)과 짝하고 동조하는 무지한 대중을 주도하는 어두움의 주관자들의 물질 물량 주의 신앙과 사단
(6)에게서 나온 적 그리스도의 영(귀신)의 가르침으로 성령 사역을 거부하게 하는 세력에
물들여지고 동조하고 짝하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대중의 영적 주장들이며
이들을 성경에서는 666의 인친 표라는 것입니다 666의 인침을 받지 않는 주장과
신학은 매매 할 수 없는 분위기와 환경을 의미합니다
어두움의 세력들은 성경의 가장 귀중한 핵심적인 진리를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엉뚱하게 해석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나타남’의 제 2편은 어두움의 세력들이 가리고 있는
성경의 핵심적인 진리만을 해석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공중권세 잡은 자들과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들의 실체는
이 세상에서 악을 행사하는 자들만이 아니라 성경의 해석을 잘못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왜곡하게 만드는 세력들도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며
이 세력들에 편승하는 주장과 신학과 이론과 말을 말합니다
이러한 세력들에 동조하는 사람 속에 역사하는 이론과 신학과 말로 말미암아
신령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고상한 인간적 신앙을 갖게 하는 사람이나
행위들이나 분위기들이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요 어두움의 주관자들입니다.
하늘에 악한 영들이란 믿는 사람들이든 믿지 않는 사람들이건
사람들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는 사단이 주는 악한 생각이나 사상이나 말이 바로 그 실체요
믿음을 빼앗아 가는 의심과 참소하는 충동들이 다 이들의 정체입니다
7. 신령한 산 제사 드리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제물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살아서 하나님을 가까이 가고 만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를 깨트리고 육성을 벗어나게 하려는 하나님의 역사와 손길을 헤아리며
순종하는 법을 배워 예수의 영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신령한 예복을 입고
성령의 법을 따라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의 허물이나 티끌은 보아도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눈으로는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가 없습니다.
자신의 몸을 회생의 제물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고 감사제를 드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신령한 제사를 매일 드림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누리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여기 있다 저기 있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 심령 속에 있음을 통하여 내가 과연 이 하나님의 나라와 보이지 않는
이 신령한 축복을 과연 얼마나 누리고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8. 시공간을 초월한 영적 세계를 3차원의 시공간으로 생각한다.
창세기도 오늘 나에게 주는 말씀이요
계시록도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며 천국도 지옥도 현재의 나의 영적 상태를 말한다.
영적 무지는 이 영원세계가 현재의 세계 안에 있고 오늘의 현세가 영원세계 안에 있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고
산자의 하나님이시며 네가 내안에 내가 예수 안에 있는 이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소적인 개념으로 성경과 영적 세계를 보려고 하지 말라.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영계의 사건이고 이야기이면서
지금 이루어지는 사건이요 이야기이다
9. 하나님의 의와 자신의 의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를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주의 이름과 복음을 위한 모든 일에도 자기의 의를 들어냄으로
하나님의 의를 들어내는 것 보다 우선 합니다.
무엇이 자기의 의를 들어내려고 하는 행위인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을 오해하게 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지만 먹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며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지만 나를 위해서도 일하게 되는 것도 역시 현실이다
이러한 모순 속에 진실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헤아리는 분별이 있어야 할 것인데 이것을 헤아리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하나님 존전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인간은 현실과 환경을 초월하여
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 세계 속에 살면서 이 현실을 초월하여 내 심령과 중심을 바로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과 육이 이론적으로는 다르고 구별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혼이라는 울타리 속에 있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 있으면
하나님 존전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어
영적으로 오히려 손실이 오게 되고 눈이 더 멀어지고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버리고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야 되는데
바로 이러한 성소의 문(양 의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넘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기도하게 되면
바로 이러한 원인과 이유 때문에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잘 못되어 질 수가 있는 것이다
10. 성경 속의 말씀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여러 사건들 중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건은 하나님이 우주에 나타나시는 사건으로
시작되고 인간 앞에 나타남으로 시작된다
[요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에덴동산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 노아를 통하여 나타나시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요셉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사무엘에게 솔로몬에게....그 다음에 시대에 따라 나타나시는 여러 가지 모습과 현상들이
달라지는데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신 예수님으로 나타나시든
시대와 오순절 이후 성령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하고
이제 이 시대는 말세적인 현상이기에 성경 속에서 남종과 여종에게 새 영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과 주의 영으로 재림하시어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예수의 영이 나타나시(고전 12:7)는 현상을 통하여 말씀의 존재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보아야 한다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1. 천국과 천국의 열쇠(성령)를 잘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말씀은 천국 복음이며 이 천국을 위해 천국 열쇠를 주셨는데
이 천국 열쇠를 통하여 먼저 땅에서 열면 하늘에도 열리는 이 영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연유한다.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 천국에대한 것 보다 변질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이 천국 열쇠를 가톨릭은 사죄권을 말하고 개신교는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이다’는 신앙고백을 천국 열쇠로 말하고 있으나
이 천국 열쇠는 베드로가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도록 한 베드로 속에 역사 한 성령을 말한다.
이 성령의 열쇠는 단순하게 열쇠 구멍에 곶아 비틀어서 열어 한번으로 끝나는 열쇠가 아니고
비밀 번호를 맞추어 가면서 완전한 천국이 임할 때까지 열어야하는 열쇠이다
이 번호를 알아내야 하는데 하나(1)이신 하나님은 3위1체 하나님으로 1위의 창조주
하나님과 2위의 말씀과 3위의 성령님이 역사하는 영적 원리는 영 혼 육신의 3으로 구성된
인간에게 역사하여 나타나는 3 재곱승(타자료 표시하지 못하여)의 반응에 나타나는 결과와 역사가
엮어져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사단이 개입되어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어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1과 2와 3으로 역사하는 하나님과 4와5와6으로 역사하는 인간이
2와 6과 8로 역사하는 사단의 비밀을 통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7단계의 과정과
3X3=9가지 현상과 10 11 12의 열매인 결과를 헤아리고
그 열매와 결과를 하나(1)을 빼버림으로 뒤 발꿈치를 물어 불완전하게 해버리는
사단의 역사를 헤아려야 한다
천국 열쇠의 비밀 번호는 이 얽히고 설킨 영적 원리를
하나님과 인간과 사단의 각각 그 구조와 속성을 풀어감으로 성령 사역과 하늘의 비밀이
열려지고 영안이 열려지고 성경이 열려지고 말씀이 열려진다.
완전한 자는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이며 영적 원리이며 이것이 정상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이 인간의 속성을 사단은 이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 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말씀 가운데 하나인데 이러한 것들이 자신들에게 감추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 비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신에게는 가리워져 있는
이 비밀의 하나가 항상 부족합니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고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단이 이를 깨트려 버린다는 것을 깨닫는 겸손한 자는 결코 악인의 꾀를 쫓지 않을 것이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을 것이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을 것이라서 눈이 열려 나갈 것입니다.
12.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경건은 바로 말씀의 속성 가운데 하나이며 이 말씀의 속성은
또한 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안을 열어 갑니다
어두움의 무지에서 깨달아져 하나님을 아는 것 이것이 지식이요
이 것이 바로 생명이며 경건이며 바로 하나님을 아는 이 지식이 영안을 열어 간다
그러므로 영안이 열려가는 것 이 것이 바로 영생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롬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벧후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벧후 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벧후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벧후 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13. 하나님의 손길인 성령의 법과 영적 원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은 하나님의 손길인 것이다
예수 안에 있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인간은 다시 육성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영은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 있지만
이 육성은 사망의 법에 지배를 받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 죄의 법을 쫓아 살고 있습니다
이 죄에는 사망 권세의 세력과 귀신의 영들이 지배하기 때문에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내 심령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하나님에 속한 신령한
성품과 속성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육성을 가지고 있고 세상 속에 살아가야만 하며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찾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이 능력과 빛과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서
끊임없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도우시는 보혜사 이 성령을 통하여 도와 주시기 때문에
이 성령의 속성을 잘 알아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 배경이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어두움의 이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들이 주관하기 때문에
이러한 악한 어두움의 영들을 분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성령이 역사하는 원리와 사단들이 역사하는 영적 원리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14. 성령의 나타남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하게 주신 천국의 열쇠인 성령이 잠자고 있거나 소멸되어
나를 통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신령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 12: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 12: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15. 어두움의 주관자들이 눈을 가림 인간의 눈은 타락하여 신령한 것을 보지 못하도록
헤아릴 수 있는 눈이 가리워저 있어 성경 속의 신비가 벗겨지지 아니하며
태초에 함께 계시든 말씀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무지요 어리석음이며 어두움입니다
어두움을 쫓는 육성이 이 육성을 지배하는 어두움의 세력들에게 메여있고
이 들의 영적 세력들이 눈을 가리게 만든다
그리스도의 영에 접붙힘 받은 바 있지만 육성과 이 어두움이 완전히 벗겨지지 아니한 자를
다른 말로 말하면 이런 그리스도인을 육신에 속한 자라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신령한 자들이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인데
그것은 신령하지 아니한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인간의 이성이나 지성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속에 감추어진 신령한 비밀을 이해하기에는
육성이 깨트려지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영적 성숙함이 있는 자가 아니면
성경을 해석할 수는 있다 할지라도
말씀은 해석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파멸시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빼앗으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망하게 되는 것을 사단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리게 만들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왜곡하게 만들면
사단은 간단하게 저들이 원하는 어두움의 세상을 만들 수 있고
믿음의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쉽게 끌어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어두움을 주관하는 세력 등의 정체와 실체를
좀 더 현실 적으로 이해하고 들어가야
본론의 내용을 좀 이해하기 쉬울 것이며
보다 더 영안이 쉽게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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