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지체장애 지닌 김원영 변호사
‘존엄을 위한 퍼포먼스’와 성찰로
‘장애=잘못된 삶’ 편견 바로잡는
논쟁적 사례와 깊은 사유 변론서
‘존엄을 위한 퍼포먼스’와 성찰로
‘장애=잘못된 삶’ 편견 바로잡는
논쟁적 사례와 깊은 사유 변론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사계절·1만6000원
김원영 지음/사계절·1만6000원
지난주 서울 지하철 1호선 신길역~시청역 구간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정거장마다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사고 위험이 높은 장애인 리프트를 철거하고 역사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는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였다. 실제로 지하철 역에선 휠체어 리프트 이용자들의 사망과 중상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일부 시민과 언론의 ‘지하철 운행 지연’, ‘시민 불편’ 같은 시각과 혐오 반응도 여전하다. 2003년 국어사전에 ‘이동권’이란 낱말이 오르고 2005년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됐지만, 장애인들에게 ‘자유로운 이동’은 아직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이동의 부자유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제약이지만, 장애인들에겐 일상에서 겪는 불편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출간한 김원영 변호사가 20일 오후 서울 혜화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골형성부전증을 갖고 태어난 김원영(37) 변호사가 자신의 경험과 국내외 사례 및 이론 연구를 토대로 장애인, 소수자, 나아가 인간 존엄성의 참뜻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서울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일하는 짬짬이 박사과정 공부까지 마쳤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성장과정은 물론 현재 일상의 삶은 지체장애인들이 걷는 일반적 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입학이 거부돼 검정고시를 치렀고, 중학 과정은 특수학교를 다녀야 했다. 변호사가 된 지금도 최대 관심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존엄성 확장이다.
지은이는 책에서, 맨 먼저 20세기 캐나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제시한 ‘퍼포먼스(연기)’ 개념으로 어린 시절 경험을 말한다. 철부지 아이들이 ‘다리 병신’이라고 놀리는 것에 다른 신체적 묘기를 과시하거나 능청스럽고 냉소적인 대꾸로 맞받는 ‘노련함’은 웃겨서 슬프다. 다른 이들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제가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아시죠?”(시각장애)라거나 “내 다리 찾으면 5000원 줄게, 망할 다리가 어디 갔는지 일주일 내내 찾아도 없거든?”(지체장애) 하는 식이다.
10대 초반 더운 여름날, 함께 있던 동네 친구들이 계곡으로 물놀이를 나간 상황은 문자 그대로 ‘극적’이다. 지은이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 상황이 두려웠”으면서도 “야, 빨리 가라, 난 좀 자야겠다”고 말한다. 모두 우르르 뛰쳐나가는데 한 친구가 자기는 ‘피부 관리’를 해야 한다며 쭈뼛쭈뼛 남는다. 지은이가 “헛소리 말고 빨리 가”라고 내치자, 그 친구는 못 이기는 척 나가더니 잠시 뒤 다시 와서 만화책을 던져주고 서둘러 사라진다. 서로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서로의 진실을 철저히 공유하면서도 상대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연기 내용을 조율하며 한 편의 무대를 연출”하는 것, 이런 상호작용을 지은이는 ‘존엄을 구성하는 퍼포먼스’로 지칭한다. 이때의 ‘연기’는 서로 대등하며 인격체로의 존중을 강화한다. 반면 어느 정치인이 장애인 목욕봉사를 한답시고 성년 남성의 알몸을 공중에 드러내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정반대편에 놓인다. 이같은 ‘품격을 위한 퍼포먼스’는 철저히 비대칭적이며 인간 존엄성을 훼손한다.
지은이는 “누군가에게 연극적인 삶은 위선이겠지만 누군가는 연극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민감하게 응시한다. “가면을 쓰지 않은 얼굴은 너무나 투명해서 실제로 얼굴이 있는지 알아볼 수 없”으며 “얼굴 없는 인간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장애인은 그렇게 ‘실격자’가 된다. 품격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법치주의는 “국민이 법 질서를 준수하거나 준수하도록 통치되는 상태”다. 반면 ‘실격당한’ 사람들은 정반대로 행동한다고 여겨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고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 신체적 장애나 질병 등을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사람들이 ‘품격’ 있는 삶을 달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장애인이 인간 존엄이나 체면을 구기지 않고 편안하게 용변을 볼 수 있는 ‘오줌권’도 대다수 비장애인들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권리’다. 지은이가 “우리를 존중하는 사람들과의 일상적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가 가진 결핍을 수용하는 윤리적 결단을 바탕으로 권리의 발명과 법 제도의 변화”를 강조하는 이유다.
2014년 9월 서울 종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장애인들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를 촉구하며 리프트의 위험성을 알리며 줄지어 리프트를 타는 퍼포먼스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은이는 “자신을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며 ‘보여지는 나’가 연극배우처럼 사람들 앞에서 특정한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어떤 행위나 인식에 나선 자기 자신을 더 깊은 곳에서 바라보는 인식 행위”인 ‘성찰성’에 주목한다. 이런 성찰성은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 덕목이지만,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겐 또다른 의미로 변주되거나 방어본능으로 작동한다. 온갖 한계와 멸시에 노련한 존재가 되기 위한 “고도의 성찰적인 자아는 타인의 시선을 날카롭게 감지하고, 그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순간 그 의미를 분별하며, 그것이 자아의 본질로 공격해 들어올 때 진지를 구축”하면서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가 분리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장애를 대하는 태도를 둘러싼 극단적이고 때론 불편하기까지 한 논쟁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더 깊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국내에도 사례가 있는 ‘잘못된 삶’ 소송이 그 하나다.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부의 태아에 다운증후군이 있다는 사실을 진단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애아를 출산한 부부가 정신적 충격과 양육비의 상당액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소송을 낸 것. 실제로 장애아 양육과 장애인으로 살기에는 상상 이상의 고통과 비용이 따른다. 유독 장애인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디보티즘’도 있다. 학자들은 이를 성적 도착이나 병리적 페티시즘으로 보지만, 검은색 스타킹에 흥분하거나 팔뚝에 드러난 힘줄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왜 장애가 있는 신체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건 ‘질환’으로 분류되어야 할까?
더 극단적인 사례는 인위적인 ‘장애 선택’이다. 외국의 한 청각장애 레즈비언 커플이 자신들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5대째 청각장애인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낳았다. 의도적으로 장애아를 출산한 이 사례는 엄청난 논쟁을 촉발했다. 지은이는 수어(手語)를 최초의 ‘모국어’ 삼아 성장한 이들은 비장애인보다 훨씬 풍부하게 복잡한 공간 패턴을 이해하고 의사소통에 활용하는 특수한 인지구조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그런 삶의 방식이 언제나 ‘결핍’은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지은이는 “부모가 자녀의 ‘잘못된’ 부분까지 환대하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삶’도 존엄하고 매력적이고 풍성한 삶이라는 것을 변론하려” 하면서도, 동시에 “간단한 시술로 장애를 고칠 수 있고 장애아를 출산하지 않을 수 있는 경우에도 거리낌 없이 그 시술을 거부할 자신이 있는가?”라고 자문한다. 실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실존적, 철학적 질문이다.
지은이는 “예의바른 무관심, 섬세한 도움 (…) 조금 더 긴 시간을 들여 상대의 ‘초상화’를 그려보려는 미적·정치적 실천”과 “‘나 피부관리해야 돼’라는 뭉클하고 탁월한 상호작용”이 발휘될 때 ‘존엄의 순환’이 시작되고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김원영 변호사 인터뷰] “장애란 기존 규범의 바깥에서 그 결함 드러내는 것”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출간한 김원영 변호사가 20일 오후 서울 혜화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1층 카페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휠체어를 탄 그는 기자에게 미리 “인터뷰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설 수도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전동 휠체어의 한쪽 바퀴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예정보다 일찍 귀가해야 해서 장애인 콜택시를 호출한 것. 펑크가 난 바퀴는 납작하게 찌부러져 있었다. 그는 “이런 상태로 휠체어를 움직이면 바퀴 축이 휘어져 수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울시가 운행하는 장애인 콜택시가 현장에 오기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택시를 타러 나가면서도 전동 휠체어의 펑크 난 바퀴의 반대쪽으로 몸을 불편하게 기울였다.
-책에는 장애의 ‘제거’뿐 아니라 ‘선택’과 ‘수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장애’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한마디로 ‘갖다 버리고 싶은 것’(웃음). 하지만 너무나 강하게 나의 인격과 불가분 결합돼 있다. 내게 장애는 세상을 보는 렌즈이자, 국적·인종·세대를 뛰어넘는 나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수평적 정체성’이다. 의미를 더 넓혀보면, 장애란 기존의 사회적 규범이나 질서, 관행의 바깥에서 그것들의 결함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 규범들이 포섭하지 못하는 뭔가를 드러내고, 우리가 만들어온 관행과 규범적 질서를 뒤흔드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기’에 힘든 점은?
“물리적 제약, 취약한 사회보장 등 많은 문제가 있다. 가장 힘든 건 ‘타인의 시선’이다. 품격과 의전이 강조되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도 자신을 꾸미고, 우아하게 보이고, 추해보이지 않고 싶은 ‘품격’의 욕망이 있다. 그런 걸 쫓아갈 수 없다. 예컨대, 오늘은 휠체어 바퀴가 펑크 났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하루가 어그러진다. 뇌성마비장애인은 근육이 뜻대로 통제되지 않아 어색한 행동과 실수를 많이 하게 되는데, 이는 대중에게 기피되는 몸짓이다. 법규와 별개로, 비공식적이고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신체적 매력도 있어야 하는데, 장애인들은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현재 우리 사회의 장애인 인권 수준은?
“2000년대 들어 장애인 권리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돌봄’이나 ‘활동지원제도’도 시혜적 서비스가 아니라 ‘권리’라는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입법화 단계까지 나아갔다. 장애인차별금지법도 동아시아권에선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얼마나 실질적 규범력이 있느냐다. 장애인 관련법은 크게 권리침해를 구제하는 법과 사회보장 관련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권리침해구제법은 최근 들어 법원도 전향적으로 판단하는 추세여서 실효성이 있다. 그러나 사회보장은 예산상의 제약이 여전하다. 또 하위법인 시행령·시행규칙까지 내려가면 포괄 위임을 하는데 여러 현실적 문제들에 걸려 제대로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인식과 태도다. 최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놓고 일부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장애인이 자립을 위한 공동주택에 이사 오는 것까지 차를 막고 방해한다. 그런 노골적인 혐오가 큰 상처를 준다. 법이 부여하는 권리와 무관하게, 일상에서 만나는 시민들, 이웃들에게 혐오받고 불쾌한 존재로 여겨지는 데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항상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인권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린 시절부터 분리돼 생활하는 관행을 깨고 함께 지내며 서로가 충분히 노출되도록 일상적 상호작용의 정도를 높여야 한다. 사람은 서로 많이 만나고 오래 볼수록 상대에 대한 다양한 인격과 면모를 통합해서 인식하기 때문에 편견이 줄고 자연스레 어울리게 된다. 가장 좋은 건 어린시절 학교에서부터 통합교육을 하는 거다. 장애인 예술활동도 가치가 있다.(실제로 김 변호사는 2013~14년 장애인 극단 ‘짓’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연극은 바로 앞 무대에서 배우의 몸을 보는 거다. 어떻게 움직이는가, 어떻게 발성하는가를 보면서 배우고 깨닫는 효과와 가치가 있다.”
조일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