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4시에 북한 인민군이 남침으로 일어난 6.25 전쟁은 3년을 끌다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으로 끝이 났다. 6.25 전쟁은 우리 역사에서 임진왜란에 다음 가는 비극이었다. 그나마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데는 5가지 기적이 뒷받침되었다. 첫째 번과 두 번째 기적은 지난 글에서 소개한 바이고 오늘은 세 번째 기적에 대하여 쓰고자 한다.
세 번째 기적은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었던 기적이다. 숫자상으로나 제도상으로나 유엔군이 한국전에 참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글자 그대로 기적적으로 유엔군이 한국전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유엔에는 안전보장이사회 15 국가가 있다. 그중 5개국이 상임이사국이다.
유엔이 중요사안을 결의하는 규정이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가 만장일치로 동의할 때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 상임이사국들 중에 소련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련이 반대하면 유엔군의 한국전 참가는 당연히 부결될 수밖에 없었다. 소련은 북한 김일성 군대가 남침을 자행하게 뒤에서 조종 지원한 국가이기에 소련의 반대로 유엔군의 참여가 저지되어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유엔군 참전을 다급하게 결의하여야 할 처지여서 한국전쟁에 유엔군이 참전하는 안을 제목으로 하여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회원 국가 다섯 나라의 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예상외로 소련 대표가 불참하였다. 소련 대표가 불참하니 다른 4 나라가 찬성하여 유엔군의 참여가 통과되었다. 그 결의의 결과로 유엔군 16개국 군대가 병력을 지원하여 전세를 역전시키고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소련 대표가 그 중요한 회의에 왜 불참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의견이 아직까지 분분하다. 몇 가지 신뢰할 만한 이유들이 제출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아닌 듯하다. 소련 대표의 불참으로 유엔군이 공식적으로 한국전에 참가하고 한국 국민들도 힘을 내어 싸워 이 나라의 공산화가 저지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하늘이 도우신 것이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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