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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곳에서의 주님과 만남(출3:1-8) [방콕 한인연합교회 신상태 부목사 신앙간증]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8. 11. 10:13
뜻하지 않은 곳에서의 주님과 만남(출3:1-8)
- 글쓴이 : 신상태 (jonathanshin) | 작성일 : 2009-09-13 | 조회 :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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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3장1~8절

I. 들어가면서
[타미플루보다 더 심각한 영적인 바이러스에 민감하라.]
해마다 수십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말라리아로 죽어가지만 국제 사회의 무관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반면 북반구나라의 1200명이 신종플루로 죽은 것을 가르켜 마치 21세기 흑사병으로 여겨져 10억개가 넘는 백신을 주문하는 초유의 사태가 국가별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서울 신학대학교의 초청집회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집회에서도 이 신종플루의 여파와 사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정부에서 외국에서 입국한 학생 및 교수는 일주일이 지난 후에 학교에 와서 강의나 출석을 할 수 있도록 한데에, 지난 수요일에 입국한 제가 설교를 해도 되는가에 대한 논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수요일과 금요일에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예배실로 들어갈 때에 2000여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한명씩 소독기를 지나서 들어가도록했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온몸에 소독약을 분사한 후에 예배 준비실로 들어가 있는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신종플루의 여파를 실감하며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에 말씀을 전하기 몇 분전성령님께서 강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 시대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신종플루에 대응하며 소독을 하고 약을 분사하고, 신종플루에 걸리지 않기 위해 마스크와 손을 씻도록 광고하며 더 나아가 미리 예방 백신을 맞고, 이미 확진 환자에 대해 ‘타미플루’라는 약을 공급하며 준비하고 있지만, 그렇지만 이 시대에 우리의 영혼을 좀 먹고 있는 영적인 바이러스에 넘어져 영적 죽음의 단계까지 이르렇지만 정작 아직까지 아무 대처도 하지 않고 있는 심각한 영적인 무방비 사태에 대해 인식하게 해 주셨습니다.

마음에 더 거룩한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분명하고도 철저하게 우리가 깨달아야 할 너무도 귀한 메세지였습니다.
그래서 들고 다니던 공책에 그 내용을 적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에 보이고 우리의 피부에 민감하게 다가오는 것에 우리는 발 빠르게 반응을 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엄청난 차이를 느끼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선을 구분하는 것이 바로 ‘민감함’입니다.
이 말은 예민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민감함이라는 것은 영적인 ‘센스티브’에 가깝고, 예민함은 정신적인 용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민감함과 둔함에 대해 혼돈하는 시대입니다.
정작 민감해야 할 것에는 둔하고, 둔해야 할 것에 우리가 민감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가 조금 전에 읽은 출애굽기의 3장 1절~8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이 시대에 우리가 어디까지 민감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기 위해 “뜻하지 않는 곳에서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서울 신학대학교에서 말씀을 전하기 전에 예배를 위해 학생들을 위해 중보할 때에 주님은 오히려 그 시간에 뜻하지 않은 그 시간에 뜻하지 않았던 그 장소에서 저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주셨던 것 처럼, 오늘 예배를 위해 오신 여러분들은 이 시간을 통해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것과 같이 성령이 여러분 각 사람에게 들려 주시는 메시지를 부여 잡는 뜻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지길 축원합니다.

II. 본문을 열면서
[성경 속에 등장하는 뜻하지 않는 곳에서 주님과 만난 사람들]
성경에 보면 정말이지 기대하지 않고 뜻하지 않는 곳에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우리가 읽은 모세라는 사람도 그가 기대하지 않았고,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와 시간에 뜻하지 않는 곳에서 주님을 만난 장면이 잘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뜻하지 않는 인생의 무기력함 가운데서 하나님과 만난 모세]
성경을 보면 모세의 인생의 여정을 3구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로 그의 인생120살에 각 40년씩을 나누어서 3구분으로 나누는데, 오늘 본문에 소개되어진 모세의 인생은 2기 말기를 미디안광야에서 보내고 있을 때입니다.
모세의 인생의 여정은 한마디로 말하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입니다.
애굽 하수가에 버려져 죽을 목숨이었지만 기도와 믿음으로 모세를 숨긴 부모님 덕에
바로 공주의 도움아래 왕궁에서 자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급격한 낭떨러지 같은 변화를 경험케 된 것은 바로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으로 도망자가 되어질 때였습니다.
살기위해 도망친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도망쳐 들어 갔는지, 애굽 도시를 빠져 나와
저 멀리 미디안 광야까지 도망하게 되어집니다.
하루 아침에 그의 인생의 하늘과 땅을 경험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제 잠 자던 곳이 왕궁이었는데, 오늘은 자신의 몸하나 누울 곳이 없는 광야를 떠
도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 혹은 ”야이로”라는 사람을 만나 그는 십보라와 결혼해
서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언 40년이 흘러가던 그 때에 성경이 그가 어떤 자세로 미디안광야에서
살았는지 정확하게 표현은 해 주지 않지만, 우리는 그가 얼마나 무기력하게 살았는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장1절을 보면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칠 때”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모세의 삶의 적극성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말입니다.
결혼을 하거나 새로운 가정을 꾸릴 때에 새로운 가장으로 지낼 수 있는 위치가 됨에
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장인의 양을 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와 있는 야곱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삶의 자세입니다. 야곱이 20년동안(7
년은 라헬, 7년은 레아, 6년은 삼촌)을 섬길 때 그는 이미 갑부가 되었습니다.
삶의 적극성을 가지고 살았던 야곱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그는 삶에 강한 투지와 의
지력 보다는 과거를 회상하며 살았을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이미 40년이나 지나버린 그때 그 순간의 짧은 순간의 큰 실수를 회상하며 그는 어쩌
면 내가 왜 그랬을까를 반복하며 지냈을 것입니다.

화려한 인생의 1막을 그리워하며, 비참하고 무료한 인생의 2막을 힘없이 보내던 그가 양을 몰고 하나님의 산 호렙을 지나고 있을 때에 그의 모습은 말씀을 바라보는 저에게는 결코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실패와 후회와 한탄의 한숨을 쉬고 있을 그에게 하나님은 나타났습니다.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영적인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던 모세에게
시내산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 나신 것입니다.
뜻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를 기억해 보십시요.


[뜻하지 않는 두려움 가운데서 하나님과 만난 야곱]
야곱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형 에서와의 장자권을 두고 팽팽하게 씨름하던 그는 사실 말도 안되는 싸움을 했던
사람입니다.
결국 그 말도 안되는 싸움에서 형의 장자권을 빼앗아 형으로부터 목숨을 부지 하기
위해 저 멀리 삼촌네 집으로 도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혹시 형이 뒤 쫓아 오진 않을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한번도 가보지 않는 삼촌네 집을 향해 떠나는 그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눈물로 광야 가운데서 옮기고 있었습니다.
해가 떨어져 어두움이 엄습해 올 때에 야곱은 광야에서 무서운 짐승과 독충으로부터
그리고 한줄기 빛조차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과 두려움가운데 벧엘이라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에 성령의 충만한 때가 아니라, 야곱이 정직과 의로움으로 살아갈 때가 아니라,
야곱이 도망자로, 야곱이 두려움에 떨 때에, 야곱이 어디로 가야 할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두번째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은 바로 형 에서와의 화해의 만남을 하기 위해 불안
한 마음으로 형 에서를 찾아갈 때였습니다.
2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세월 속에 모든 것을 다 지우고 싶지만,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형에 대한 범죄로 인해 야곱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용서를 빌기위해 형을 만나기로 결심한 그는 극한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얍복강을 중심으로 가족과 가축의 떼까지 둘로 나누어서
간격을 두고 갈 정도였습니다.

뜻하지 않는 밤에 눈물과 그리고 자신의 잘 못을 회개하는 심정으로 칠흑 같은 어두
움 속에서 하나님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 한 번 더 나타나 셨습니다.
그리고 좌절하고 막심하고 두려움에 있던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회복의 이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뜻하지 않는 절망 가운데 하나님과 만난 사마리아 여인]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많은 남편으로부터 성적인 학대와 그리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던 그녀,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그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이 없는 그 여인,
하루 하루의 삶 속에서는 이미 삶의 흔적보다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로 살아가던 그녀는 태양이 뜨겁게 내리 쬐는 한 날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혹시 누구나 보지 않을까? 하는 염려의 심정으로 우물가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우물가에서 조용히 우물을 긷으려는 순간에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적인 학대와 사랑을 받지 못한 아픔과 상실감 속에 하루 하루를 자포 자기하던 그녀에게 뜻하지 않는 시간에 그리고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주님은 그녀에게 찾아 오셨고, 그녀의 영혼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뜻하지 않는 인생의 마지막 가운데 하나님과 만난 강도]
여기에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그는 짧은 인생을 굵게 살았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진 그곳에 그는 예수님 옆에 높이 메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지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있는지 알 순 없지만,
죽음의 시간을 얼마 앞두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두렵지 않던 죽음의 순간이 점점 두려움으로 바뀌고, 후회의 순간으로 바뀌어 가지만 이제는 끝이구나! 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죽음에 대한 극한 두려움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 오신 주님은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엄청난 반전을 맞으며 죽게 됩니다.
죽음의 순간에 뜻하지 않았던 그 십자가위에서 주님은 그에게 죽음대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신상태 부목사의 신앙간증]: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의 주님과의 깊은 만남]
논산에서 고된 6주의 훈련을 받고, 논산을 떠나고 싶었지만 주님은 논산에서 다시 후
반기 4.2”박격포 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다쳐서 3개월을 병원에 입원하고 다음해 2월에 드디어 강원도 양구에 자
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자대배치를 받은 2사단은 강원도 양구에 있는데, 3월이 가까워 옴에도 불구하고 연병
장에 흰눈이 소복이 싸여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병원에서 보내고 왔다는 이유로 가혹한 괴롭힘이 시작되었습니다.
신학대학을 다니는 것을 알고는 주일 예배 조차도 못하게 했습니다.
주일 아침이면 새 군복과 군화를 신고 바로 앞 언덕에 보이는 백호 염광 교회를 향해
줄서가는 다른 병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남아서 기름때 묻은 포를 닦으면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몇주가 흘렀을까요?
수요일 예배와 금요일 그리고 주일예배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울음이
쏟아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지혜를 주 셨습니다.
혼자만의 예배드릴 수 있는 곳을 택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언듯 떠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주신 지혜는 바로 화장실 이었습니다.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여전히 추운 곳이라 수세식 화장실이 아닌 그야말로 퍼세식 변소에는 한 밤에 고참들
이 싼 똥이 그대로 똥탑이 되어 쌓여 있었습니다.
나무 꼬챙이로 똥 탑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앉아서 주일아침 종소리에 맞추어 사도신
경으로 그리고 찬송가를 속으로 부르고 말씀을 1장 읽고 그리고 기도하고 나오면 10
분이 약 10분 정도가 됩니다.
그곳은 저의 인생에 있어서 주님을 만난 최고의 장소이며 공간이었습니다.
가장 은혜의 시간이었고, 가장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10분을 앉았다 일어나면 냄새가 심해 견딜 수 없을 텐데, 혹은 보통 다리가 저려 견
딜 수 없을 텐데라고 생각하시지만, 하나님의 준비하심일까요?
시골에서 자란 저는 그 냄새와 그 자세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의 주님과의 만남은 너무도 귀한 만남이었
습니다.


III. 본문을 풀면서
[우리는 가끔 착각 속에 살아간다-성령 충만할 때만 주님이 우리를 만나 주신다]
우리는 가끔 착각 속에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그 착각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는 ‘성령 충만한 때만’ 만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봐 온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만난 때와 장소는 결코 성령 충만한 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주님은 만나 주신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난 때는 엄청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후 엄청난 현실의 감당할 수 없는 영적인 눌림과 번민의 시간이며 동시에 화려했던 과거가 자꾸만 그립고 생각이 날 때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난 때는 엄청난 범죄 이후에 그 어떤 곳을 피해 가더라도
두렵고 하루 하루를 보내기 힘든 인생의 최대 고비의 시간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난 때는 수치심과 상실감으로 세상 어디에도 그 누군가에
게도 챙피해서 자신을 감추고 살아야만하는 오늘이 있을 뿐 내일이 없는 처절한 시간
과 장소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난 때는 죽음이라고 하는 인생의 마지막 기로에서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이것밖에 안되는 것 요만큼 다 주님]
우리에게 주어진 24시간이 있습니다.
이 24시간 가운데에 새벽예배와 또 다른 경건을 통해 1시간을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그렇다면 나머지 23시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주님 없이 살아가는 건가요?
그렇게 따지면 인생의 80 여정가운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채 1년도 안되는 시간을 주
님과 함께 하는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단순한지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우리가 한계를 빨리 인식할수록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는 주님이 도
움이 절실히 그리고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은 한계를 경험하면서도 좌절하는 사람입니다. 한계를 경험하면서도 낙담하고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 모양이지?
나는 왜 그것 밖에 안될까?
내가 왜 이 모양은 왜겠어요? 이 모양은 주님이 이렇게 지으신 것이구요.
내가 왜 이것 밖에 안되는 것은 주님이 이것 밖에 재능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지혜로운 사람은요.
주님 요 모양 밖에 안되고, 이것 밖에 안되니깐, 이제는 주님이 일 하실 차례입니다.
주님 이제는 주님이 함께 하 실 때입니다.
할렐루야!


[구별된 장소와 시간보다 뜻하지 않는 장소와 시간에서 주님을 만난 로렌스 형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의 저자인 로렌스 형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뜻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주님을 만났던 사람입니다.
수도원이라는 장소에서 그가 생활하고 있을 때에 그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루 종일 교
제하고 나누었던 시간과 장소는 바로 그의 일터인 주방이었습니다.
그는 설걷이를 하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는 양파를 까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는
생선을 손질하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는 밥을 푸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는 쓰레기를 태우면서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입니다.
그는 분노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만났고,
그는 슬픔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만났고,
그는 좌절과 때로는 아픈 병 가운데서도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만날 때에 시간을 초월했고,
그는 하나님과 만날 때에 공간과 장소를 초월했고,
그는 하나님과 만날 때에 모든 상황속을 초월해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구체적으로 주님이 우리를 이 순간 만나길 원하신다.]
주님은 실제로 지금 이 순간 그렇게 우리를 만나길 원하십니다.

어쩌면 이 자리에 계속되는 경기의 침체속에 사업의 한계를 느끼고 술집에서 좌절해
앉아 있을 때에
어쩌면 이 자리에 아이들의 학비문제로 심각하게 테이블에 앉아 고민하고 있는 순간

어쩌면 이 자리에 심각한 지병과 건강의 염려로 홀로 괴로워 있을 때에
어쩌면 이 자리에 남편과의 관계 문제로 한계에 이르러 괴로워하고 있을 때에
어쩌면 이 순간 사람으로 실망해 상처가운데 있을 순간에
어쩌면 이 순간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힘겹게 일하고 지쳐 있을 때에
어쩌면 이 순간 자녀 문제로 심각한 문제에 있을 때에
어쩌면 이 순간 물질의 문제로 심각한 문제에 있을 때에
어쩌면 이 순간 심각한 이성문제로 상처와 괴로움가운데 있을 때에
어쩌면 이 순간 신앙의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에
주님은 만나길 원하십니다.

IV. 나가면서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삶의 질이 향상되어가는 이 때에 우리는 점 점 더 하나님의 부재로 인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출애굽기 3장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계획한 특별한 시간과 장소가 아닌,
우리의 삶의 영역의 그보다 더 넓은 뜻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그리고 상황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만나길 원하신 다는 것입니다.

가을이 바꿔지는 환절기 가운데에 신종플루로 인해 우리가 두려워하기 보다는 그 보
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영적인 죄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우리의 영적인 옷깃을 새
롭게 여미고 바로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럼 자연히 주님께서 신종플루도 사라지
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아무쪼록 한 주일 동안 여러분의 엄청난 넓은 영역인 뜻하지 않는 장소와 시간에서
그리고 상황 속에서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가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