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3690호 / 언제나 주님이 옳습니다.
창골산 메일은 카페 가입 하신분 중 수신에 동의 하신분 에게만 보내드리는 메일로 누구나 받아 볼수 있으며 일시에 매일 발송 됩니다.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카페 내정보에서 받지 않음으로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 |||||||
사람들은 우주가 어떤 원리에 의해 운행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인은 그것을 로고스라 했고, 인도인은 브라흐만이라고 했으며, 중국인은 천리, 혹은 도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원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도 이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에 순응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고 잘 사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자연의 섭리(攝理)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잘 되지만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망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원리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그 원리를 깨닫고 순행하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주 안과 밖, 즉 내재적이면서 동시에 외재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면 우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기본 원리를 누구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필수요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빛(태양), 물, 공기입니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사용했지만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원리에 따라 순환합니다. 물론 과학자들은 ‘가용성(可用性)에너지’가 ‘불가용성(不可用性)에너지’로 변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동안 그 어떤 것에도 값을 지불하지 않고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인간의 욕심만 절제할 수 있다면 여전히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사실이 쌓이면 그 축적된 사실에 근거한 지식을 갖게 됩니다.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 가치관에 의해 언행이 지배됩니다. 그래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가치관이 삶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세계관을 가진 자와 자본주의 세계관을 가진 자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물질 즉 원소가 이 세상의 근간을 이룬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하나님의 실존을 인정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에 따른 윤리를 지켜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 가치관은 어려서 경험된 사실들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려서 세상적인 것들에 많이 노출되면 세상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지만, 교회 안에서 기독교적인 경험을 많이 하게 되면 기독교적 가치관 즉 하나님 중심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세상에 수많은 가치관이 있을 것 같지만 대별하면 두 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자연주의 세계관입니다. 이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결국 인간중심적 삶을 살게 됩니다. 이들은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생성과 소멸의 원칙을 따라 살아갑니다. 역사 안에 여러 가치관과 사상들이 나타났었지만 결국은 이 세계관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둘째로 기독교적인 세계관입니다. 이 가치관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분이 우주 안과 밖에서 섭리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절대 순종합니다. 성경을 인생의 나침반이라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갑니다.
양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주인께 드려지기 위함입니다. 양은 주인을 위해 존재합니다. 주인이 양을 보호하는 것은 그 양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주인이 원하면 양은 언제나 희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흠과 티가 없는 순결한 양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은 오직 흠 없는 어린 양의 희생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맺은 구속언약에 따라 십자가에 자기를 내어놓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습니다. 주인을 위해 드려지는 양처럼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희생당하셨습니다. 희생양의 원리는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할 때 이유불문(理由不問) 하고 새끼나귀를 내어준 벳바게 사람처럼 우리도 자신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미얀마 선교사로 사역하던 의사 메이슨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메이슨은 한 부족을 가르칠 교사를 급히 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신앙심도 깊고 자격도 갖춘 적당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이미 뱃사공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메이슨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교사로 헌신해 준다면 매달 5루피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뱃사공은 머뭇거리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매달 20루피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이슨 선교사는 그에게 생각할 기회를 며칠 주고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그가 선교사를 찾아왔습니다. 메이슨 선교사는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한 달에 5루피밖에 줄 수 없는데...” 미안한 마음에 말을 흐렸습니다. 그러자 뱃사공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한 달에 5루피를 받으며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위해서 가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가치관이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자는 모든 삶의 결정에서 고민하지 않습니다. 먼저, 신앙적 판단을 합니다. 둘째, 생명 우선적으로 판단합니다. 셋째, 윤리적 판단을 합니다. 넷째, 상식적 판단을 합니다. 그러면 삶을 훨씬 활기차고 민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언제나 주님이 옳기 때문입니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창골산 원고보내주실곳
글을 읽으신후 댓글은 사랑의 표현 입니다 | |||||||
'성경강해설교+전도교육자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까이 함이 복이라 (시 73:23-28, 약 4:1-10)[파스칼(Blaise Pascal)의 신앙간증) / 호현낙선 (0) | 2018.09.17 |
---|---|
[스크랩] 창골산 칼럼 제3694호 / “친구여! 시편을 노래하자!” [홍종찬 목사] (0) | 2018.09.14 |
[스크랩] 원한을 푸는 믿음의 간구(왕하4:1-7, 눅18:1-8) / 호현낙선 (0) | 2018.09.08 |
[스크랩] “한국교회의 진짜 문제, ‘정치적 이슈’보다 ‘신앙 모티브’” (0) | 2018.09.06 |
[스크랩] 창골산 칼럼 제3686호 :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교회 관리 집사의 가정 및 결혼 얘기] / 홍종찬 목사 (0) | 2018.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