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하나님께 속한 자는말씀………설교원고모음
하나님께 속한 자는 요15:18-27, 히11:23-29 덴마크 작가 한스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의 동화 미운오리새끼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난히 큰 알에서 태어난 새끼 오리는 보통의 오리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주변 오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처음에는 어미 오리가 다독여주지만, 나중엔 어미 오리마저 새끼 오리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한탄합니다. 이에 상처를 받은 새끼 오리는 집을 떠나고, 어느 마음씨 좋은 할머니의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고양이와 닭의 괴롭힘에 못 이겨 새끼 오리는 결국 또 도망쳐 나옵니다. 춥고 외로웠던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어느 날 우연히 새끼 오리는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못생긴 오리인줄만 알았던 새끼 오리는 다름 아닌 아름다운 백조였던 것입니다. 이후, 미운 오리새끼는 백조 무리 속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같은 오리였다면 따돌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리가 아니라 백조였기 때문에 부러움과 존경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미움을 당했습니다. 세상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어쩌면 미운 오리새끼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어두움에 속한 세상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신 것처럼 미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는”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1.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서신서 본문 히11:27에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했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적인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존재이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입니다. 모세는 그 믿음의 눈을 통해서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현재 우리에게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여기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마치 눈에 환히 보이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바로 그 삶을 실천한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급으로부터 나오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이 믿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모세는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여 출애급을 이끈 신앙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확고한 믿음은 뒤에 추격하는 애급의 군사들과 앞에 홍해가 있어 진퇴 양란의 위기 가운데서도 두려움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했던 그는 40년간의 광야생활동안에도 만나로 먹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고,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는 은혜를 체험했으며,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시는 등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음으로써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이론이 아니고, 허상을 쫒는 것도, 황홀한 삶도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고,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 순종의 길에서 오는 고난도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산다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만 좇아 우왕좌왕하는 연약한 신앙인들이 많은 이 시대에 본받아야 할 진실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참 신앙의 모습은 진정 믿을 수 없는 중에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요, 주님의 사랑과 섬김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며 사는 사람이 됩니다. 받은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기를 힘씁니다. 그러다 보면 부지중에 주님을 대접하고, 천사를 대접하는 자가 되어 주님 앞에 설 때 큰 상급을 받는 자가 됩니다. 옛날 어는 임금이 난리를 피해 수행원들과 함께 평복을 입고 어느 시골 마을에 이르러서 한 농부의 집을 찾아 며칠 유하자고 청했습니다. 고맙게도 그 농부는 이 일행이 누구들인지도 모르면서 기꺼이 맞아들여 한동안 정성을 다해 대접했습니다. 왕은 이 농부가 여간 고맙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정세가 회복되어 환궁하게 되자 왕은 여전히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소. 내가 이 은혜를 갚아야 되겠으니, 소원이 있으면 한 가지 말해 보시오 들어주리다." 농부는 대답했습니다. "제게 무슨 별 다른 소원이 있겠습니까? 보시다시피 먹을 것도 넉넉하고 몸도 건강합니다. 여태껏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왕은 기어이 소원을 말해 보라고 거듭거듭 청했습니다. "굳이 그러하시다면" 농부는 마지못해 말했습니다. "몇 달 있으면 제 환갑입니다. 아이들이 정성을 모아서 잔치를 해준다고 하니, 그 때 왕림해 주십시오." 왕은 내심 착하고 욕심 없는 농부의 사람됨에 탄복하면서 "알겠소."하고 돌아갔습니다. 몇 달 후 환갑날, 농부네 집에 난데없이 임금님의 대 행차가 이르렀습니다. 임금님 덕분에 그 농부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집에 임금님이 다녀갔다고 해서 기념비까지 세웠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죄와 구원을 위해 보내주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그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을 잘 대접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라 주님을 본받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세상에서 나그네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받는 영광과 상을 어찌 세상 임금님이 주는 것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께 속한 자답게 믿음으로 살다가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세상 것 보다 하늘의 것을 귀하게 여기며 삽니다. 복음서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음이 깊지 못했을 때 하늘의 것을 잘 알지 못해서 세상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소망했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 보다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의 독립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므로 세상에서 큰 명예와 영광이 따르기를 갈망했습니다. 십자가를 이해하고 믿지 못하여 주께서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만류하기도 했고, 낙심하여 다시 부르심 받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 성령 체험을 한 제자들은 눈이 열려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하늘의 것을 귀하게 여기며 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기꺼이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라갔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매 맞고, 옥에 갇히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당하는 박해를 오히려 기뻐했으며, 하늘의 상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꺼이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히브리서 본문에 나오는 모세 역시 세상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린 믿음의 사람들은 충분히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가 취한 행동을 살펴보면, 먼저, 세상 부귀영화를 거절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같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그런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왕궁의 배경을 이용하여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주어진 그 모든 권세와 부귀영화를 내던지고 고난의 길을 자청하였습니다. 본문 히11:24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하였습니다. 모세는 고난 받는 자기 형제인 히브리 노예를 돕는다고 무력으로 개입하여 애급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자신을 히브리인으로 자처한 행위였으며, 바로의 공주의 아들 됨을 부인하는 행위였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믿음으로 그 모든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다음에 잠시 죄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하나님 백성으로 고난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본문 히11:25에 "도리어 하나님이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왕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향유하며 세상적인 온갖 쾌락을 다 즐길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원했습니다. 모세는 죄 된 쾌락은 잠시뿐임을 알았습니다. 25절에 '잠시'라는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것이 아무리 좋아도 잠시라는 것입니다. 어떤 쾌락도 잠시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얻는 것은 무엇이든지 잠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이는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 된다.’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본문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을 기꺼이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상은 바로의 궁전에 있는 온갖 보화들보다도, 영화를 누리는 것보다도 더욱 고귀한 것으로서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영원한 상과 그 곳에서 누리게 될 영광을 생각하고 취한 행동입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잠깐의 쾌락을 추구하다가 영원한 후회와 형벌이 따르는 그 길을 과감히 버리고, 비록 믿음의 길이 현실 속에서는 고난의 연속된 삶이라 할지라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과 영광을 위해 고난을 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고난도 ‘잠시’지만 영광은 영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의 포로가 되어 있다면 지금 이 시간 모세와 같은 결단을 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세상 것보다 하늘의 것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세상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복음서 본문의 말씀을 통해 마치 미운 오리세끼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미움 받는 것에 대한 몇 가지 요소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15:19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죄와 사단의 지배아래 있던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올 때 애급왕은 그들이 그들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막으려 했던 것처럼 사단은 자기에게 속했던 자들이 자기의 속박을 벗어나려고 하는 자들을 가만 두지 않기 때문에 고난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고 사탄의 편이면 세상이 우리를 좋아하고 사탄이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속박에서 벗어나 사단과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세상 사람들과 사탄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주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해할 자가 없습니다.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됩니다. 다음에,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입니다. 본문 요15:21에서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가장 미워하는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이 이름을 믿고 이 이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이름은 세상을 심판하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을 주시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의 임금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세상의 참 빛으로 오셔서 그의 백성들을 이 어둠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심으로 구원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그 이름을 힘입어 구원을 받은 빛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미워하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말씀에 따라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말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미워하는 일이나 또 그의 택하신 자를 미워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무서운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일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심판을 곁들여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미움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본문 요15:25에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35:19을 인용하신 말씀인데,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이유 없이’ 아무런 까닭 없이 미워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특별한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한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와 거룩한 뜻을 따라서 세상 사람이 우리를 미워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고 미워할 때 같이 대항하여 미워하거나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야 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미워하면 미움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핍박하면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우리의 것을 빼앗으면 그냥 뺐기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각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능히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허다한 무리들을 보고 그들이 누군지 궁금해 했습니다. 계7:13-14에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구원 받은 흰옷 입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 공로로 죄 사함 받은 자들이요 *큰 환란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구원 받는 성도에게 주님의 보혈과 환란은 필수 과목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하였습니다. 이 '실상'이란 말은 헬라어로 '휴포스타시스'라고 하는데 이 말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헬라의 한 여인이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는데 토지문제가 잘못되어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첫 번 재판에 실패를 한 이 여인이 알렉산드리아의 고등법원에 상소하기 위해 모든 법적 증거서류를 모아서 돌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닫아 자기 집의 노예를 시켜서 고등법원으로 보냈는데, 이 노예가 가는 도중 숙박하던 여인숙에 불이 나 모두 불에 타 죽어 버렸습니다. 그 사건 이후 2천년이 지난 뒤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이 돌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서 그때의 모든 문서와 함께 재판장에게 보내는 한 장의 긴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재판장님으로 하여금 내 고소가 참된 것임을 알게 하고자 여기에 내 ‘휴포스타시스’를 보내드립니다."라고 씌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휴포타시스’란 바로 증거물에 대한 확실한 신념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주신 증거를 가지고 그의 약속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약속이 있으면 반드시 성취가 있고, 영원한 미래가 있는가 하면 현재적 성취도 항상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요, 그러기에 세상 것보다 하늘의 것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사는 자들이요, 기꺼이 세상의 미움을 감당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속한자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는”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것 보다 하늘의 것을 귀하게 여기며 삽니다. ▣.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아멘. <2018. 11. 22. 성산교회. 원로 목사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
출처 :땅끝 사랑 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 호현낙선
***블로기지기가 이상근 신학박사의 신약주해에서 인용 전재***=[믿음은 아직 얻지 못한 사물을 이미 소유하는 것처럼 확신하는 것이다. 확신하는 자에게는 바라는 것이 곧 실제가 되는 것이다. "믿음은 종달새 알에서 종달새 소리를 듣는 것이다"(Em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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