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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노무현 전 대통령 “실패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면 100% 실패”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5. 14. 16:16

[ESC] 노무현 전 대통령 “실패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면 100% 실패”

등록 :2019-05-02 09:24수정 :2019-05-02 20:00

 

양반다리를 한채 보고서를 읽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 노무현재단 제공
양반다리를 한채 보고서를 읽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 노무현재단 제공

[ESC] 강원국의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위암 판정받은 적도
글은 경험이 많을수록 잘 써
나는 실패 경험이 두려운 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라
실패에도 의미 부여했던 분들
암 판정받은 날 난생처음 주례도 서
그날 이후 내 삶의 물꼬 바뀌어
경험 글 쓰는 방법은 세 가지
“아무런 의미 없는 경험은 없어”


그날,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갑상샘에 결절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절? 갑상샘에 금이 갔나? ‘결절’을 검색해 봤다. ‘돌출된 피부 병변 중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경향이 있는 피부 병변.’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알아보니 혹이었다. 크기가 변하는지 지켜봐야 한다니 ‘혹시 암 아냐?’ 내심 걱정하면서 위내시경 검사를 했다. 의사가 불렀다. “위암인 듯합니다. 정밀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 순간 갑상샘 결절은 까마득히 잊었다.

걱정은 더 큰 걱정으로 덮인다. 더 큰 걱정이 생기면 이전 걱정은 걱정이 아니다. 더 큰 걱정은 언제 생기는가. 내 역량에 부치거나 안 해본 일을 앞두고 있을 때다. 익숙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롭고 어려운 일을 시도하면 되겠구나, 그러면 걱정이 없겠구나, 생각했다.

글은 경험이 많을수록 잘 쓸 수 있다. 경험하려면 시도해야 한다. 시도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그 하나는 작을수록 좋고, 다른 하나는 클수록 좋다. 작을수록 좋은 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클수록 좋은 건 목표요 꿈이다.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이다. 그래서 시도하지 않고 살아왔다. 회사에서 인사발령 나는 대로 옮겼다. 가고 싶은 부서로 보내달라고 “저요, 저요” 손들지 않았고, 가기 싫은 데로 발령 났다고 왈가왈부하지도 않았다. 청와대에서 부르면 가고 끝이 나면 나왔다. 청와대를 나와서도 관성에 몸을 맡기고 물결 가는 대로 살았다. 목표와 꿈을 가지고 도전하지 않았다.

내가 모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아름답다고 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배가 아니다, 배는 바다에 나가야 배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일 때 배는 전진한다. 그분이 인용한 니체의 말. ‘풍파는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그분은 인생 자체가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못지않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른명도 뽑지 않던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법서 살 돈도 없던 깡촌 청년이 판검사를 꿈꿨다. 부산에 내려가 무모한 선거에 도전했다. 지지율 3%도 안 되던 상황에서 대통령 출마 선언을 했다. 도전의 연속이었다.

“한 대도 안 맞는 싸움은 없다. 4대 맞고 6대 때릴 수 있으면 싸운다. 시도하고 도전하면 실패와 성공 확률이 50 대 50이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면 100% 실패다. 왜 100% 실패의 길을 가려고 하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연설문을 준비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해주신 말이다.

두 분은 또한, 자신의 경험에 늘 의미를 부여했다. 내가 그 경험을 하며 무엇을 배우고 느끼고 깨달았는지 생각했다. 연설문, 기고문 실마리도 자신의 경험에서 찾았다. 어느 단체에 가서 연설해야 한다면 그 단체와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그 단체는 내게 어떤 의미인지 곱씹었고, 그것이 연설문이 됐다.

자신의 경험을 쓰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해보자. 세 가지만 지키면 된다. 우선, 감추지 말자. 이른바 자기 개방성이 강해야 한다. 그래야 인간적이라는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쓸 말도 많아진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의 자서전 <고백록>에는 자신이 도둑질한 얘기, 친척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운 얘기가 나온다. 멋있게 포장하려고도 하지 말자. 꾸미면 꾸밀수록 독자는 느끼해하고 밥맛없다고 한다.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한 캐릭터를 독자는 좋아한다. 끝으로 드라마틱한 것만 찾지 말자. 독자는 때로 드라마 같은 스토리보다 잔잔한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인다. 평범한 일상의 얘기에 감동한다.

경험을 글로 만드는 내 방법은 이렇다. 첫 번째 단계는 기억을 떠올려 경험을 쓴다. 기억나는 일이 없으면 당시 신문 기사를 뒤적이거나 유행하던 노래를 듣기도 하고, 그 시절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가급적 맵고 짜고 쓴 경험, 즉 어려움 속에서 고민하고 허둥댄 일화를 쓰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려준다. 두 번째 단계는 그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나 시사점을 밝힌다. 어떤 경험이든 그것에서 얻은 게 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경험은 없다. 끝으로 세 번째 단계에서 인용을 덧붙인다. 독자가 ‘그건 당신 경험일 뿐이잖아’라는 반응을 보일 것에 대비해, ‘내 경험과 의미는 당신에게도 해당돼. 당신이 아는 유명한 누구도 그랬고, 이런 실험 결과도 있다’고 인용함으로써 내 경험의 객관성과 신뢰를 높인다. 나의 경험을 일반화해주는 것이다.

독자가 글에서 기대하는 것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알고 싶은 욕구의 충족이다. 모르는 사실을 알고 싶고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하다. 둘째, 알고 싶을 뿐만 아니라 배우고 싶다. 타인이 경험에서 얻은 지혜와 노하우를 통해 더 잘 살고 싶다. 셋째는 공감이다. ‘남들도 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구나. 어쩌면 이렇게 내 처지를 잘 알까. 나라고 못할 일도 없겠네.’ 공감을 통해 위로받고 자신감과 희망을 갖는다.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은 개인의 경험을 사회 자산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누구나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시밭길을 걸으며 더 많이 고생한 분들이 책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신영복 선생님이 그랬다.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가슴보다는 손발로 쓴 글이 좋다. 우리 사회는 머리로 쓴 글을 쳐준다. 또 그런 사람이 글을 많이 쓴다. 고난, 역경, 시련의 경험보다는 승승장구한 경험을 많이 가진 사람이 글을 쓴다. 책상물림 글이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경험 속에 생각할 거리가 더 많은데도 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누구나 경험이 있다. 나이만큼 있다.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겪은 사람인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내 일만 쓸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써도 된다. 사람에 대해서만 쓸 필요도 없다. 자연에서 일어난 일을 써도 된다. 과거만이 대상도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일을 써도 된다. 이 모든 것이 나의 경험이다.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글로 남기는 것이 성찰하는 삶이다. 겪고, 음미하고, 그것을 글로 쓰는 삶은 치열하다. 글로 쓰기 위해 시도하고 도전하고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삶이 아름답다.

위암 선고를 받은 그날, 아내가 의사인 오빠에게 연락했다. 처남은 당시 서울대 국제백신연구소에서 일했다. 내시경 사진을 갖고 그곳을 찾았다. 초기인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대형병원에 예약해줬다. 처남 사무실을 나오는데 눈앞에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서울대 동창회관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 이곳에 다녀갔다. 난생처음 주례를 서기 위해서였다. 오후 3시 결혼식인데 아침부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결혼식을 3개씩이나 봤다. 주례를 잘 서기 위한 준비였다. 그러고서도 주례 서는 내내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떨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주례사를 하면서 말이다. 일주일 후 위암 선고를 받을 사람이 뭐가 그리 두렵다고 떨었을까.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남의 눈에 잘 보이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게 무에 그리 대수라고. 살아온 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오지 않았구나. 내가 눈 떠 있어야 있는 세상, 눈 감으면 없는 세상인 것을.’

그날 이후 내 삶의 물꼬가 바뀌었다. 지금은 망신당할 각오로 시도하고 도전한다. 그런 시도와 도전이 삶이 되고 글이 된다. 두려운 때가 왜 없겠는가. 그럴 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내디딘 마지막 한 발을 생각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을 찾아 내디딘 한 발. 그 마지막 도전을 떠올린다. 그것을 생각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못할 일이 없고, 못 쓸 글이 없다. 그분 말씀대로 글을 잘 쓰려면 잘 살아야 한다. 삶이 글이다.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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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92337.html?_fr=dable#csidx2230257930f0b8faf3f435ff3f34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