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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살 요양보호사 순옥씨의 삶 / 이재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6. 3. 16:40

[편집국에서] 59살 요양보호사 순옥씨의 삶 / 이재훈

등록 :2019-06-02 17:41수정 :2019-06-02 19:25

 

순옥(가명)씨는 59살이다. 24살 때 결혼했다. 아이를 낳아 어느 정도 키운 뒤부터 돈을 벌어야 했다. 사업하는 남편은 벌이가 고정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후 30여년 동안, 순옥씨는 한 번도 일을 쉬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고 식당에서 일하고 공장에 다녔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홀로 키우고, 시부모도 모셨다. 여느 베이비붐 세대처럼, 순옥씨도 자신을 ‘낀 세대’라고 불렀다. 부모 부양 의무를 지는 마지막 세대이자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첫 세대다.

순옥씨 세대는 하루 8시간 노동 개념이 없었다. 식당에서 일할 때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 일했다. 화장품 공장에서 케이스 포장 일을 할 때도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 일했다. 저임금이어서 잔업을 해야 한달에 200만원 정도 벌 수 있었다. 어느 날, 순옥씨는 자격증을 따겠다고 마음먹었다. 노후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주변에서 요양보호사라는 게 있다고 했다. 잔업을 그만두고 오후 6시에 칼퇴근한 뒤 학원에서 밤늦도록 공부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실습시간을 채웠다. 그렇게 해서, 순옥씨는 평생 처음 국가로부터 자격을 인정받은 ‘전문직’이 됐다. 최소한 이 자격증이 있으면, 국가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주지 않을까. 순옥씨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순옥씨의 삶은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언제 잘릴지 모른다. 순옥씨는 59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분노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이 노인 돌봄이 힘들지 않냐고 걱정하면 “자식들도 못하는 거 봉사하는 마음으로 뿌듯하게 한다”고 답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감동하고, 순옥씨는 그 감동을 동력 삼아 자신의 삶을 긍정한다. 그것은 일종의 체념일 것이다.

순옥씨의 이런 삶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50~60대 여성들의 표본이다.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의 생활을 지탱하는 영역, 공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노동을 하는 이들은 주로 중년 여성이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진 이의 91.1%(148만3446명)가 여성이고,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 종사자의 70.8%(13만3105명)가 여성이며, 학교와 기업 등의 구내식당 종사자 가운데 81.8%(5만6216명)가 여성이다. 그리고 우리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수많은 중년 여성들이 맞벌이 자녀를 위해 손주들의 돌봄 노동을 떠맡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이들을 삭제하면 괸 밑돌을 뺀 듯 사회가 붕괴하지만, 요양원에 부모를 보낸 사람들은 이들을 뭐든 쉽게 요구할 수 있는 ‘하녀’처럼 여긴다. 일터에 있는 청소 노동자와 배식대 건너편 구내식당 노동자의 얼굴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24시팀 기자가 한달 동안 요양원에서 일하고, 수십명의 요양보호사들을 심층 인터뷰해 노인 돌봄의 그림자를 다룬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를 읽고,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출했다. 사람들은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에 담긴 이야기에 자신과 부모의 삶을 대입했다. ‘나의 부모가 정녕 저런 곳에서 삶을 마감해야 한다니’ 혹은 ‘나도 언젠가 저렇게 비참해지는 것인가’와 같은 우려였다. ‘대안도 없는데 끔찍한 현실만 고발하면 부모를 요양원에 보낸 우리는 어떡하라는 거냐’는 절규도 있었다.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반응이지만, 궁금증이 하나 남는다. 저 반응들에는 여전히 ‘나와 나의 부모’만 있을 뿐, 요양보호사의 삶은 소거되어 있다. 어린이와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지원하는 것처럼, 노인 역시 가족 단위가 아니라 사회가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 사회적 요구에 따라 사적 영역에 있던 돌봄 노동이 조금씩 공적 영역으로 이전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 이전이라는 것이 겨우 사적 영역에서 ‘엄마’들이 하던 일을 공적 영역의 ‘중년 여성 노동자들’에게 옮기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는 집안일처럼 공적 영역의 돌봄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당연시된다면, 그것은 아무런 사회적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어쩌면 끔찍한 현실에 대한 대안은 여기서 착안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재훈
24시팀장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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