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동양회화에서 인물산수화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인물산수화는 자연속에 거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흔히 산수화라고 말하지만 산수화에는 대개 집과 인물이 존재하고 있어서 인물산수화라고도 말합니다. 그 인물은 거의 한사람이 등장합니다. 혹은 동자라고해서 시중드는 작은아이가 따라 등장하기도 합니다. 더러 다리를 건너서 찾아오는 친구라던가 저편에서 오는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물산수화는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냐면 자연이라고 하는 공간에 인간이 어떻게 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그런 그림입니다. 다시말해서 동양에서 산수화가 그려졌다고 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군자적이라고 할까, 이상적인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교훈적인 그림이라고 말해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인물산수화에서 인물은 자연속에 휴지하고 있습니다. 즉 매우 고요히 앉아있거나 서있거나 공부하고 있거나 물을 바라보고 있거나 저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림을 보는 우리로 하여금 그 인물의 뒷통수의 눈길을 따라주어서 그 사람을 보고 있는 어떤공간을 바라보고 있는 체험을 안겨줍니다. 다시말해 인물산수화의 인물은 그림 보는 관자들을 그 자리에 위치시키겠다고 하는 발상에서 나옵니다.
이 그림은 남정 박노수라고 하는 작가의 그림입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그 곳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지금은 정년을 하시고 원로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이 분의 그림은 간결합니다. 아주 그냥 날카롭고 세련된 정확해보이는 몇가닥 선들이 축축 소리를 내면서 드리워져 있고, 바위와 나무 그리고 도포나 모자를 쓴 젊은 선비만이 위치하고 있는 그런 단촐한 그림입니다. 오늘같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묘한 여운을 남겨줍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인물산수화 그대로 재현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또 오늘날 그런 산수는 존재하기 어렵지만 여전히 이 그림은 우리에게 동양에서 인물산수화는 무엇이었을까 동양인에게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바람직한 인간의 삶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을 새삼 알려주는 그림에 속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철선며라고 일컬어지는 철사같이 가는 이 선들은 동양회화야 말로 선의 예술임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 위에 설체로 감각적인 색체가 그려져 있습니다. 노랑과 파랑과 녹색이라고 하는 이 색상은 현실계의 색상보다는 좀 다른 차원에서 초월적이거나 이상적인 경지를 보여줍니다. 그 안에 선비 한 사람이 가만히 서있습니다. 그는 저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저쪽 세계를 저 자연안으로 시선을 몰고 갑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선비는 그 어떤것도 소유하고 있지않지만 고요하고 청정한 자연 속에서 끝없이 저 내부를 바라보고 있는 그런 시선을 안겨줍니다. 텅빈 화면은 무한한 세계를 연상시켜주고 그 무한한 세계를 끝없이 냉철하게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삶의 한 자세가 아닌가를 넌지시 알려주는 그런 그림입니다. 다분히 장식적이고 또 매우 감각적인 그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화면은 상당히 세련된 감수성과 감각으로 오늘날 전통적인 인물산수화라는 것이 어떻게 환생할 수 있는가 알려줌과 동시에 여전히 오늘날 이 각박하고 부산한 도시적 삶에서 또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현실의 각박함 속에서 새삼 우리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여운이 짙게 풍기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바로 동양화의 세계였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