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맨 상단에 파일 첨부)은 김웅이라는 작가입니다. 70년대에 미국에 유학가서 현재 그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원로작가입니다. 젊은 시절에 외국에 나가서 거의 평생을 작업하고 있는 많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런 작가들을 디아스포라, 이산이란 이름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근대기에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이들은 국내에서 그림을 배울수 있는 수단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일본에 유학가서 그림을 그립니다. 일본에 유학간 해는 1909년대부터고 본격적으로 유학을 간 시기는 1920년대입니다. 더러 유럽에 간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에 가서 그림을 전공하고 돌아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1950년대 중반부터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부터는 물론 파리가 중심이었겠지만 미국, 뉴욕으로 유학가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이 김웅이라는 작가는 뉴욕에 가서 미술을 전공한 작가입니다. 그 이전에 한국에서는 그림을 배우지 않았었고 젊은 나이에 뉴욕에 가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술대학의 교수로 역임하다 현재는 뉴욕에서 작업에만 매진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현재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국에서 살면서 작업하는 좋은 작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작가들의 작업은 한국이라는 미술제도에서 배웠던 그림들과는 상당히 다른 작업들의 양상을 보입니다. 아무래도 외국 교육시스템 속에서 미술을 수확하고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조금 다른 감성과 어법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공통된 특징들이 하나 있습니다. 작가들이 외국으로 가기 이전까지 한국에서 머물렀었고 살았었고 경험했었던 모든 것들이 매우 깊숙이 자양분으로 쌓이고 축적되어서 불현듯 발화된다는 것입니다.
김웅이 그린 그림은 흔히 추상이라고 말해볼 수 있습니다. 추상은 외부세계를 연상시키는 대상이 구체적인 이미지가 화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화면에 봤을 때는 청색, 흰라인, 줄, 조개껍질 같은 원형의 부착물들이 화면에 붙어져 있습니다. 색동 같기도 하고 조개껍질 같기도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개장의 표면을 연상시킵니다. 혹은 골무, 색보자기, 헝겊, 한복을 연상시켜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뒤돌아서 다시 보면 물감과 붓질, 물감의 층들이 얼룩져서 이룬 두터운 재질감만을 보여주는 추상적인 화면입니다. 이 그림에서 자개장, 조각보, 골무가 연상되는 것은 이 작가가 미국으로 가기 직전까지 충청도 자신의 고향집에서 보았었고 경험했었던 것들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계속 그의 기억 속에서 그것들을 추억하며 그린 그림의 형태로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은 유년의 왕국을 끝끝내 기억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자랐고 또 어떤 풍경과 사물을 보면서 한 개인의 모든 것들이 형성되느냐 하는 것들이 결국 그 작가의 모든 것들을 규정해주는 핵심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김웅의 추상은 단지 물감이나 진로, 붓질만으로 극화시키는 형식적 추상에 머물지 않고 그림을 이루는 조건들을 공들여 다루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유년기 때 보았고 추억했던 모든 것들을 아주 매혹적인 기호로 만들어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그림은 전통적인 것들, 한국적인 것들을 표상화시킨 그림으로 머물진 않지만 우리 것들, 지난 전통의 화석 같은 것들이 어떻게 화면 속에서 마치 연금술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매혹적인 물질의 연출로 화면 위에 부유하고 있는지를 만날 수 있다는 다소 경이적인 체험을 안겨줍니다. 돌이켜보면 한 개인은 결코 그가 자란 문화권 전체의 지층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비록 그가 미국으로 유학간지 이민간지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감성과 미술을 이루는 근간은 지극히 유년기 때 보았던 한국적인 기물들, 사물들로부터 연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렸을 때 무엇을 보았는가. 어떤 사물을 보고 자랐는가 어떤 환경과 풍경이 그의 모든 것을 결정지어줬는가 하는 것이야 말로 한 예술가를 예술가이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환경이 기계론적으로 한 개인의 모든 것을 규정할 순 없지만 주어진 환경과 사물 속에서 감성을 교육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이 김웅의 격조 높은 추상회화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