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매혹, 치정과 복수, 위선…
문인들의 막장 드라마 ‘미친 사랑의 서’
작품에 스며든 사랑의 뒷이야기도
문인들의 막장 드라마 ‘미친 사랑의 서’
작품에 스며든 사랑의 뒷이야기도
미친 사랑의 서-작가의 밀애, 책 속의 밀어
섀넌 매케나 슈미트·조니 렌던 지음, 허형은 옮김/문학동네·1만5800원
예술가들의 사랑은 자주 세간의 관심을 끌고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그것이 창작욕을 부추기고 그렇게 산출된 작품 안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의 사랑이 반드시 생산적인 자극을 주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정도 이상으로 치달아서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진 사랑 이야기는 그 얼마나 많았던가. 두 여성 저널리스트가 공저한 <미친 사랑의 서>는 그렇게 엇나가거나 너무 나간 사례들을 모은 책이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결혼은 일부일처제의 제약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평등한 관계를 추구한 실험이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약속하면서도 다른 상대와 스치듯 생기는 사랑에도 문을 열어 놓기로 두 사람은 합의했다. 이와 함께, 그렇게 경험한 사랑의 세목들을 서로에게 숨김없이 들려주자는 데까지도 합의는 나아갔다.
보부아르를 만나기 시작했을 무렵 사르트르는 또 다른 시몬, 시몬 졸리베와 깊은 관계였는데, 그는 이 여성과 있었던 질펀한 섹스 파티에 관해 보부아르에게 시시콜콜 늘어놓았다. 예상치 못한 질투에 사로잡힌 보부아르가 좀처럼 글쓰기에 집중하지 못하자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조심해요. 마누라처럼 굴지 않도록.”
보부아르는 자신의 열일곱살 난 제자 올가 코사키예비치와 은밀한 동거를 시작했고, 보부아르의 여제자들을 유혹하는 취미가 있었던 사르트르는 올가에게 2년이나 공을 들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대신(!) 다시 2년이 걸린 노력 끝에 올가의 여동생 완다를 자신의 침대로 데려갔다. “비열한 남자 사르트르는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애인을 버려두고 근처 카페로 달려가 보부아르에게 짜릿한 디테일로 가득한 편지를 썼다.”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시몬 드 보부아르(왼쪽)와 장 폴 사르트르. 자유와 평등을 표방한 이 관계는 그러나 질투와 음모, 원망과 분노로 얼룩져 있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은둔형에 완고한 독신주의자였으며 평생 사창가 찾기를 즐겼고 그 난잡한 경험을 자랑스레 떠벌이곤 했다. 그런 그가 아직 스물네살 작가 지망생이었을 때 만난 서른다섯살 유부녀 루이즈 콜레와는 비교적 오랜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대표작 <마담 보바리>에서 주인공 에마 보바리가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는 마차 안에서 옛 애인과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실제로 마차 안에서 그가 루이즈와 치른 정사를 고스란히 소설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루이즈는 ‘아모르 넬 코르’(마음에 깃든 사랑)라는 문구를 새긴 담배 파이프를 플로베르에게 선물했는데, 플로베르는 자신의 소설에서 에마 보바리가 난봉꾼 애인 로돌프 불랑제에게 똑같은 문구를 새긴 인장을 선물하는 것으로 그리기도 했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는 옛 은사의 부인인 프리다 위클리와 사랑의 도피행을 거쳐 결혼에까지 이르렀음에도, 프리다가 주기적으로 다른 남자들의 품에서 성욕을 충족시키는 것을 눈감아 주었다. 대표작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집필할 당시 로런스는 폐결핵이 심해져 성 불능 상태가 되었고 프리다는 이탈리아 애인과 사귀고 있었다. 채털리 부인이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성 불능이 된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소설 이야기는 실제 삶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해외여행 때문에 떨어져 있을 때마다 포르노그래피에 가까운 편지를 주고받았던 제임스 조이스 부부, 술에 취한 채 부인의 배와 등을 칼로 찌른 소설가 노먼 메일러, 스스로 ‘바닷가의 소돔’이라 부른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200여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했노라고 주장한 바이런…. <미친 사랑의 서>에 소개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자칫 작가와 작품에 대한 환멸에 사로잡힐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이 작가판 ‘사랑과 전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서불안 증상으로 자살 시도를 거듭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정신적 안정과 격려를 제공했던 남편 레너드, 20개월간의 연애 동안 무려 574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결혼 후에는 단 하룻밤도 떨어지지 않았던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과 로버트 브라우닝 부부, 자신보다 10년 연상인데다 장성한 자식들까지 둔 유부녀 패니 오스본에게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하고 14년간 해로한 뒤 남태평양 사모아 섬에 나란히 묻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등의 순애보는 막장 드라마로 어지러워진 머릿속을 맑게 씻어 주는 듯하다.
연인과 광인과 시인은 실체 없는 것을 본다는 점에서 통한다고 셰익스피어는 희곡 <한여름밤의 꿈>에 썼다. <미친 사랑의 서>는 연인과 광인과 시인이 한데 결합된 이들이 펼치는 한바탕 원무(圓舞)와도 같다. 그 춤이 허무한 몸부림으로 그치지 않고 작품이라는 결실을 낳았다는 사실이 독자에게는 무엇보다 큰 위안이라 하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시몬 드 보부아르(오른쪽)와 장 폴 사르트르.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