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한샘 성폭력’ 가해자, 집유로 풀려나…피해자는 3년 고통에 “살려고 합의”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12. 20. 05:42

한샘 성폭력가해자, 집유로 풀려나피해자는 3년 고통에 살려고 합의

등록 :2019-12-19 12:21수정 :2019-12-20 02:41

 

2심서 징역26개월·집행유예 4
재판부 피해자와 합의 등 반성하는 태도 고려

피해자 자필 편지로 심경 고백
활기 가득하고 싶던 20,
이제는 더이상 몸과 마음이 버터기 힘들어
길어지는 재판에서 오는 무력감 커

아직도 많은 재판 남아있어
인사팀장 사건은 이제서야 기소돼
성추행은 불기소 처분돼 다시 싸워야

무죄 주장 가해자, 합의하면 모두 인정하겠다고
살기 위해서라도 합의해야겠다 생각

조금이라도 살아있음을 느낄 때
남은 사건 빠르게 결과 얻고
제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샘 사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ㄱ씨가 취재진에 보내온 자필 편지.
한샘 사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ㄱ씨가 취재진에 보내온 자필 편지.

부하 여성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샘 사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판단에 고려했다. 피해자는 취재진에 살기 위해서라도 합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가해자와 합의에 이르게 된 심경을 자필편지에 담아 전했다.

19일 서울고법 형사10(재판장 박형준)는 강간 혐의를 받는 한샘 전 직원 박아무개씨(32)에게 징역 2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또한 40시간의 성폭력 프로그램 치료 이수,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구속상태였던 박씨는 풀려났다.

재판부는 1심에서 범행을 부인했던 피고인이 항소심에 이르러 범행을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태도를 보인 점, 범죄 전력이 없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주문을 읊은 뒤 재판부가 여러 고민 끝에 피고인에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하고 석방 조치 취하도록 했다. 마지막 기일에 피해자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일방적인 마음으로 이 사건에 이르게 됐다고 뉘우치는 태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구속됐지만 피해자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마음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재판부는 믿고 싶다고 밝혔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박씨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구형한 바 있다.

피해자는 항소심 선고 이주일 전 고민 끝에 가해자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ㄱ씨는 취재진에 자필로 쓴 편지를 보내 합의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심경을 전했다. ㄱ씨는 판사님들께서 내려주신 13년형의 결과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저는 이 결과를 얻기 위해 3년이란 시간을 보냈고 결과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버텼다고 운을 뗐다. 이어 활기 가득하고 싶던 20대 시절을 고통 속에서 버티고 버티다 보니 이제 더 이상은 몸과 마음이 버티기가 어렵다. 대학 졸업도 전에 꿈을 품고 들어온 첫 직장에서 저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이제는 내가 어디서 누군가를 믿으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하다. 앞으로 어떤 회사를 가도 두려움과 사람들의 시선이 공포로 다가온다고 했다.

ㄱ씨는 이어 계속해서 길어지는 이 재판 과정에서 오는 무력감이 저를 너무 우울하게 만든다. 괜찮다, 잘 될 거다 믿고 있지만 더 이상 스스로 다독여가며 버티기에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재판들이 남아있다. 저를 앞에 앉혀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 들어보는 거짓말을 검사님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한샘 인사팀장 사건은 이제서야 기소가 됐다. 인사팀장의 성추행은 불기소가 돼서 다시 정신 차리고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또 시작해야 하는 재판들이 많이 남았기에 사과는 못 받았지만,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주장하던 가해자가 합의를 해주면 모두 인정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라도 합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합의에 이르게 된 까닭을 설명했다.

ㄱ씨는 마지막으로 저는 제 존재가 남아있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날 위해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어 그 손을 놓아버릴 수 없다. 이런 낭떠러지 같은 상황에서 손을 잡아 준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버텨보려고 한다. 아직 남아있는 사건들이 해당 사건과 연관있는 사건들이기에 합의하고 가해자의 범죄를 인정받고 제가 조금이라도 살아 있음을 느낄 때 좀 더 힘을 내서 남은 사건들 또한 최선을 다해 조금이라도 빠르게 결과를 얻고 이제 그만 벗어나 제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응원해준 이들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피해자 쪽 김상균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피해자는 여전히 심적으로 괴로워하며 지내고 있지만 인사팀장의 형사재판 등 법적 싸움이 아직 남아있다. 피해자 입장에선 재판부 판단이 뒤집히지 않을까 불안할 수밖에 없는데 피고인이 죄를 인정하면 항소심에서 재판 결과가 뒤집힐 확률이 낮고, 또 이 재판에만 매몰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성범죄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고 끝까지 재판을 진행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샘 사내 성폭력 사건은 201711월 피해자가 인터넷에 사내 교육 담당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취지의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사내 교육 담당자였던 박씨는 성폭력 피해를 상담해온 피해자를 도리어 성폭행한 혐의(강간)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는 2016년 말부터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사내 교육 담당자였던 박씨, 입사 동기 등으로부터 수차례 성폭력 피해를 당하였지만 피해자를 비난하는 내용의 2차 가해성 소문에 시달리다 결국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박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사내 성폭행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피해자에 거짓진술을 하라고 요구한 혐의(강요)로 기소된 한샘 전 인사팀장 유아무개씨는 지난 17일 첫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유씨의 간음목적 유인 혐의는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