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사설] 악랄한 ‘스토킹’, 언제까지 경범죄로 다스릴 건가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3. 31. 03:36

[사설] 악랄한 ‘스토킹’, 언제까지 경범죄로 다스릴 건가

등록 :2020-03-30 18:29수정 :2020-03-31 02:39

 

이른바 ‘n번방’ 성착취 범죄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스토킹처벌법 요구로 번지고 있다. 사진은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주최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원한다'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엔(n)번방’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스토킹 범죄 처벌법에 대한 요구로 번지고 있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과 아동 살해를 공모한 강아무개씨가 7년간 저질러온 끔찍한 스토킹 범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며 직접 올린 스토킹 피해 사실은 스토킹 범죄의 악랄함과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현행법의 구멍을 여실히 보여준다.

 

강씨의 고교 담임교사였던 피해자는 재직 당시부터 가해자의 스토킹에 시달리며 법적 해결을 시도했지만 처벌은 물렀고 가해자의 협박 강도는 점점 더 세졌을 뿐이다. 강씨가 1년2개월 실형을 살고 난 다음 주민들의 정보를 쉽게 빼낼 수 있는 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은 경악스럽다. 이로 인해 피해자뿐 아니라 가족의 신상까지 가해자의 먹잇감이 되어 피해자는 물론 가족들도 이름과 주민번호까지 바꾸고 숨죽여 살아야 했다. 특히나 어린 자식의 생명을 놓고 잔인하게 협박하는 스토킹 앞에서 피해자가 느꼈을 두려움은 짐작하기도 힘들다.

 

지금처럼 스토킹을 경범죄로 처벌하는 한 피해자가 공포에서 벗어날 길은 요원하다. 현재 스토킹은 ‘경범죄 처벌법’에서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돼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처벌을 받게 된다.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한 처벌 강도가 쓰레기 무단투기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강씨처럼 상습협박 등으로 우회 처벌을 받아도 형량은 높지 않다. 이렇다 보니 강씨의 경우처럼 재범 발생은 필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스토킹 범죄 건수는 583건으로, 스토킹을 경범죄로 처벌하기 시작한 2013년에 견줘 갑절 가까이 늘어났다. 솜방망이 처벌 탓이 크다.

 

4·15 총선을 앞두고 거의 모든 정당들이 ‘스토킹 처벌법’을 여성 유권자를 겨냥한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믿음이 가지 않는다. 스토킹 처벌법 입법이 국회에서 20년째 공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스토킹 처벌법이 ‘발의만 되고 처리는 안 되는’ 법안의 상징으로 남아선 안 된다. 피해자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저도 안전한 나라에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소박한 바람이다. 목숨을 건 투쟁이 돼서는 안 된다.

 

연재n번방 성착취 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