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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두 칼럼] 코로나19 대유행과 국가주의의 한계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3. 31. 04:05

[최병두 칼럼] 코로나19 대유행과 국가주의의 한계

등록 :2020-03-29 18:22수정 :2020-03-30 09:46

 

최병두 칼럼

중국 우한에서 발현·확산된 코로나19의 세계 확진자 수는 3월6일 10만명을 돌파했다. 이후 다시 10만명씩 증가하는 데 걸린 시간은 11일, 4일, 2.5일, 2일로 단축됐다. 국내에선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일지라도, 세계 감염자 수의 기하급수 곡선은 앞으로 얼마나 더 치솟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세계는 대유행의 공포와 긴장 속에 헤매고 있다.

 

흔히 세계적 전염병은 빈곤하고 의료 수준이 낮은 저발전국에서 창궐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대유행에 휩싸인 나라들은 주로 부유하고 의료 수준이 높은 서구 선진국들이다. 대유행이 선진국들에서 진행된 이유는 어떤 역설적 배경, 즉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국가주의 간 모순에 기인한다.

 

지난 몇십년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국가 간 연계성을 극대화했고, 행성적 도시화를 가속화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졌고, 미국, 영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은 국가주의로 돌아섰다. 지구화 과정에서 구축된 광범위한 연계망은 코로나19의 급속한 전파 경로가 되었지만, 각국의 국가주의 전략은 이를 통제하는 데 심각한 한계를 드러냈다.국가주의란 국가를 가장 우월한 정치조직체로 간주하고, 국가 권력이 사회경제 전반을 관리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이러한 국가주의의 한계로 우선 지적될 점은 국가들이 협력과 연대보다 견제와 대립으로 대유행에 대처한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은 앞서 사태를 겪었던 중국에 대해 지원과 격려보다 언론탄압과 도시봉쇄 등을 비난했다. 중국의 강압적 대응 방식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비난 속에 서구 우월주의와 인종 차별이 깔려 있었다.

 

선진국들은 상반된 인식을 함께 가졌던 것 같다. 한편으로 대유행은 두려웠다. 영국 총리는 완전한 봉쇄 불가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이 닥치면 자국 역량으로 대처할 것으로 여겼다. 이탈리아 총리는 2월 말에도 무증상자의 진단검사는 과도하며, “이탈리아는 다른 곳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채 2주가 가기 전에 이탈리아는 의료체계의 붕괴 우려 속에 전국 이동통제령을 내리는 파국을 맞았다.

 

대유행이 도래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중국이 먼저 사태를 겪으면서 다른 나라들에 대비할 시간을 주었다는 주장 역시 국가주의적 발로이지만, 선진국들은 이 기간에 별로 대비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자, 치료 인력, 병상, 의료장비들은 턱없이 부족함이 드러났다. 국가별 차이는 있지만, 국가주의적 자만심의 치부만 보여준 셈이다.

 

어쩔 수 없이 선진국들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경 폐쇄와 자국 내 이동 및 집회 금지령을 내렸다. 한국처럼 개인 정보를 확보하여 감염자 동선과 접촉자를 확인·관리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통제는 이동, 집회, 언론, 종교 등의 자유를 유보하는 것이다. 독일 총리의 주장처럼, 이런 조치는 “민주주의에서 가볍게 받아들여선 안 되며 단지 일시적”으로만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진정된 뒤에도 국가주의적 정치가들은 자유의 제한과 감시체제를 유지하려 할 수도 있다.

 

서구 나라들이 취한 다른 주요 대책은 대유행에 동반된 경제위기의 완화를 위한 재정 확대이다. 미국은 2조달러(약 2480조원), 일본은 56.8조엔(627.5조원) 등 과감한 재정정책을 세우고, 상당액은 국민에게 현금으로 지급할 계획이다. 이 대책은 피해를 본 국민의 생활을 지원하는 재난기본소득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경제 우선 국가주의에서 이 전략은 취약 가구나 영세사업자들을 위하기보다 경기부양책 또는 기업 이윤 보전책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끝으로 선진국들의 국가주의 대응전략은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대유행은 빈곤·저발전국들을 비켜 가지 않을 것 같다. 중국 내 제1차 파동과 서구 나라들의 제2차 파동에 이어, 앞으로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제3차 파동이 일어난다면, 지구는 정말 통제 불능의 행성적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한계를 가진다. 대유행 극복을 위한 대책은 포괄적, 다규모적이어야 한다. 대면접촉이 이루어지는 국지적 장소들에서 시민의 성숙된 의식과 실천이 중요하다. 긴급상황이라는 이유로 시민사회의 다양한 자유가 강제로 제한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제하고 실행하는 생태적 민주주의가 요긴하다. 또한 국가주의를 넘어 새로운 지구적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당면한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전염병 예방과 통제를 위해 진정한 생태주의적 국제협력체제와 세계시민기구가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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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최병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