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원칙
살다보면 '이것을 말을 해 말어?' 하고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고민이 될 때 제가 지키는 원칙 하나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은 나의 권리이고, 그것을 받고 안 받고는 상대방 권리라고. 그러니 적어도 상대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뭔가 어려운 얘기를 말하고자 할 때 ‘이 말을 해도 괜찮을까, 내가 이 말을 하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말도 꺼내지 못하고 시기를 놓쳐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 좋은 예가 짝사랑의 고백입니다. 좋아하는 하는데 사랑한다는 말도 못해 본 사랑 말입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차라리 고백이라도 해서 상대가 “너, 싫어!”라는 말이라도 들었으면 지금 이렇게 가슴 아프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겨울만 되면 생각나는 여인이 있어 아주 오래 전에
몇 자 끄적거린 시가 있습니다.ㅎ
<그 여인>
그 여인을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했다.
짝사랑이었기에.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나중에 누군가로부터 들었다.
걔도 나를 좋아했었다고.
내가 모른 척 하더라고.
두 번째 사랑을 했다.
세 살 아래 여자였다.
그냥 동생처럼 편하게 대했다.
눈은 크고 코는 높고
목은 길고 키는 호리낭창 했다.
예뻤다는 얘기다.
예쁜 여자에게 약한 나.
첫눈에 반했다.
뿅 간 거였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나중에 소식 들었다.
시집을 갔다고.
딸 둘을 낳았다고.
그 남편은 누구일까.
전생에서 우주를 구한
남자였을까.
겨울이면
빨간 목도리를 했던 그녀.
지금도 여전히 빨간 목도리를 할까.
지금도 빨간 목도리의 여인을 보면
눈길이 오래 머문다.
나이가 이만큼
들었는데 말이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말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도 못 하고 쩔쩔 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저는 지금도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는 말이 아니면 반드시 얘기를 합니다.
말하는 것은 내 권리고 그 말을 받고 안 받고는 상대방의 권리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상대방 권리까지 침해해서 고민하고 걱정할 이유는 없잖아요. 더구나 그것이 상대방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오늘은 누군가에게 평소 아껴두었던 말이 있으면 용기를 내서 말해보는 그런 날이기를 소망합니다. 힘찬 월요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박완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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